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예스타 섬으로 나를 데려다줄 차량이 오는 시간이 새벽 세 시라 2시 반에 알람을 맞춰놓고 아홉시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그 시간에 잠이 올 리 없다. 게다가 밖에서는 밤에 무얼 고치는지 드릴 소리, 망치소리가 밤 열두 시가 넘도록 끊이지 않는다. 종업원도 그러면 안 되는데 주인 할아버지부터 나서서 떠드니...
원래 이노무 호텔은 서비스 개념이 없다. 낮엔 조용한데 저녁 여덟시부터 리셉션 앞 소파는 동네 사랑방이 되어 새벽 두세 시까지 시끌벅적하다. 평소에는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끄고 있으면 그냥 잠이 오는데 잠들려고 애를 쓰니 오히려 정신이 말똥말똥하고 잠은 천리만리 달아나버린다. 몇 시간째 양도 세고 소도 세고... 그러다 보니 알람이 울린다. 아, 이게 아닌데, 아닌데!
미니버스 같은 것이 다른 투어 손님들과 함께 피스코까지 직접 실어다줄 줄 알았더니 승용차가 와서 달랑 나만 태우고 멕시코거리에 있는 중앙터미널로 간다. 거기서 나 혼자 피스코 가는 고속버스를 타고 피스코가 아니라 크루세 피스코에서 내리면 가이드가 나올 거란다. 돌아올 때 가이드가 버스에 태워주고 자기에게 전화를 해주면 자기가 터미널로 마중 나온다고... 짐작컨대 피스코의 가이드라는 사람은 바예스타 섬 가는 선착장까지 데려다줄 차량 기사일 꺼고, 선착장에서는 보트값에 포함된 가이드가 있을 거고.... 아이고, 식사비도 포함 안 됐으니 그냥 혼자 가는 거나 다름없구나. 버스표만 구해뒀으면 피스코 가서 택시 타면 될 꺼고, 보트비가 얼만지는 모르겠지만 버스표를 보니 25솔, 왕복 해도 50솔, 택시비 왕복 해봐야 30솔 남짓일 꺼고...110솔이면 되는 걸 110불을 줬구나. 나의 불운 탓인가, 게으름 탓인가.
내가 탈 Peru Bus 소속 버스는 2등급쯤 되어 보인다. 몸체는 엄청 긴데 작은 바퀴가 한 곳에 2개씩 총 8개가 달렸다. 버스에 올라타니 절반은 비었다. 봐라봐라, 자리 없다더니...
그런데 가면서 사람이 하나 둘씩 탄다. 불 꺼주길래 다리 쭉 뻗고 잠을 청해보지만 한번 깬 잠 다시 드나.
2시간 반쯤 더 갔을까? 그 새에 깜빡 졸았는지 어느새 밖은 어둠이 걷히고 버스가 꽉 차버렸다. 언제 탔는지 내 옆에는 막노동하러 가는 듯한 차림의 총각이 나랑 머리 맞대고 자고 있더군. 왼쪽으로 멀찌감치 버티고 섰던 안데스 산줄기는 어디로 가고 끝이 안 보이는 모래사막, 오른쪽으로는 해안이 함께 달리고 있다. 신선한 아침의 빛은 오늘도 여전히 나를 감동시킨다.
갑자기 크루세 피스코란다. 깜짝 놀라 서둘러 내리느라고 앞 의자에 단단히 묶어둔 빵봉지를 못 끄르고 내렸다. 하마터면 놓칠 뻔 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늙스구레한 아저씨가 맞아준다. 내 짐작대로 가이드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인물이다. 차에는 세르비아에서 온 아가씨가 타고 있는데 완전 공주 스타일이다. 쿠스코에서 어제 도착하여 피스코에서 잤다고 한다. 만일을 몰라 어디서 묵었냐고 물어보니 아주 싼 숙소였다고 소개해주는 게 20달러짜리다. 에고, 오늘 이 공주님이랑 동행하게 되는 건가?
