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地芚山房

戰況報告 2

張萬玉 2012. 1. 4. 10:16

그렇게 치열했던 戰場도 보름 넘게 묵혔다 되살리려니 아득할 뿐이다.

뛰어넘을까 하다가...... 이 방에 드나드시는 몇몇 환우 가족분들을 위해 간단히 적는다.

 

# 말기암 환자의 對症療法이라는 것

 

항암치료를 포기하는 순간부터 암 환자들의 과제는 증상과 싸우는 일이 된다.

전이암은 암이 옮겨앉는 자리에 따라 바로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 증상에 따라 온갖 진료과를 전전하게 되는데,

환자들 입장에서는 이 과정도 항암치료만큼이나 중요한 치료이기 때문에 절대 소홀히 할 수 없다. 

증상으로 겪는 고통도 고통이지만 증상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할 경우 바로 사망의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구내염이지만 세균에 감염되면 패혈증으로 갈 수도 있고, 음식을 잘 못 삼킬 때 자칫 폐로 들어가면 바로 페렴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남편의 고열을 닷새 가까이 방치했던 것은 방사선 치료 때문에 겪는 (발진과 구강염증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증상이려니 여겼던 무지 탓이었지만

어쩌면 안이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증상치료를 위해 다른 과 선생님들을 만날 때 느끼는, 말기암 환자를 대하는 소극적인 태도 같은....

증상은 절대로 방치하면 안 된다. 시한부의 삶이라 하더라도 고통스럽지 않도록,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누구의 삶이라도 결국은 시한부의 삶 아니더냐.

 

그러나 그 적.극.적.인 방식이 그리 마음 편한 것만은 아니다.    

1.  알러지 전문 선생님이 응급실로 찾아와 취한 응급조치는 발진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신경과 처방약(테그레톨)과 일체의 진통제를 끊는 것이었다.

대신 3일에 한 번씩 갈아붙이는 마약성 듀라제식 패치(펜타닐) 10밀리그램짜리가 처방되었다.

통증이 왔을 때 마약성 진통제에 앞서 비마약성 진통제와 신경계통의 보조제부터 쓰는 것이 정석이고 그것으로 안 되면 마약성 진통제로 바꾼다고 하니

신경과 및 두경부암 쪽 선생님의 처방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질 치료약인 항경련제 테그레톨은 간과 신장을 손상시키니 장복할 수 없을 뿐 아니라

10%의 환자들에게서는 극심한 피부발진의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유전적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신경과 선생님은 그런 걱정을 안 하셨던 걸까?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약을 써야 한다면 최소한 사전에 말씀이라도 해주셨어야 하지 않았나 싶은 서운함을 떨칠 수가 없다.

하긴, 사전에 말씀해주셨다 해도 우리가 뭘 어쨌겠느냐마는....

다행히 듀라제식 패치는 남편에게 잘 맞는 듯해서 예전보다 훨씬 편하게 지내고 있다. 현재까지는...

이 패치도 잘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호흡곤란과 무기력증을 유발한다고 하니 어차피 시행착오를 거쳐가며 자기에게 맞는 진통제를 찾아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2. 고열을 잡기 위해 너덧 가지 항생제와 스테로이드(주사와 피부 발진에 바르는 로션 타입), 영양주사(물 한 모금 못 넘기고 있으니)가 처방되었다.

모두가 가능하다면 피하고 싶은 약제들. 

고열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항생제를 이것저것 다 써본다고 했다.

어떤 항생제가 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 항생제들 덕분에 고열은 사나흘 만에 잡혔다. 

스테로이드 역시 항염작용이 탁월하지만. 알레르기 반응을 억제함으로써 오히려 인체의 면역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고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장복하면 안 되는 약이다.  
퇴원할 때 주사약 대신 먹는약으로 처방해주었는데, 여섯 알씩 먹던 것을 일주일에 두 알씩 차츰 줄여 어제부로 끊었다.

