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에서 만난 은양과 함께 야간버스를 타고 스페인 세비야로 넘어가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이 포르투갈의 마지막날.
리스본을 떠나기 전에 포르투갈 번영의 시대를 웅변해주는 벨렘 항은 한번 돌아주는 게 예의일 듯하여 벨렘 지구행 트램에 몸을 실었다.
벨렘 지역으로 들어가는 관문
관광인파로 붐비는 제로니무스 수도원1
예배당 내부로 들어서면 양 옆에 바스꼬 다 가마와 포르투갈의 대서사시인 까몽이스의 관이 나란히 놓여 있다.
발견기념비2
삼각돛배를 들고 가장 선두에 서 있는 것이 엔리케 왕자3
벨렝 탑4
벨렘 항은 바다와 강이 만나는 테주 강 하류에 있다.
대서양을 보는 줄 알고 갔는데 강이라고 하니 약간 실망스러웠다. ^^
우리 나라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긴 하지만 원조 국가에서 맛본다 하니 살짝 기대했던 에그 타르트 집 '‘파스텔 데 나타’.
에그 타르트만 하는 집인데 오래 된 원조집이라 그런지 손님들로 북적인다.
따끈하고 부드러운 게 맛있긴 했지만.... 뭐가 특별한지는 잘 모르겠다.
저게 무슨 탑이었더라, 암튼.... 내 시선은 그 뒤에 있는 건물 창에 붙은 독특한 블라인드로......
돌아오는 트램에서 만난 엘프 같은 꼬마.
뜬금없는 뒷담화.
우연히 만난 여대생 P양은 스페인 바로셀로나인가 마드리든가, 암튼 어느 축구팀의 광 팬으로,
오로지 그 이유 때문에 스페인을 좋아하게 되었고, 너무너무 오고 싶었고, 잠깐 다녀가는 여행이 아니라 아예 살고 싶었다고 한다.
전공인 식품영양학을 살려서 스페인 요리를 배워가겠다고 아빠를 구워삶아 어학연수를 시작한 지 3개월차인데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으로 학비와 집세를 내고 나면 입에 풀칠하기도 빠듯한데 아르바이트 찾기도 쉽지 않아 조금만 더 보태달래야겠다고 한다.
거기까진 그렇다고 치는데....
얘기를 좀더 듣다 보니 이 아빠는 이 여학생이 고2 때 엄마의 재혼으로 만난 새아빠더란 말씀.
게다가 시어머니까지 모시는 집에서 고등학생인 동생과 함께 산다는데......
내가 그 애였다면 엄마의 홀가분한 새출발을 빌며 내 인생 찾아 나가고 싶었을 것 같다.
그게 엄두가 안 나면, 아니 혹시 엄마가 붙들고 늘어졌다고 해도 최소한 하루빨리 독립하기 위해 대학 졸업과 취업을 서둘렀겠지. (마땅히 그래야 하지 않을까?)
허나 진로나 취업에 대한 생각보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그야말로 천진난만하게 청춘을 구가하고 있는 이 아가씨를 보니, 정말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뭐 새아빠가 자기네 남매를 너무나 사랑해준다니 고마운 일이지만 열 일곱에 만난 아빠가 그렇게 허물없이 개길 만할까?
재혼가족도 엄연히 가족이니 화목한 건 좋은 일이지.
새아빠가 돈까지 잘 버신다니 다행이지만, 돈벌이가 시원찮고 스페인이 다 뭐냐고 혼쭐을 낸다면 혹시 엄마의 재혼을 원망하진 않을까?
뿐만 아니다. 자기도 대학 신입생일 땐 캠퍼스 커플이 좋아 보였는데 3학년쯤 되니 학생은 눈에도 안 찬다고, 회사원을 사귀고 싶다고 한다.
버스 타고 걷는 데이트가 좋았던 건 어렸을 때 얘기고, 지금은 세상 보는 눈이 넓어졌기 때문에 차를 몰고 모시러 오는 남자친구를 찾는 건 당연하다니...
왜 네가 차 사서 남친 태울 생각은 안 하느냐고 묻고 싶은 걸 꾹 참고, 스페인 요리 제대로 배워가지고 돌아가면 아마 그런 남친 찾기 더 쉬워지겠지? 하고 말았다.
우리 때 같으면 설사 그런 생각이 있더라도 감추거나 조심스럽게 내비쳤을 텐데 저리도 당당하게 얘기하는 걸 보면
돈이 최고라는 '사상'이 TV에서나 떠들어대는 생각이 아니라 젊은세대들을 지배하고 있는 이 시대의 대표사상이긴 한 모양이다.
끙~ 내가 너무 구닥다리인가?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섣불리 입 여는 건 정말 조심스러운 일이다.
거리에서 만난 악사들
세비야로 가는 버스는 밤 8시에 떠났다.
누구는 이렇게 떠나고......
우리는 이렇게 떠나고......
- 15-16세기 포르투갈의 전성기인 대항해시대의 건축양식인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 건물로서 벨렝탑과 함께 198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498년 바스꼬 다 가마의 인도항로 발견을 기념하여 16세기부터 약 1세기에 걸쳐 건축한 수도원으로, 바스꼬 다 가마의 항해단이 인도항해 출발전 미사를 올렸던 예배당이다. [본문으로]
- 대항해시대를 연 엔리크 왕자 서거 500주년 되는 1960년, 떼쥬강변에 건립한 기념비로 15세기 포르투갈 항해범선의 뱃머리 모형으로 되어 있다. 뱃머리 선두에 서 있는 인물이 항해왕자 엔리크이고 그 뒤로 바스꼬다가마, 대서사시인인 까몽이스, 마젤란 등이 조각되어 있고 광장 바닥에는 대리석으로 된 세계지도가 있으며 포르투갈이 대항해시대에 진출한 지명과 연도가 표기되어 있다. [본문으로]
- 엔리케 왕자의 의 아버지인 앙리는 프랑스 남부 브르고뉴 지방의 백작으로, 종교적 신념에 따라 이슬람세력을 몰아내기 위해 포르투갈까지 원정을 왔는데, 큰 승리를 거둠으로써 알폰소 6세의 딸인 테레사 공주와 결혼하고 공작 작위와 신트라 지역을 공국으로 하사받게 되며, 훗날 포르투갈이라는 왕국을 건설하게 되는 알폰소 엔리케를 낳는다. 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난 엔리케는 1400년 중반에서 1500년 중반에 이르는 100년간 포르투갈을 강력한 해양왕국으로 키웠다. 지금의 포르투 항구에 항해센터를 만들어 원거리 항해기술을 개발했는데, 당시의 배들은 4각형의 돛을 사용하여 파도나 바람에 약해 원거리 항해가 불가능했으나 그가 고안한 삼각돛배는 모로코의 세우타를 정복시키고 계속 아프리카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이르는 3360km의 대장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본문으로]
- 1515년부터 6년간 항구의 방어를 위해 지어진 벨렝탑은 항해선박의 이착륙을 환영, 환송하는 장소로 사용된 건물이었다. 바다에 접한 1층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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