오는 길 내내 허허벌판에 변변한 건물은 한 채도 없다. 작년 가을 지진으로 이 지역 건물이 거의 완파되었단다. 왼쪽은 황량하고 오른쪽에는 새파란 바닷물이 넘실대는 길을 15분 정도 달렸다.
여기는 바예스타 섬 가는 보트를 타는 선착장이다.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온 저 징그러운 녀석... 펠리컨들.
얌전히 있어도 무서운데 덩치가 크담한 것들이 안하무인 모래밭을 마구 헤젓고 다닐 뿐만 아니라 먹이를 먹겠다고 펄쩍펄쩍 뛰며 날갯짓을 해대니 동물 중에서 새가 제일 무서운 나는 멀찌감치 줄행랑. 도망치긴 했지만 난생 처음 보는 펠리컨이 신기해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먹이를 향해 돌진~~~!!!
거센 날갯짓에 모래가 날릴 정도다. 누가 펠리컨을 귀엽다고 했나.
꼬마가 와서 사진 찍었으니 돈을 내란다. 네가 기르는 펠리컨이냐고 물으니, 당연히 아니지.
그런데 네가 왜 돈을 달라느냐고 하니 자기 아빠가 펠리컨에게 먹이를 주어 펠리컨이 뛰도록 했으니 돈을 내야 한단다. 내가 언제 뛰게 해달라고 했느냐고 했더니 무섭게 노려보며 그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수많은 관광객들이 즐겁게 그들의 영업활동에 동참하고 있다. 사진을 찍을 뿐만 아니라 직접 펠리컨에게 먹이를 주면서 사진 찍히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새가 싫어... 새도 싫지만 내가 주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강제로 뜯기기도 싫다고.
상대가 어른 같으면 절대 안 뜯겼겠지만 일곱살 정도밖에 안 되어보이는 아이가 계속 구걸하듯 손을 내밀고 있는 것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 손에 잡히는 대로 몇 솔 주긴 했지만 기분 더럽게 나빴다.
녀석들아, 너희도 출연료 더 받아야 하는 거 아니니? 열나게 뛰는데 손톱만한 생선쪼가리 갖고 되겠어?
보트 나가는 시간이 되어 표를 사러 가니(비싸진 않지만 보트값 불포함이다. 쳇! 뭐가 투어라는 거야.)
비만도가 너무 높은 아저씨가 표를 판다. 썰렁했던 선착장이 어느새 관광객으로 바글바글하다.
세르비아 공주님은 앞 보트로 먼저 떠났다.
'작은 나스카'라 불리는 곳을 지난다. 무슨 그림일까~요?
너무 비싸서 나스카에 안 갔는데.... 경비행기 타는 것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나스카 그림'을 보는군.
염분을 포함한 안개 덕분에 모래가 굳어져 그림이 보존된 것이라 한다.
바예스타섬을 '가난한 자들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리게 만든 장본鳥들, 펭귄이다.
갈라파고스 섬은 펭귄과 바닷사자 등 야생 바다생물로 유명한 관광지. 에콰도르에서 태평양 쪽으로 한참 비행기를 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투어 비용이 800달러 정도나 한다. 그래서 주머니가 얇은 배낭여행자들이 갈라파고스와 비슷한 바예스타섬을 찾는다고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저 하얀 색은... 구아노라고 불리는 새 똥이다.
양질의 비료로서 페루의 중요한 수출품목이었다는데 지금은 화학비료에 밀리고 있단다.
아랫쪽 바위에서 뒹굴고 있는 것은 펭귄과 함께 이 섬을 관광명소로 만들어주는 바닷사자.
낮잠을 즐기는 바닷사자들.
다른 바위에서 이 녀석들이 으르렁대는 소리를 녹음했는데 그만 실수로 지웠다. ㅡ.ㅡ
이곳은 더 많은 새똥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지어준 물새들의 집이다.
