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해주신 덕분에 어젯밤 자정 무렵 무사히 귀국했습니다.
도난도 사기도 푸대접도 안 당하고 소중한 추억들을 가슴 그득 싣고 왔지만.... 悲報가 있습니다.
여행중에 정성껏 써내려갔던 일기를 에딘버러에 그만 두고 왔군요.
그래도 중요한 순간마다 기록하듯 찍어둔 사진들이 있으니 그걸 보고 재생할 수 있겠다고 여기고 파리의 어느 문구점에선가 산 노란색 노트는 그만 잊기로 했는데
6G 이상 담아온 이미지 저장장치까지 글쎄 꼼짝을 안 하네요.
사실 여행중에 민박집에서 그 사실을 알아채고 은근히 걱정을 했더랬었어요. 그래도 설마설마 했는데...
집에 와서 아무리 열어도 정말 열리지가 않으니 이를 어쩌면 좋아요.
이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졸린 눈을(이제 그 동네에서는 잘 시간이니) 비벼가며 몇 시간째 씨름중이랍니다.
결국 데이터 복구 전문가를 찾아가야 하는 거 아닌가(몇 십만원씩 받는다던데) 하는 불길한 예감 때문에
안 그래도 산적한 집안일도 손에 안 잡히고... 여행 끝마무리가 적잖이 우울합니다... 만 뭐 어떻게든 되겠죠.
아닌게 아니라 석 달간 아들넘에게 맡겼던 살림도 돌아봐야 하고 무엇보다 중국행 이삿짐 싸는 일이 바쁘게 되었으니
사진복구에 대한 미련은 일단 잠시 접어야 할 것 같네요.
혹시 제 여행 얘기가 궁금해 기다리셨던 분들이 있다면 좀 더 기다려 주세요. 아니, 어쩌면 좀 많이 기다리셔야겠어요.
우여곡절이 많았던 만큼 들려드리고 싶은 얘기들도 많답니다. 좀 기다려주세요.
일단 카메라 메모리 카드에 남아있던 마지막 구간 사진 몇 장 올려놓을께요.
이제 '알려드립니다' 카테고리에선 이만 물러나고...
머지 않아 유럽여행 카테고리에서 다시 뵐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런던 밀레니엄 브리지에서 본 백파이프 연주자. 연주보다는 연기에 더 능한 것 같았던....
얼굴을 보면 진짜 스코틀랜드 출신이 아닌가 싶다.
영국 여왕의 사유지답게 품이 넉넉한 그린파크에는 동물들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다.
겁도 없이 사람 손등까지 찾아든 산발참새.
"We respect soldiers, We do not support the war."
웨스트민스터 사원 앞 공원에는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두 달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었다.
혈관계 질환 방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자전거 행렬 뒤로 참전 훈장 잔뜩 단 낡은 모자를 눌러쓰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노인을 보았는데
이틀 뒤 석간신문에서 이 노인을 다시 만났다. 여왕 행차 행렬에 뛰어들었다가 체포된 이 노인은 2차대전 참전용사로서
십 년째 이 광장에서 천막을 치고 살며 전쟁반대운동을 벌여온 것으로 유명한 인사라고 했다.
갈 때 사진도 올렸으니 올 때 사진도 올려야지.
동쪽에서의 노을이 가장 붉었다. 서쪽을 향해 날아가니 붉은빛이 점점 약해지다가 마침내 눈을 찌르는 백열등 불빛으로 바뀌어버렸고
그 결과 나는 아홉 시간 젊어지느라고 한숨도 못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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