이 약 때문인지 간수치는 퇴원할 때 135에서 현재 45로 거의 정상을 되찾았고 대신 콜레스테롤치가 조금 높아졌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던 지난 열흘간은 간병인으로서 무척 행복했던 기간이었다.

갑자기 눈이 반짝반짝 생기가 나고 내가 잠 깨기도 전인 새벽에 나가서 눈도 쓸고 산에서도 뒤따르는 내가 속도조절을 할 필요도 없이 쌩쌩 잘 가고

TV에서 보는 것마다 먹고 싶다며 침을 삼키곤 해서 한동안 뜸했던 마트 문지방이 닳도록 드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실제로 음식을 해놓으면 마음 속에 그렸던 맛과 영 다른 모양이다. 결정적으로 씹지를 못하니 결국 내가 다 해치워야 했지만

그래도 내가 해줄 것이 있어서 즐거웠다. 그런데......   

약을 끊자마자 그 왕성한 식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다음 진료 때 스테로이드 처방을 해달라고 해야 할까 고민중이다.

 

3. 방사선 치료 덕분인지 입 벌리는 것은 아주 조금 나아졌다. 이 치료를 권하신 선생님 말씀대로 두통도 많이 없어졌다.(어쩌면 패치로 바꾼 덕분인지도 모른다)

상태가 좋아지면 다시 시작할까 선생님이 물으시니 겁도 안 나는지 이 양반은 선뜻 그러자고 한다. 나는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데....

부작용도 부작용이지만 이 치료는 한 차례 받으면 다시 받을 수 없고 그 효과는 서너 달 밖에 안 가는 치료라고, 치료를 시작할 때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그럼 그 다음엔 어떡해요, 물으니 그건 그때 얘기고..... 당장이 중요한 거죠, 하신다. 즉 말기암 환자라도 '삶의 질'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시한부 환자의 삶의 질'이란 얘기가 그런 거였다. 쓰디 쓴 눈물을 삼키는 맛이랄까, 독한 사랑이라고 해야 하려나.

 

# 다시 고요한 일상

 

병원에서의 전쟁 같던 열흘이 지나고,

완화병동에 있는 동안 자기와는 비교할 수 없는 중환자들을 보며 그래도 이 겨울은 충분히 넘길 수 있겠다는 자신감에 차서 집으로 돌아와 

마치 작년 7월 이전으로 돌아간 듯 의욕과 생기에 넘쳤던 일주일이 지난 뒤......(이제 보니 그게 다 스테로이드 덕분)

다시 침묵이 찾아들었다.

 

단 석 주만에 몸무게가 10킬로 넘게 빠졌으니 기운이 없기도 하겠지. 그러면 잘 먹기라도 해야 하는데

어제부터는 밥을 못 넘긴다. 오늘 아침에도 '바보죽' 반 공기 먹는데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패치 붙인 뒤로 한시름 덜었던 통증도 조금씩 고개를 들고, 더 걱정인 것은 통증이 어깨, 등, 허리, 복부 등 전신으로 번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직은 그리 심한 편이 아니라 핫팩 찜질과 마사지로 버텨보려고 한다. 다음 진료일에는 패치의 함량을 조금 높여달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발진과 고열로 시달릴 때보단 덜하지만 다시 시도때도 없이 자기 시작한 남편,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가끔씩 일으켜 거실로 몰고나오지도 못하겠다. 잠 깨면 힘들어하니 차라리 푹 자게 둘 수밖에.

 

눈은 내리고.... 

지금까지 눈 그치기 무섭게 뛰어나가 눈을 쓸던 남편은 눈이 왔는지도 모르고 곯아떨어져 있다.

이 집으로 이사온 이래 처음으로 어젯밤에 혼자 나가 눈을 쓸었다.

장갑 낀 손은 시리지 않았지만 마음이 시렸다.

사람은 누구나 홀로 왔다 홀로 간다. 그걸 잊으면 안 된다.

마음의 장갑 단단히 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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