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新)

오자마자

張萬玉 2010. 6. 12. 19:03

# 욕심도 팔자

 

쥐띠는 물어오기도 잘 물어오고 물어다주기도 잘 한다고들 한다.

실제로 주변에 그런 친구가 있기 때문에 그 속설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도 그 친구는 '조달청'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물어다가 남 주는 일에 열심이기 때문에 욕심껏 물어오는 일이 보람이나 있지만...

 

옷 사기 전에 옷장 점검부터 하라고 했다.

있는 줄도 모르고 또 사고.... 있지만 싫증이 나서 또 사고... 신제품은 구제품과 다르기 때문에 또 사고...

(어쩌면) 심심해서 나갔다가 한번 사보고.... 하지만 필요없는 것도 아까워서 못 버리고...

그렇게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쌓아놓았다가 누려보지도 못한 채 처분해야 하는 지경에 이른다면 그 물어온 노력이 가련해서 어쩌냐고.

 

기능만 하면 되는, 그것도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여기는 나. 소비에 관한 한 가히 원시인급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렵게 살았던 과거의 습관 때문이겠지만 지금의 원인은 사실 무신경과 게으름 때문인 줄... 나도 안다.

필요한 게 있어도 꾸물거리다가 대충 넘어가고, 마음 먹고 나갔다가도 (별로 비싼 것도 아닌데 손에 돈을 쥐고도) 들었다 놨다 하다 돌아서기 일쑤인, 

그래서 남들로부터 (아니, 나 스스로로부터도) 궁상이 몸에 배었다는 질책에 주눅이 들어서 가끔은 주머니끈을 좀 풀어야겠다는 생각도 하지.

하지만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남의 물건들을 보면서 간단하게 사는 게 진짜 편한 팔자라고,

계속 간단하게 살자는  생각을 굳히게 되는... 상하이의 첫날.

 

 

# 기초공사중

거류비자를 내려면 신체검사 결과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아침 굶고 건강검진센터에 갔다.

일사천리로 진행된 검사는 채 한 시간도 안 걸렸다. 이제 일주일만 기다리면 1년 동안 중국민들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중국에 머물 수 있게 된다.

그때가 되면 중국운전면허를 신청해야지. 1997년에 필기와 적성시험을 거쳐서 기껏 따놓고서는 제때 갱신을 안 했으니 아마 말소되었을 거다.

보다 적극적인 중국생활을 위해서 웬만하면 소형차도 한 대 뽑으면 어떨까 생각중이다.

그동안 차값이 많이 내렸다는데.... 차값이 6만원 정도라면 번호판 값은 4만원이란다. 중국은 이런 식으로 자가용 인구를 통제한다.

 

우선 급한 휴대폰부터 장만해야겠기에 휴대폰 매장에 갔더니 여행기간 내내 내 눈길을 끌었던 아이폰이 4900원에 나와 있더군.

탐나긴 하지만 더 나은 성능, 더 싼 가격을 기다릴 수 없을 만큼 긴박한 일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처지니 체면상 좀 참기로 하고

그래도 미련을 못 버려 제일 싸고 간단한 걸로 (머지 않아 바꿀 구실을 만들기 위해... ㅎㅎㅎ) 골랐다. 

뮤직도 포토도 안 되고... 슬라이딩 타입도 아니면서 커버도 없는 초간단 폰이다. 그래도 삼성 애니콜이다, ^^ 380원 줬다.

 

은행에 들러 소액을 입금하고 카드를 만들었다. 중국도 이제 인터넷뱅킹이 보편화되었다고 하니 그것도 좀 시도해볼까 한다.

전철역에 들러 교통카드를 구입하고 100원을 충전했다.(버스요금 2원, 지하철 기본요금 3원). 아, 깜빡잊고 지하철 노선도를 구하지 않았다.

그동안 상하이 지하철은 십 몇호선까지 늘어나 자주 갈 일이 있지만 교통이 불편해 자꾸 택시를 쳐다보게 만들었던 동네까지 뻗쳤으니

잘 연구해보면 차를 안 사도 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교통카드를 손에 쥐고 나니 진짜 상하이 현지인이 된 기분이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내일은 일요일이지만 남편은 계속 출근이다. 대신 월, 화, 수요일에 쉰다고 한다.

어찌된 영문이냐 하면.... 너무 오래 쉬는 노동절 휴가를 단오절 쪽으로 좀 나눠주기 위해서 주말휴식을 뒤로 미뤄 단오절 휴일에 붙인 것이다.

근무일이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일찍 퇴근한 남편은 동문 모임에 갔고(아마 어느 식당에선가 모여서 응원을 하겠지)

나는 중국에 온 이래 처음으로 컴터 앞에 앉았다. 

예상대로 블러그는 접속할 수가 없었지만 다정한 블러그 친구의 도움으로 단속망을 교묘하게 피해 간만에 느긋하게 자판을 두들기고 있다.

헌데 거실에 틀어둔 TV에서 애국가 소리가 들리니 암만해도 나가봐야 할 것 같다.

 

무더위를 각오하고 왔지만 상하이는 생각보다 시원하고 모기도 아직이다.

뻔하다고 여기지 말고 하루하루 정성을 다해서 살자고 다짐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