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Cuba1 - from Bogota to Habana

張萬玉 2008. 9. 1. 07:32

 

쿠바에 대해서는 준비가 전무하여 간다고 해놓고도 걱정이었는데, 마침 태양여관 도서실에 론리 쿠바편이 있어 어느 정도의 준비가 가능했다. 

겨우 4박5일 일정이니 여기저기 다닐 수도 없고 아바나 주변에서나 어슬렁거릴 테니, 여느 나라 같으면 '에라, 가자~ 가서 닥치는 대로....'가 통할 수도 있을 테다. 하지만 쿠바는 쓸 수 있는 돈 못 쓰는 돈 가리고(이중화폐 사용), 묵을 곳 못 묵을 곳이 가리고(외국인은 지정숙박업소에만 머물러야 함) 먹을 곳 못 먹을 곳 가려야 하는(물가가 엄청나게 비싸다고 함) 까다로운 나라.... 단 하루를 묵더라도 기본 정보는 안 챙길 수 없다. 화장실이면 당연히 휴지가 있겠지 여기고 빈손으로 화장실에 갔다간 화장실에 갇히는 수가 있다고. ^^

 

우선 돈 준비.

쿠바에는 현금인출기도 없고 체크카드도 사용할 수 없고.... 신용카드는 쓸 수 있지만 수수료가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쿠바 현지 통화를 구하려면 환전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도 캐나다 달러나 유로화를 들고 가서....

물론 달러(다른 나라 화폐 역시)도 환전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미국의 달러 유통을 억제하기 위해 쿠바 정부가 달러의 환전수수료를 유로화나 캐나다 달러보다 10%를 더 높여놓았단다. 따져보니 콜롬비아페소 출금 수수료와 유로화 환전 수수료를 합친다 해도 달러 환전 수수료보다 적겠다. 아직도 미화가 800달러 이상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번거롭게 굳이 콜롬비아 페소를 인출해서 유로화를 산 건 그 때문이었다.

 

콜롬비아에서 유로화 사기도 쉽지 않았다. 당연히 은행에서 살 수 있으려니 했는데 이상하게도 은행에선 환전업무를 안 한다. 센트로나 소나 로사에 있는 환전소를 일부러 찾아가야 한다는데(공항에도 있지만 환율이 너무 나쁘다) 마침 태양여관에서 멀지 않은 갤러리아 백화점에 환전소가 있다고 해서 찾아더니...

유로화가 없다고 내일 오란다. 다음날 갔더니 오후 늦게나 되어 봐야 안다고 해서 또 허탕... 오후 늦게 전화해봤더니 내일 되어 봐야 안다고... ㅜ.ㅜ  혹시나 해서 태양여관에 방을 붙였더니 거기서 임자가 나타났다.

 

전직 사진기자 아저씨에게서 150유로, 파리에 유학중인 디자이너 총각에게서 100유로.... 도합 250유로 샀다.

그리 넉넉진 않지만 예산에 맞춰 쓰지 뭐. (당시 유로화 환율이 달러의 1.8배 가량 됐으니 미화로 450달러 정도). 숙박비 1박에 25쎄우쎄(1CUC는 1달러 조금 넘음) 잡고 50유로 정도면 하루 충분히 살겠지? (볼리비아라면 일주일이라도 버틸 예산이다. ㅜ.ㅜ) 혹시 트리니다드에 가거나 근사한 재즈바에 가거나 만일의 사태가 발생하게 되면 빵꾸나겠지만 그땐 어쩔 수 없이 비상금 달러를... ㅜ.ㅜ 

 

그 다음은 숙소 문제.

