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死線에서

張萬玉 2012. 1. 18. 22:45

14일 한밤중, 다시 남편에게 40도 넘는 고열이 찾아왔습니다.

그 말 많고 탈 많았던 남양주소방서 구급차에 실려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와 한 달 전의 그때처럼 전쟁 같은 1박2일을 보낸 뒤

지금은 팔자에 없을 줄 알았던 특실에서 의사의 지시에 따라 '임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체할 수 없이 커진 원발암은 결국 장에 구멍을 냈고 그 구멍을 통해 복막으로 흘러들어간 온갖 장 내 세균과 불순물들이 염증을 일으켜 

그리 오래지 않은 시간 내에 패혈증을 유발할 것이라고 합니다.  

물을 비롯한 일체의 음식 공급이 중단되었고 대신 엄청난 양의 수액과 강력한 항생제들, 하루 네 차례의 스테로이드 주사액이 퍼부어지고 있습니다.

계속 떨어지는 혈압을 잡기 위해 강심제도 이틀 넘게 투여되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항생제의 폭격 덕분인지, '대여섯 시간이면 혈관을 통해 온 몸으로 퍼질 수도 있다'는 세균이  70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잠잠하다는 것과

강심제의 용량이 사용 한계량에 도달하기 전에 혈압이 정상치를 회복했다는 점입니다.

병원에 막 실려왔을 때 고열 때문에 눈도 못 뜨고 혼수상태를 오락가락하던 남편은 지금 스테로이드의 응원에 힘입어 병문안 오는 친구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고

드디어 오늘 아침에는 (강력한 부축을 받기는 했지만) 매트에 실려 체중을 재야 했던 굴욕도,  기저귀를 차야만 했던 굴욕도 벗어던졌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거나 돌리려면 두어 사람이 붙어 짐짝 끌듯 도와줘야 했지만 지금은 손만 끌어당겨줘도 안간힘을 쓰며 일어나 앉습니다.

대개의 경우 이런 검사수치들이라면 시간이 갈수록 나빠질 일밖에 없는데 어떻게 날이 갈수록 상태가 좋아지느냐고 의료진들이 오가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답니다.

정말 좋아지고 있는 것인지, 약의 도움을 빌어서 끝까지 힘을 주려는 응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대여섯 시간'의 고비를 넘긴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패혈증을 막기 위해 장루 시술을 할 수도 있지만, 시술해야 하는 부위가 암으로 뒤덮인 지점이라 자르는 것도 꿰매 붙이는 것도 실패할 확률이 더 많은 위험한 선택이고

시술을 하지 않으면 언제가 될지 모를 시점까지 금식을 하면서 수액과 독한 항생제와 콩팥을 망가뜨리는 스테로이드만으로 연명해야 한다니

현재로서는 이 절망의 늪을 빠져나올 방법이 도무지 없어보입니다만...

어제는 없을 줄 알았던 오늘을 살았고, 아마도 내일 역시도 없을 줄 알았던 하루를 살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며칠 간의 호된 밤샘간호를 아들에게 맡기고 병원을 나섰지만, 같은 서울에 집을 두고서도 혹시나 그새에.... 싶어 거기까지 가지도 못하고

젊은애들로 바글거리는 찜질방의 소란도 내키지 않아 병원 주변을 맴돌다가 찾아들어간다는 게 웬지 수상한 분위기의 모텔방입니다.

쓰러지면 바로 잠들 줄 알았는데 정신은 점점 말똥말똥하니 괴로워 미치겠습니다.

새벽 동이 트는 대로 어서 남편 곁으로 돌아가렵니다. 그간 함께 살아준 의리를 생각해서라도 설마 작별 인사도 없이 가버리진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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