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달랏을 돌아보려고 배정한 시간은 단 하루.
정보도 없고 대중교통도 여의치 않을 것 같아 호텔에서 제공하는 반나절 투어를 불렀더니 제일 먼저 베트남의 마지막 황제 바오다이가 머물렀다는 여름별장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아, 이건 아닌데....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ㅜ.ㅜ 그냥 마음 비우고 즐기기로 한다.
가이드가 '마지막 황제'라고는 했지만 그는 사실 일본에 의해 만주국 황제 노릇을 했던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나 다름없는 존재. 응웬 왕조를 열었던 그의 할아버지 지아롱 황제는 프랑스의 힘을 빌어 베트남의 부흥을 꾀했고 그의 아버지 카이딘 황제는 우리나라의 대원군처럼 서구세력을 봉쇄하고 유교문화의 중흥을 꿈꾸다 프랑스의 침략을 불러들였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하기는 했으나 선친들과 달리 그는 아무런 실권도 갖지 못한 채 프랑스와 일본과 심지어는 베트남 독립동맹(월맹)에 이르도록 얼굴마담 노릇만 하다가.... 그마저도 제대로 못해내고 결국 타국에서 사치를 일삼다가 생을 마감했다. 모진 역사의 흐름은 한 가문의 명운을 이렇게도 극적으로 바꾸어놓는구나.
행복하셨나요, 이 곳에서?
당시로선 新물산이었을게다.
이 별장에서 가장 근사한 곳, 프랑스식 정원
다음으로 간 곳은 竹林선원
베트남에 와서 처음으로 본 절이다. 널린 게 사원이고 승려였던 다른 인도차이나 국가들과는 달리 사회주의 혁명을 거쳐서 그런지 베트남에선 도통 눈에 띄지 않았는데....
남방불교 사원들과는 달리 조용하고 정갈한 경내
근엄한 불상은 우리나라 부처님과 매우 닮았다.
알록달록 요란스러운 남방불교 사원만 보다가 단아하다 못해 단조롭기까지 한 사원을 보니
고향에 돌아오기나 한 듯 왈칵 반가운 생각이....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죽림선원이겠는데 대나무는 그리 많지 않다.
그래도 솔바람을 맞으며 아름다운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
세번째로 들른 곳은 프렌 폭포.
이곳은 원래 소수민족들이 살던 곳이었는데 폭포를 개발하면서 30km 밖으로 밀려났다고 한다.
급경사길로 10분 정도 내려가니
근사하긴 하지만 감동적일 정도는 아니네.. ^^
내려갈 땐 일부러 걸어내려갔는데 좀 심심해서 올라올 땐 롤러 코스터를 타봤다.
심심하긴 마찬가지. ^^
여기는 1930년대에 개통됐다는 달랏 기차역.
해발 1500m 고원도시에 있는 기차역이라 그런가 웬지 분위기가 특별하다.
당시 움직이던 기차가 보존되어 있다.
당시 사용하던 엔진이라네.
당시 모습 그대로 보존되고 있는 이 기차역은 지금도 사용중으로, 이 철도를 거쳐 하노이까지 간다고 한다. 차라리 호치민에서 오픈투어 버스 대신 열차를 타고 종단할 껄 그랬나?
여기는 Flower Park. 화훼공원이라고 해야 할라나?
이게 베트남 國花인 줄 알고 찍어놨더니.... 베트남 국화는 연꽃이란다.
멀리 계단 꼭대기에 있는 건 난을 재배하는 비닐하우스란다.
재미있는 조형물도 갖춰놓고 시원한 연못도 있긴 한데... 털어낼 수 없는 이 섭섭함은 뭐지?
달랏에서 가장 오래 됐다는 성당. 1930년대에 지어졌다고 한다.
그 성당보다 더 내 관심을 끄는 동네 성당(인지 교회인지....)
관광이란 게 이렇게 지루했던 적은 처음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절대 관광지 탓이 아니었던 것 같다. 마음 문을 닫아 건 내 탓이었지.
오후 1시경 준비된 관광코스가 끝났다고 하길래, J가 인터넷에서 본 적 있다는 크레이지 하우스 앞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갤러리나 무슨 예술 같은 것을 기대했는데 어찌나 황당한지.... 이건 놀이동산에서 볼 수 있는 유령의집 아닌가베. 입장료도 꽤 비싼 편이라 들어가? 말아? 하다가 그냥 콱 들어갔는데....
옴마야, 이게 뭐니.... 정말 미쳤어 미쳤어!
원래 이름은 'Nga'의 동굴'(Hang Nga)이지만, 미치지 않고서야 저런 집을 짓겠느냐고 동네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바람에 붙여진 크레이지 하우스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더라.