쿠바에서는 정부에서 지정해주는 민박집에 묵어야 한다지만 아는 사람만 있으면 절반 가격에 묵을 수도 있다고 들었다(물론 발각되면 벌금을 물어야 한다지만 집주인이 감수하고 손님을 받는 것이다). 운좋게도 쿠바를 거쳐 온 룸메이트 미소양이 자기가 묵었던 집을 소개해준다. 아바나 대학 학생인 데보라네 집인데 집도 깔끔하고 무엇보다도 외국인 사귀기를 좋아해서 자기 일정을 전폐하고 같이 놀아준다나? (사실 그것도 좀 부담스럽긴 하지만 쿠바에서는 음악 들으러 야밤에 술집을 전전할 계획이라 잘 됐다 싶었다.)

헌데 주소만 있고 전화번호가 없어 성사될 가능성은 반반이었다. 안 되면 그 동네에서 다른 까사를 찾아보거나 정 어려우면 경찰서 찾아가서 소개해달라지 뭐.   

 

태양여관 일행들과 그럭저럭 잘 지내긴 했지만 '밤 생활'을 공유하지 않다 보니 사실 '따'라면 '따'일 수도 있었는데 내일 떠난다 하니 황송하게도 삼겹살 파티를 벌여준다. 사실 여자라고, 나이 많다고 세심하게 배려해준 동생들에게 이 왕언니가 한턱 쏴야 하는 건데....

 

새벽 다섯 시 반에 쥐도새도 모르게 숙소를 나왔다.

보딩 패스 받으려니 여기서도  아르헨티나에서처럼 쿠바에서 나가는 비행기표 있냐고 물어본다. 미리 사두길 잘했다. 쿠바에서 사정 보고 산다고 미뤘다면 또 바가지 옴팡 쓰거나 쿠바행을 포기해야 했을지도 몰랐다.

출국세는 안 내고 대신 쿠바 입국에 필요한 tourist card 값으로 25달러 냈다. 쿠바는 여권에 도장 안 찍어주고 이것으로 비자를 대신한다고 한다. (입국신고서도 별도로 쓸 필요가 없다)

 

7시 30분에 이륙, 9시 15분경 파나마 시티 도착.

남미로 내려올 때 겨우 사흘 머물렀을 뿐인데 그새 무슨 정이 들었다고.. 친구네 놀러온 것처럼 반갑고, 충격적이었던 올드 시티의 추억이 아련하게 되살아난다. ^^

여기서 쿠바 국적기인 Aero Republica로 바꿔타고 아바나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경..

 

 

몽글몽글한 작은 구름들이 가지런히 수놓은 카리브해 상공 

 

출입국 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 친다.

돌아보니 파나마 공항에서 갈아탈 비행기를 기다리는 동안 잠깐 인사를 나눈 한국 아저씨다. 대기업 주재원으로 멕시코에서 10년 베네주엘라에서 6년을 근무했고 그후 독일로 다시 파견 나갔다가 거기서 자기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십수년을 투자한 중미통답게 사업의 거점을 다시 중미 쪽으로 옮겼고 지금은 파나마 시티에서 주로 쿠바를 상대로 무역을 하고 있단다. 50대 후반 정도로 보이고 점잖으시다.  

자기는 거래처에서 차가 데리러 오니 가는 길에 내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시겠단다. 이게 웬 떡?

하지만 나는 짐도 찾아야 하고 환전도 해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감사하지만 그냥 가시라고 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입국심사대가 널찍널찍하게 배치되어 있고 전방이 훤히 트여 있지만 쿠바의 입국심사대는 무슨 콜센터 사무실 같은 분위기다. 심사대가 나무판자 칸막이를 사이에 두고 다닥다닥 붙어 있기도 하지만 입국 심사를 받은 뒤 어떻게 밖으로 나가라는 건지 통로가 안 보이는 거다. 설마 우체국 창구처럼 볼일 보고 돌아나오는 건 아닐 테고.... 

심사가 끝나 '통과' 지시를 받고도 어디로 나가야 할지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막힌 벽처럼 보이는 곳이 자동으로 열린다. '막힌 것처럼 보이지만 필요할 땐 다 열리게 되어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경제 속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는 쿠바의 소신처럼 느꼈다면 과잉해석일까? ^^ 아무튼 이것이 내가 받은 쿠바의 첫인상이다.

