사람을 만나는 여행
읽으면서 눈치채셨겠지만 나의 여행기는 주로 사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나와는 다른 환경에 있는 사람들을 만나 관찰하고 대화를 나눔으로써 일상 속에 닫혀져 가는 나의 관심영역을 넓혀가는 일... 여행길의 풍광 못지않게 흥미진진한 일이다. 사람이 빠진 여행은 김빠진 맥주. 꼭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지역에 대한 정보(지리뿐 아니라 그 나라의 역사, 문화 등 대략이라도)를 갖고 있다면 여행이 훨씬 재미있어진다. 돈 들여 시간 들여 가는 여행인데 본전 제대로 뽑으려면, 튼튼한 신발만큼이나 낯선 사람을 향한 열린 마음, 낯선 동네에 대한 사전정보 준비가 중요하다.
방콕행 비행기에 올라 태국 전통복장 차림의 승무원들로부터 인사를 받는데, 갑자기 내가 태국 사람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구가 얼마인지, 나라는 얼마나 큰지, 政情은 어떤지....
캄보디아 국경을 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시아누크와 킬링필드 말고 아는 게 없다. 더욱이 크메르 루즈 이후 오늘의 캄보디아에 대해선 백지상태.... 한국 전쟁고아들을 찍은 필름을 보고 한국이 아직도 그때 상황인 줄로 알고 있는 외국인들의 얘기를 들으면 기가 딱 막히는데, 나의 경우도 그 사람들과 다를 게 없구나. 하지만 운이 좋게도 태국에는 현지생활 10년째인 친구가 있었고 캄보디아에서는 가이드 이상의 우의를 보여준 두 친구를 만나 이들 덕택에 여행의 깊이를 훨씬 더할 수 있었다.
take advantage of (be)ing (in China)
학생 시절 영어과외 아르바이트를 할 때 가르치던 이 구문이, 여행하는 동안 話頭처럼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 동남아권에 깊고도 넓게 뿌리내리고 있는 중화문화의 위력을 체험하면서 내가 지금 발 딛고 있는 곳이 어떤 곳인지, 내가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행동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번 여행을 통해 다시금 느꼈기 때문이리라...
캄보디아 호텔방에서 늦은 밤까지 TV를 보는데, 하나도 못 알아듣는 채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요건 인도방송, 요건 캄보디아, 요건 베트남, 요건 태국 하는 나를 보고 남편은 머리 아프니 차라리 중국어채널을 보자고 한다(집에서는 그렇게 듣기 싫어하면서 그래도 중국말이 편한 모양이다). 중국어 채널도 영어방송 채널만큼이나 많다. 중국계 주민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뿐만 아니라 동남아국가의 TV 채널을 돌려봐도 하나같이 중국 TV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뮤직비디오를 그대로 틀어대는 건 물론이고 번안된 중국노래도 많이 나오고 연속극이나 오락프로그램도 상당히 베꼈다.
다니는 곳마다 중국계 주민을 흔히 마주칠 수 있다. 국적은 캄보디아, 국적은 태국이지만 춘절을 맞아 水餃를 빚고 對漣을 붙이고 폭죽놀이를 하는 화교가정이 어디에나 있다.. 경제력은 또 어떤가.. 동남아 화교자본의 위력을 말해주듯 시엠립이나 방콕시의 대형음식점, 기념품점의 주인들 중 상당수가 중국인들이나 화교들이란다.
아무튼 동남아권에 미치고 있는 거대한 중화문화의 영향력을 느끼며, 얼떨결에 남편 따라와 중국에서 보낸 세월이 7년이 헛것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어가 가능하고 중국문화를 어느 정도 이해한다는 것만해도 중국, 대만, 홍콩뿐 아니라 동남아를 포함한 더 큰 무대를 활동범위로 잡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advantage 아닌가. 중국에 대한 이해가 나보다 훨씬 깊은 아들놈 생각도 났고, 복 받은 줄 알고 이 기회를 더욱 잘 활용해야겠다는 생각도....(그렇다고 뭐 동남아로 진출할 계획이 있는 건 아니다. ㅎㅎ) 우쨌거나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기분좋은 일....
일상도 여행처럼
여행자들은 여행지에서 신선함이나 충격을 느끼지만, 정작 그곳에 살고 있는 현지인들 입장에서 보자면 천하에 없는 꽃놀이도 반복되는 일상의 하나일 뿐이다.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익숙해지는 순간 그것은 지루한 일상으로 변해버린다.
반복되는 일상을 지루하지 않게 하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와 노력이다. 여행하면서 열심히 스케쥴을 짜고, 호기심을 갖고 유심히 보고, 대가를 치러가며 새로운 것들 경험하고.....
여행은 그래서 나를 흥분시킨다. 여행으로부터 삶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을 유지하는 에너지를 받아 나의 일상이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하며 길을 떠나는 것이다.
일상도, 일도 이렇게 해야 한다.
흔히 관광지에 사는 사람들이 바로 옆인데도 가보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내 주변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호기심을 가졌다가도 가까워지면 무관심해지기 쉽다. 날마다 새로워지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찌르찌르가 찾던 파랑새를 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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