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아시아(중국 외)

베트남4(달랏1) - 나의 살던 고향은...

張萬玉 2009. 4. 29. 11:20

바나나 나무 숲이 소나무숲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계속 평지만 달리다가 오랜만에 산길에 드니 새로 여행 시작하는 기분이다. 역시 난 산간마을에 와야 氣를 받는다. 

 

중간에 들른 휴게소 화장실의 저 뽀독뽀독한 자태!

실내화로 갈아신게 하는 공중화장실은 또 처음이다. 사람이 지키고 서서 한차례 드나들고 나면 한바탕 걸레로 밀고 실내화를 나란히 정리해놓는다.    

 

옆자리에 노부부가 앉았는데 꼭 우리 친정부모님을 뵙고 있는 듯하다. 베레모 쓰고 스타킹 양말 신으신 할아버지, 손에 거즈 손수건을 꼭 들켜쥐고 간식 드시는 영감님을 지키고 있다가 흘리기 무섭게 닦아주시는 할머니... 초라할지 모르지만 정갈하게 살아가는 그분들의 일상이 살갑게 전해져온다. 아들 집에 가시나, 정성으로 챙겼을 바리바리 짐 속에서 롯데 커스터드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다.

 

버스에 탄 사람들 대부분 귀성객들인 듯한데 저마다 운반이 쉽지 않을 만큼의 짐들을 꾸려왔다. 그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가전제품. 버스 안에 떠도는 공기는 고향 가는 즐거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이 기운은 70년대말 80년대 초반의 기운이다. 새마을 노래로 하루를 시작하던.... 부지런히 수족 놀리면 내일은 잘 살 수 있을 꺼란 희망에 부풀었던 그 시절의 기운. 

 

 

 

 

깊은 골마다 피어오르는 짙은 안개 때문에 높이 솟은 산봉우리들은 마치 먼 바다 위에 떠있는 섬 같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신비한 퍼레이드를 반복하던 산봉우리들이 갑자기 잦아들자 곧 달랏이란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또 다시 입이 딱 벌어진다. 높은 지대를 이용하여 입체적으로 건설된, 영화 속에나 나올 법한 특이한 도시의 모습...

 

달랏은 베트남 사람들이 신혼여행지로 손꼽는 도시란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든 호텔 역시 허니문 호텔다운 달착지근한 분위기를 풍긴다. 신부화장을 위한 뷰티샵도 있고 객실도 꽃과 풍선과 아기자기한 도자기 소품들로 나름 멋을 부렸다. 40불짜리라는데 우리는 오픈투어 고객이라 18불 내란다.

 

 자, 그럼 숙소 동네 한바퀴 돌아볼까.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제일 먼저 나의 시선을 끈 골목길 간식.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풀빵 같은 건데 밀가루 반죽이 아니고 찹쌀가루 반죽에 메추리알을 하나씩 넣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간식이 아니라 식사메뉴였다. 이걸 상추에 싸서 양념장을 얹어 먹는다.  

 

 

 

사방에 겨울옷 장사다. 

겨울이라고는 하나 오월처럼 따스했던 호치민과는 달리 이 도시는 초겨울이다. 6시간 정도 북쪽으로 올라오기도 했지만 그보다도 여기는 깊고 깊은 산골마을이기 때문이다.

 

센트럴 마켓 건너편, 고지대와 저지대를 이어주는 육교.

이 육교와 연결된 5층짜리 건물은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동대문 시장 같은 덴가보다. 포목, 의류 부자재, 액세서리, 신발 등 도매상점이 빼곡하다.

 

상가 베란다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보니....

 

 

코코넛 채썰기의 달인들. ^^

 

새해맞이 집단장용 인조 버들가지가 활짝.

  

'꽃의 도시'라는 명성에 걸맞게 꽃가게도 즐비하다. 

  

달랏 마을의 중심인 로터리 광장. 

산골마을이니 소박할 꺼라고 생각했는데.... 예상 외였다. 

 

맞아, 이 도시는 프랑스 식민시절부터 휴양지로 개발되어왔던 동네였지... 

로터리 주변에서 '골프 호텔'이라는 호텔도 봤다. 거기는 No.1이었고 다른 곳 어디선가 No.3도 봤다. 신혼여행 뿐 아니라 골프 치러도 많이 오는 모양이다. ^^ 

 

시내 한복판에 이런 멋진 호수가 있다니...

 

 

 

 

한국에 쌀국수집으로 알려진 포 호아. 여기선 특별한 외식을 원하는 사람들이 오는 고급레스토랑이네.

 

론리플래닛에 '50년대 문인과 지식인들이 죽치던 곳'으로 소개된 까페 TUNG이 눈에 띄어 들어가보니

대학로 학림다방 분위기....

문인인지 지식인인지 모르겠지만... 헐일없어 보이는 아저씨들이 죽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는 밤 골목길. 날이 추워 그런가 가슴 한쪽이 슬그머니 시려 온다.  

 

 

이튿날 새벽 6시. 산골마을에서 뜨는 싱싱한 해가 보고싶어 눈여겨 봐뒀던 동네 뒤쪽 우뚝 솟은 교회로 올라갔는데 해는 이미 떴다. 그래도 쨍한 아침기운의 응원을 등에 업은 김에 교회 뒤 가파른 야산으로 기어올라갔더니...   

 

정다운 동네가 날 반겨준다. 내 어릴 때 살던 동네, 여기가 바로 거기네... 

 

길은 좁은 시멘트 계단으로 이어지고

 

 앞집과 뒷집 빨래들이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다.

 

꼭대기 노점에서 꼬마들이 아침을 먹고 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엄마가 노점 주인인가?

선지와 내장이 들어간 쌀국수를 참 맛나게도 먹는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이 동네엔 반세기 전 프랑스 사람들이 쓰다가 버리고 간 낡은 별장들이 즐비하다.

이 집은 사람이 살아서 상태가 좋지만 검은 이끼에 뒤덮여 완전히 폐가처럼 보이는 집들도 꽤 있다. 

 

등 뒤에서 팍팍 밀어주시는 햇님의 도움으로 길어진 내 다리... ^^

 

이 나라 청소년들도 입시전쟁중인가? 학교들 정말 일찍 가는군. 

 

아직 일곱시도 안 됐는데.... 

  

바쁘다, 바빠! 

 

 

급하던 내리막길이 완만해지니 게스트하우스와 식당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내려올 만큼 내려온 것 같은데 여전히 높은 지대에 서 있군. 

엊저녁에 본 쑤안 흐엉 호수까지 눈에 들어온다.

 

호치민에서 예약하지 않고 우리가 직접 숙소를 찾았다면 3불짜리 도미토리가 즐비한 이 골목에 묵었을 꺼다. 센트럴마켓 맞은편에서 산으로 올라가는 골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