 

입국심사를 마쳤으면 또 한 가지 중유한 일을 해둬야 한다. 환전...

시내에도 환전소가 있겠지만 잘 눈에 띄지 않으니 그냥 공항에서 하는 게 나을 듯하다. 참고로, 쿠바에서 쓰고 남은 쿠바돈은 쿠바를 나갈 때 공항에서 재환전해준다.

 

쿠바 돈은 두 가지다.  

쎄우쎄(CUC). 공식적으로 외국인들은 이 돈을 써야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외국인들이 드나들 만한 곳에서는 이 돈만 받는다.

  

쎄우뻬(CUP). 1쎄우쎄는 25쎄우뻬(보통 페소라고 부른다).

외국인이라도 동네 시장이나 길거리음식을 사려면 이 돈을 쓸 수 있다. 아니 이 돈이 아니면 안 받는 경우도 있다. 왜? (현지인들에게 쎄우쎄는 큰 돈이기 때문에 거스름돈이 없다고 거부한다.)

이 화폐의 세계에 입문하는 순간 쿠바에서의 생활은 갑자기 윤택(!)해진다. 질적으로가 아니라 양적으로... ^^ 

  

주머니를 두둑하게 채우고 나오는데 어라, 아까 그 아저씨가 기다리고 계시네. 거의 20분이나 지났는데....

덕분에 데보라네 집이 있는 성 나자로 거리까지 편안하게 왔다. 쿠바 거래차 5년의 내공에서 오는 알짜배기 쿠바여행 tip까지 얻어가면서.... 여행길에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것 같은데 맛있는 거 한번 사주고 싶다는 황송한 제안까지 하신다. 사실 신세를 갚을 사람은 난데...

안 그래도 쿠바에서 재즈바에 한번 가보고 싶은데 여행지에서 혼자 밤 외출을 안 한다는 안전수칙을 지키려니 갈등 생기던 중인데 잘 됐다. 신세도 갚고 깊이 있는 쿠바 얘기도 듣고 연주도 보고.... 말 그대로 일석삼조네.

서울에서 같으면 쉽지 않은 약속이지만 여행길에서는 그 쉽지 않은 이유가 전혀 들러붙지 않으니 거참 신기하고 상쾌한 일이다. 

 

아저씨 볼일이 끝난다는 이틀 뒤 저녁으로 약속을 잡아놓고 먼지 가득한 동네길로 내려섰다.

운전기사는 '여기 위험한 동넨데 왜 여기서 묵느냐?'고 연신 의아해하고 아저씨도 숙소를 예약해놓은 게 아니면 옮기지 그러냐고 걱정을 하지만 내겐 쿠바 사람들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어디나 나쁜 사람들은 있는 법이지만 사회주의적 통제가 막강한 나라에서는 함부로 준동하지 못하니 오히려 다른나라보다 안전할 것이다. 

쿠바에서 내가 불안하게 느끼는 게 있다면 민간인보다 오히려 정부 쪽이었다. 익숙하지 못한 사회주의적 규제에 부딪혀 낭패가 생기면.....

비행기 아니면 빠져나가기 어려운 섬나라라는 점 때문이었을까, 돌아갈 날이 임박했기 때문이었을까, 쿠바에 있는 내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근거없는 일말의 불안이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우습게도.         

 

 

길을 잃기 쉬운 비슷비슷한 골목에서 늘 길잡이 역할을 해줬던, 특이한 발코니를 가진 아파트

 

데보라네 집이라고 적힌 주소는 바로 저 아파트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람이 안 사는 아파트처럼 생콘크리트가 살벌하게 속살을 드러내고 구석구석 거미줄마저 걸려 있다.   

