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12년 7월, 5불여행생활자 까페에서 주최한 '수마트라 원정'에 참가한 뒤 써놓았던 건데
딱 첫 구간만 쓰고 밀어뒀던 것을 다시 꺼내 포스팅 날짜를 오늘로 바꿨다. 이어서 써보려고......
기억이 하얗게 지워져 아마 이 구간 이후로는 사진만 주르륵 올라갈 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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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마트라에 다녀온 지 벌써 두 주일이 다 되어간다.
예전 같으면 신선한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수다보따리를 풀었겠지만 다른 일행들과 얽힌 여행이다보니 쉽지가 않다..
맘에 드는 사진들 대부분에는 일행의 모습들이 담겨 있고, 내 '새벽일기'의 focus는 멤버들간 group dynamics에 맞춰져 있다.
멤버들이 특별했다거나 나의 숨은 스토커 기질이 튀어나왔기 때문은 아니고 일정 관리와 진행을 인솔자가가 다 해주니 달리 신경쓸 일도 없고
무엇보다도 그룹여행의 특성상 그룹을 벗어나는 활동들이 제약을 받다 보니 자연히 시선이 내부로 향하게 된 것 뿐이다.
인간사가 다 거기서 거기지만 '개인사'가 되면 일급비밀이 되어버리니.... 흠, 뭘 써야할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홀로여행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값진 보약을 한 사발 들이킨 여행이었다(고 믿고 싶다).
왜냐하면... 여행을 좋아한다는 취향(이것도 분석해보면 천차만별이긴 하다) 말고는 세대도, 경험도, 가치관도, 문화적 취향도 다른 사람들 속에 투하되어
갑남을녀의 한 사람으로서 그룹 내에 적정하게 '자리'를 잡고 그에 걸맞는 존재감에 근거 적정 수준으로 소통한다는, 이 간단하고도 자연스러워보이는 과정이
늘 익숙한 이들과 함께였던 내겐 꽤 새삼스러운 과제로 다가왔던 것이다.
또 낯선 이의 시선에 걸린 내 모습을 살피는 것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었다.
인정하고 싶든지 말든지 그것이 바로 객관적인 내 모습일 것이며, 그 모습을 끌어안고 다듬어주고 싶은 욕구가 아직은 존재하기에
여행기간 동안, 그리고 이후로도 한참 동안 그 과제에 살짝 몰입해 있었다.
좌우지간, 낯선 길은 흥미롭기 마련이니 일단 떠나보자고.
11시에 인천공항 출발한 지 여섯 시간 반 만에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 도착.
중국식 스낵으로 저녁을 때우며 한 시간 가량 머무르다 메단 행 비행기로 갈아타고 한국시간보다 두 시간 늦은 현지시각 9시경에 도착.
메단행 비행기는 이슬람교의 무슨 기념일인가를 맞아 성지순례 다녀오는 인도네시아 단체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입국수속 하나만 봐도 그 나라가 어느 정도 선진적인지 눈치채게 되는데, 인도네시아는 평균점 이하.
비효율적인 업무처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입국수속 끝내고 나오는 마지막 관문, 랜덤 가방검사에서 우리 인솔자가 했던 예언이 딱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가방 찾으신 뒤 살펴보시면 혹시 분필 표시 같은 게 되어 있을지 모릅니다. 그걸 그대로 두면 열어보라고 하고 골치아파질 수 있으니 살살 털고...."
옷과 세면도구밖에 없는 청정무구 내 가방에 분필표시가 웬말이냐고!! 아직 루피아로 환전도 안 했는데 말이지..
우여곡절 끝에 공항을 빠져나오니 수마트라 7박8일을 함께할 Toyota Innova 네 대가 요런 플랭카드를 등판에 둘러치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숙소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에 시청 청사였다는 메단 최고의 호텔 Aston.
방 배정 받자마자 바로 로비 VIP룸에 집합, 메단 현지 법인장으로 근무하는 까페 쥔장님 그리고 멤버들간의 첫 공식인사자리를 가졌다.
미팅이 끝난 건 11시가 넘은 야심한 시각이지만 오늘이 메단 야경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밤이라는 생각이 일부 멤버들을 밤거리로 몰아내었고
그에 힘입어 나 혼자 다닐 때는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밤거리에서 쌩맥 한잔!"의 로망을 실현시킬 수 있었다는...
날이 밝자, 양식 일식 인도네시아식 메뉴가 총망라된 오성급 부페에서 아침부터 포식을 하고
무슨무슨 회교사원과 마이문 왕궁, 중국 도교사원 등을 휘리릭 둘러보는 것으로 메단시와의 만남에 갈음한다.
자, 우리 멤버들을 소개합니다~ 얼굴 대신 신발로...^^
용두어미!!
메단에서 중국계는 메단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막강파워를 갖고 있지만 인도계나 말레이계 사람들과는 구획을 짓고 산다고 한다.
바로 이웃사는 사람들의 언어이건만... 활달하고 영어가 유창한 우리 차량 기사 알피안조차도 배울 생각조차 안 해봤다니.....
꽃잎 글씨로 꾸며진 입간판들이 곳곳에서 우리를 반긴다.
Selamat ...가는 곳마다 만났던, 거의 매일 들었던 단어.
4인승 오토바이.
동남아 다른 나라들처럼 인도네시아에서도 오토바이가 한 가정의 행복을 지켜내는 큰 몫을 하는 듯.
이제 차량은 사람 다니기도 복잡한 시장골목을 한바퀴 돌고
하교하는 학생들이 기다리는 버스 정류장을 지나쳐.... 남서쪽으로 달려나간다.
중간에 네델란드인이 운영한다는 널찍하고 서늘한 Omlandia Resort에 들러 인도네시아식 점심을 먹었다.
볶음밥은 나시고랭, 볶음국수는 미고랭.....
이 두 고랭 사이에서 일주일도 넘게 오락가락 했지만 그다지 질리지 않을 정도로 친숙했던 메뉴들.
이제 차량은 1200미터 고원지대를 향해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내리기 시작한다.
비록 왕복1.5차선인 비좁은 도로지만 브라스따기로 향하는 수마트라섬 제1 국도인 만큼 전 구간이 포장도로다.
대중교통과는 달리, 중간에 인가가 있거나 경치 좋은 곳을 만나면 잠시나마 차를 세울 수 있어서 좋았다.
인도네시아 사람들, 참 잘 웃는다. 햇살처럼 밝은 함박웃음이다.
사진 찍히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다. 빼주지도 않는 사진인데......어떤 지역처럼 돈 달라는 것도 아니고.......
어찌나 황송한지, 다음부터는 폴라로이드 카메라 장만해서 꼭 갖고 다녀야겠다고 마음 먹어 본다.
점점 차량이 많아지고 길이 널찍해지더니 작은 도시가 나타난다.
작년에 폭발한 시나붕 화산과 터질 날을 노리고 있는 시바약 화산, 그리고 그 부산물인 유황온천을 곳곳에 품고 있는 데다
적도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서늘한 고원지대이기 때문에, 네덜란드인들에 의해 식민지 시절부터 개발된 휴양도시 브라스따기.
이제 여기서 우리의 '1박2일'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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