새가 많은 지역을 지날 때는 우산을 쓰든지 해야 할 것 같다. 날아가며 장을 비우는 넘들이 많다.
잘가요~~ 배 엔진 소리 듣기 싫으니까 다시 오지 마세요~~
이슬라섬에 다녀오니 겨우 9시 반이다. 오늘 일정이 이걸로 끝이라고?
허무하다. 새벽 3시부터 서둘렀는데.... 이제 오후 2시까지 뭘 하나.
파라카스 해상공원으로 가볼까 해도 오며가며 보내는 시간 빼고 나면 한 시간도 못 있겠다. 그러기엔 추가비용이 너무 높고... 오던 길에 지나쳤던 어시장에나 한번 가볼까.
얘, 너도 심심해 보이는데 나랑 같이 갈래? ^^
해안가를 빼고 나면 너무나 심심한 마을..
여행객들을 위한 숙박시설도 두 개밖에 안 보인다.
재래시장까지 걸어나와 택시를 잡았다. 어시장까지 데려다주고, 기다렸다 데려와주는 데 20솔에 흥정.
어시장 조금 못미처 공항이 있다.
민간용이 아니고 공군용인데 지진으로 이 시설도 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사진 찍다가 혼났다.
공항 부설 숙소. 지진 때문에 이층을 못 올린단다.
어시장 입구..
저 사람은 누굴까? 동네 사람들은 알겠지만 설명이 없으니 내겐 그냥 동상이다.
화장실인가? 하고 들여다봤더니 그냥 빈 공간이었다.
호기심천국 장여사가 어째 이 동네에선 아무것도 안 물어봤는지 모르겠네.
시장 뒤편 공터에서 마을 사람들의 안녕을 빌어주고 있는 십자가
돌아와 점심을 먹고 있는데...(아무리 봐도 다른 사람과는 다른 옆자리 커플)
갑자기 신나는 북소리. 인근 레스토랑에서 연주회가 있으니 오라는 영업활동이었다.
두드리는 건 북이 아니라 의자 대용으로 쓰는 나무상자.
유전자가 다르지 않고서야.... 노력 만으로 저 카리스마가 나올까 싶다.
(플레이 버튼 누르시고 끝까지 보시면 북 두드리는 솜씨 + 개인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식당 화장실에서 질펀하게 물장난하다가 발각된 꼬마들
밥 먹고 바닷가로 나오니 바다도 푸르고 해변도 푸르고 동심도 푸르고...
햇살도 눈부시고 아가씨도 눈부시다.
사진 중간에서 삽들고 파는 아이들은... 한 푼이라도 벌려고 파라솔을 설치하는 중이다.
식당 의자에 앉아 있다간 굴러떨어질 만큼 졸음이 몰려오길래 나도 저 파라솔 하나 빌렸다.
파라솔 주인에게 1시 반에 깨워달라고 부탁해놓았더니 잊어버렸나보다. 솔솔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피스코 싸워(이 지방 특산 칵테일)에 취해 혼곤히 잠든 나를 아침에 태워다준 기사가 발견하고 흔들어 깨웠다.
돌아가는 길. 재건축중이거나 방치된 집들이 즐비하다. 우리 차 기사 아저씨네 집도 지진 때 파손되었는데 돈 때문에 공사 엄두도 못 내고 천막생활을 한다고 한다.
갈대로 엮은 거적이나 비닐이 공사중인 건물의 가리개인 줄 알았더니
어엿한 벽이었다. 이 동네는 안데스 산맥에 가로막혀 비가 거의 안 오니 상관없단다.
아, 답답하다... 지진이 난 게 작년 8월이었다는데...
제대로 다시 지은 집이 눈에 거의 안 띈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라고
내일을 꿈꾼다.
저긴 어딜까? 저 지역은 지진이 비껴갔나보다.
숙소일까? 레스토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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