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홉번째 맞는 '넷째 수요일'이었다.
병을 고치고 있다는 희망을 안고 돌아오던 여느 '넷째 수요일'과는 달리 갑갑한 가슴을 안고 돌아와야 했던...
그동안 몇 밀리미터씩 꾸준히 줄어왔던 췌장쪽 원발암이 지난번 진료 때 1밀리 정도 커졌다고 하더니 어제는 '쪼끔 더' 커졌다고 하고
3600에서 1065까지 꾸준히 줄어왔던 종양지표 수치도 지난번엔 1150으로 오르더니 이번에 1500을 찍었다고 했다.
그동안 부작용도 적은 편이고 체력이나 몸 상태도 괜찮았기 때문에 암 크기 역시 계속 줄어들어 줄 것으로 기대해 왔는데... 근거 없는 기대였던가.
내성이 생긴 건 아닌지... 약이 안 들으면 이제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하는 건지 잠시 눈앞이 캄캄했지만
선생님은 그게 의미를 둘 만한 변화는 아니라고, 좀더 해보자고 하신다.
그간의 순조로워보이던 경과에 고무되어 항암치료 안 해도 되는 날이 남들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내 어리석은 조급함이 완전히 한방 먹었다.
췌장암이 약 잘 안 듣는 암이란 얘기.. 안 들었냐.
평균 생존기간이 1년이란 얘기.. 안 들었냐.
항암치료가 기본적으로는 생명연장 치료라는 얘기.. 안 들었냐.
완치판정 5년 후에도 재발했다는 얘기.. 안 들었냐.
이 모든 나쁜 얘기 다 들었지만... 그래도 꿋꿋하게 시작하지 않았느냐 말이지...
수많은 사람들의 사례들을 부정하고 외면하는 것이 투병의지는 아닐 터.
또한 기적이란 게 믿는다고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도, 목마르게 탐한다고 주어지는 것도 아닐 터.
이 모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겠다고, 결과와 상관없이 그저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했건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나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여생을 절망으로 보낼 순 없지 않은가.
남편도 내가 의연하기를 절대로 바랄 텐데.... 끝까지 웃음을 잃으면 안 된다.
내 남편은 특별할 꺼라는 근거 없는 믿음에 어느새 너무 많이 기대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게 한.... 아홉번째 맞는 넷째 수요일.
'그 시절에(~2011) > 地芚山房'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단은 온건 노선... (0) | 2011.06.30 |
---|---|
투병 선배의 조언 이후 (0) | 2011.06.28 |
'넷째 수요일' (0) | 2011.06.16 |
인터넷 안부 (0) | 2011.06.07 |
4G로만 말고 발로도 뛰어주세요, 올레! (0) | 2011.05.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