401호였나? 배낭 메고 낑낑거리며 올라간 보람도 없이 그런 사람 없단다. 혹시 5층? (남미에서는 1층을 바닥층이라고 부르고 층수로 안 치는 곳이 상당히 많다) 한층 더 올라가니 거기도 아니란다. 그럼 혹시 옆 현관?

거기도 아니다. 

 

이제 어디로 간다?

아파트 앞으로 내려와 이 사람 저 사람 붙잡고 혹시 데보라를 아느냐고 물어보다가 혹시 이러다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하겠다 싶어 다른 민박을 찾기로 마음먹고 (내가 데보라를 아는 것도 아니고 예약한 것도 아니니..) 1층 아무집이나 초인종을 눌렀다.

  

닻 모양의 표지가 붙어 있는 집이 정부의 허가를 받은 민박집이다. Habana viejo 뒷골목에 많이 있다. 

 

까무잡잡한 아줌마가 환하게 웃으며 나오길래 민박 안 하냐, 웬만하면 좀 하라고 했더니 허가받지 않은 집에서 마음대로 관광객을 받았다간 걸린다면서 아는 까사가 있다고 따라 오란다. 

 

끌라리싸네 집. 내 방은 옥상에 올린 옥탑방이었는데 사진에는 안 보인다.

겉은 허름해도 내부는 나름대로 정성스럽게 꾸며놓았다.

놀라운 것은.... 비가 오거나 옥상 물청소를 하면 배수구를 따로 만들지 않아 지붕쪽에 빼어놓은 파이프를 통해 동네길로 오수가 배출된다는 사실.

 

새로 꾸몄다고 30쎄우쎄 부르는데 깎아서 25쎄우쎄.... 더 깎아보려고 별 소리를 다해봐도 소용없다. 자기네 집이 이 동네 최고고 세금도 내야 하고...

선선한 콜롬비아에서 새벽에 출발했는데 졸지에 태양의 융단폭격 속으로 들어온 내 몸은 열충격 실험을 겪어내느라고 완전히 탈진한 상태... 게다가 배낭을 지고 4, 5층을 걸어서 두 차례나 오르락내리락 했으니 지옥만 아니라면 내일 옮기는 한이 있더라도 배낭을 내려놓을 수밖에....

 

 

내 방 사진을 찍은 것 같은데 어째 없다. 아무튼 촌각시 신혼방 같다.

방문을 열면 바로 부엌(2층에도 방이 두 개. 거기 묵는 사람들과 함께 쓴다)과 옥상 정원으로 가는 문이다.

 

빨래를 해 널면 세 시간도 안 돼 바싹 말려주는 햇살 좋은 정원. 

 

까사 주인 끌라라(사진 오른쪽)과 그녀의 언니.

 

쉰 일곱이라는 여인의 저 육감적인 몸매라니...

흑인-라티노 혼혈이라 그런지 이목구비도 또렷하다(선글래스를 벗으면 꼭 탤런트 김수미씨 같다).

과묵하고 건장한 흑인이 가끔 보이길래 아들인가 했더니 재혼한 남편이란다. 서른여덟 살의 의사다.

까사를 운영한 지 십오 년째라는데, 자타공인 동네 다른 집들보다는 사정이 훨씬 윤택한 것 같다. (어떤 계기로 살 만해졌는지 너무 궁금했지만 시원한 대답을 얻지 못했다).

초혼에서 얻은 스물일곱 살짜리 큰아들은 얼마 전에 미국으로 건너가 돈 벌고 있고 스물두 살짜리 둘째아들도 곧 뒤따라 갈 꺼란다. 아침마다 근사한 재즈곡을 틀어놓고 커피 한 잔 하자고 불러앉히고는 매일 한 가지씩 자랑이다. 미제 물건 보내주는 큰아들 자랑, 자상한 남편 자랑, 고위직에 있는 친구 자랑.... 젊은 시절에 어떤 풍파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환갑을 눈앞에 둔 그녀는 지금이야말로 인생의 단맛을 만끽하고 있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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