3층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찍었다.
헌데 알고 보니 이곳이 숙박업소란다.
계단 따라 올라가면 동굴처럼 아늑한? 으슥한? 공간에 침실이 차려져 있는데....
깔끔한 침구가 푹신하게 깔린 더블베드가 놓여 있고....
사진엔 안 나왔지만 옷장과 탁자, TV 등 간단한 가구도 갖춰져 있다.
이 공간은 욕실.
신혼여행 온 부부들이 재미 삼아 묵어간다는데.... 침실 문도 없는 이 으시시한 방에서 과연 잠이 올까?
참 취향도 가지가지다. ㅎㅎ
출구 근처에 이 집을 지은 건축가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호치민의 뒤를 이어 제2대 당 주석을 지낸 VIP의 딸로서 모스크바에서 14년 동안 유학한 건축가라고 한다. 아버지 때문인지 특이한 컨셉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집은 달랏의 명소일 뿐만 아니라 베트남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집이란다.
건축물 곳곳에 여인의 몸을 상징하는 장식이 숨어 있다. 동굴이라는 컨셉도 그렇고...
이 건축가는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작가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제 숙소 뒷동네를 구경했으니 오늘은 앞동네 구경을 나가본다. 퉁까페를 끼고 오른쪽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도로변과 하천변을 정비하느라고 부산하다.
내가 높은 지대에 있는 마을에 끌리는 게 다 이유가 있다는 걸 달랏에서 깨달았다. 나도 어릴 때 산비탈을 깎고 축대를 쌓아 집을 지은 동네에서 자랐다. 열 평 남짓 조성한 옹색한 터에 집들을 지어놓으면 집 앞엔 두세 사람 정도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의 공간이 남는다. 그걸 마당이라고 온 동네 아이들이 모여 고무줄도 하고 다방구도 하다가 축대 아래로 떨어져 팔 부러진 아이들이 어디 한둘이었던가. 비탈이 심한 동네에 들어설 때마다 날 잡아끄는 이 정체모를 느낌은 다름아닌 유년시절에 대한 향수였던 모양이다.
오토바이 두 대가 조심하며 간신히 지나갈 만한 좁은 시장골목
아직도 팔 물건은 많이 남아 있는데 벌써 해가 기울고 있다.
J의 보조배낭 한귀퉁이가 뜯어지기 시작했다고 캄보디아에 있을 때부터 시장통에 들어서기만 하면 수선집을 찾아다녔는데 뭐가 어려운지 모두들 도리질이었다. 계속 거절을 당했기에 별 기대 없이 던져본 부탁이었는데 이 착한 아가씨가 고개를 끄덕여준다. 이불 꿰매는 집이라 실도 바늘도 갈아끼워야 하고 작업이 그리 마땅치는 않았을 텐데 튼튼하고 얌전하게도 고쳐주었다. 수선비를 줬더니 절대 안 받겠단다. 이걸 어째...
다행히 태국에서 산 곱창(머리 묶는)이 있길래 '이거라도....' 하고 내미니 예쁘다고 좋아한다.
하하... 얘네들도 닭발 먹네?
오리발은 묶였다. ^^
시장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서 호수 건너편 동네로 올라가본다.
건너편 동네 가장 높은 곳에 우뚝 서 있는 '수탉성당'.
사진엔 안 보이지만 꼭대기 십자가 위에 수탉이 있어서 붙은 별명이란다.
수탉 성당 뒤쪽에서 내려다본 마을은 휴양도시라는 이름에 걸맞는 예쁜 집들로 빼곡했다.
아마도 이곳이 달랏의 업타운인 모양이다.
도착하던 날 길거리에서 본 찹쌀풀빵.... 그건 사실 이렇게 상에 오르는 정식 메뉴였다.
저 쌀빵을 상추에 올리고 생강채와 양념장을 얹어 싸먹는 거다.
멋모르고 쌀국수를 시켰다가 옆자리에서 먹는 걸 보고 너무나 아쉬워하는 우리들에게 한 쌈 맛보라고 권해주는 인정 많은 커플.... 맛도 좋지만 얻어먹으니 곱배기로 맛있데~
이제 나트랑으로 떠날 시간.
아가씨가 멀미를 심하게 하는 모양이다. 저렇게 파스를 붙인 사람을 몇명 더 보았다.
호치민에서 달랏으로 들어갈 때 그랬듯 나트랑으로 나올 때도 역시 한참 돌고 돌아야 첩첩산중을 벗어날 수 있으니 멀미가 날 만도 하지.
중간에 잠깐 쉬었던 산골마을에서 예쁜 아이들을 만났다.
예쁜 돼지들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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