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대병원 선생님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일단 서울대병원에서 가져간 8차항암 결과의 CT와 종양표지자 수치를 검토하고는
"6밀리 정도 늘어난 것 가지고 내성 여부를 결론지을 필요 없다. 최소한 10차 항암 후 CT까지는 기다려보는 게 어떠냐"고 하신다.
게다가 아직 표준치료로 정착하지 않은 치료일 뿐 아니라 개인 차이, 암종의 차이가 있으니 모험적인 치료가 될 터인데 신중하게 결정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이다.
치료방법을 바꾸게 되면 약물도 바꿀 가능성이 높은데 현재 쓰고 있는 '젬자-젤로다'의 조합이 췌장 항암제로는 가장 이상적이기 때문에
서울대 병원 선생님이 다른 말씀 안 하시면 그대로 믿고 따라가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하신다. (하긴 우리는 넥시아의 지원사격까지 받고 있지 않은가..)
암 사이즈의 크기나 종양지표 수치의 상승이 그리 크게 걱정할 만한 정도가 아니라는 말씀에 일단 안심이 되긴 해도
불치병을 다스려주는 의사 선생님들의 태도엔 아무래도 100% 신뢰하긴 어려운 점이 있다.
6.4에서 5.8로 (6밀리) 줄었을 때, 5.8에서 5.4(4밀리)로 줄었을 때는 아주 좋은 결과라며 큰 소리로 축하해주시던 분들이
똑같은 6밀리의 상승에 대해서는 별 거 아니라고(심지어 서울대병원 선생님은 얼마라고 알려주지도 않고 쪼끔 쭐었어요... 별일 아녜요,) 하시니
염려가 투병생활에 영향을 미칠까봐 염려해주시는 마음은 감사하지만... 같은 6밀리에 대한 대접이 어째 그리 다르시오?
어찌됐든간에 좋다면 좋은 줄 아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임을 이미 터득한 우리는 다행이라고 활짝 웃으며 돌아왔다.
십여일 간 우리를 덮쳤던 걱정의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에 한 가지 유류품이 남았다.
고주파 온열치료...
에덴병원에 있는 분으로부터 토모킬 요법과 함께 해보라고 강력하게 추천받았던 요법인데,
항암방법을 바꾸지 않더라도 현재 항암치료와 함께 해볼 만한 시도인 것 같아서 오늘 에덴병원에 가서 상담을 받아보려고 한다.
남편은 해도 안 해도 그만인 치료일 꺼라고 썩 내켜하지 않지만
일단 두어 사이클이라도 받아보고 컨디션이 더 좋아지고 암 사이즈의 상승추세를 조금이나마 잡아주는 것 같으면 계속하기로 하자고 꼬이는 중이다.
이상한 것이, 내가 이 치료에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하자 때맞춰 조선일보에서 이 치료법 관련 학술대회 했던 기사가 나와
어제 꽤 여러 분들로부터 이 치료를 권하는 전화를 받았다. 이 권유들이 남편을 설득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엊저녁엔 또 젬벡스(면역세포를 이용한 췌장암 백신을 개발한 회사)의 임상실험에 응해보라는 전화를 받았다.
밤을 도와 열심히 클릭질을 해보니 아직은 임상후기보다는 제약회사측 발표가, 제약회사측 발표보다는 그 회사 주식에 대한 관심자료가 월등히 많은 신약이더군.
정상세포에서는 세포의 수명을 연장시키지만 암세포에서는 세포가 무제한 증식하도록 돕는 단백질로 작용하는 효소 텔로머라제로 만든 치료백신 GV1001,
그 백신을 주입해서 항체 생성을 유도하고 그것으로 암을 공격하게 하는 최첨단 기법이란다.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항암제 젬자보다 2.6개월 더 살 수 있게 해준다는데....비용은 4만 불이다.
의학계로 보면 암의 정복을 위한 디딤돌로서 의미있는 진보라 할 수 있겠지만
진행성 암 환자에겐 완치 아닌 약간의 여명 연장이란 다소 실망스러운 제안일 뿐이어서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아, 그나저나 장마는 언제쯤이나 끝나려나.
남편은 운동 못 나가도 거실에서 스트레칭도 하고 호흡도 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마음 다스리는 게 뭔지 알길 없는 반달이는 운동 나갈 시간이 되도 소식이 없으면 퍼붓는 빗줄기도 무릅쓰고 제 집에서 뛰쳐나와 마구 짖어댄다
그러지 마라, 이 어매도 속이 탄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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