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가 주최하는 '낙동강 물결따라 나라사랑' 답사팀에 끼어 떠난 길.
낙동강 줄기를 따라 가는 여행이라고 해서 가을 볕 듬뿍 받으며 강변 따라 걷는 여정일까 했는데
상상은 자유. 줄창 버스만 탔다. 게다가 4대강 사업과 호국안보 정신을 배우는 수학여행길이라는 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그래도 한동안 격조했던 친구와 함께 한 길이었고 날씨마저 황홀하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여행의 즐거움이란 게 마음 먹기 나름이려니..
낙동강의 첫머리인 상주 경천대에서 시작된 여정은 4대강 사업으로 조성된 낙안보를 거쳐 6.25 전쟁의 격전지 왜관철도에서 잠시 멈췄다가
낙동강 줄기 따라 남하하지 않고 동쪽으로 빠져 영덕 강구항에서 하룻밤 머물고, 이튿날 다시 낙동강 줄기를 거슬러 안동으로 올라가
평민 의병장 신돌석의 생가와 안동 최대의 고택 임청각에 들렀다가 병산서원에서 끝을 맺었다.
낙동강 제1경이라는 경천대에 오르려면 잠깐 숨을 골라야 한다.
곧 펼쳐질 황금빛 들녘과 드넓은 강을 그리며 올라가면 뭐 아주 잠깐이다.. ^^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강은 웬지 좀 풀이 죽어 보였다.
원래는 논 아래로 모래사장이 있었는데 4대강 사업으로 수문이 닫히면서 없어졌다고 한다.
인근에 무우정, 놀이동산, 산악자전거 코스 등 몇 가지 볼 거리가 더 있는 듯했지만 갈 길 바쁘다고 전망대에서 바로 내려오란다.
아쉬움에 남들 돌아가는 길 외면하고 서둘러 옆길로 샜다가 하마터면 노래자랑 할 뻔 했다(늦게 오는 사람에게 주는 벌칙)
덕분에 일행과는 달리 요런 곳에도 살짝 눈도장...
과학관인 모양인데 주말인데 이렇게 찾는 이 없이 고요한지. (아니, 현장학습 없는 주말이라서 그런가?)
다음 정거장은 낙안보.
보 위로 설치된 다리가 상주와 의성을 이어준다고 한다.
한옥 모양을 냈다는 다리도 제법 그럴 듯하고, 낙동강변으로 낸 자전거길에 오가는 자전거 행렬도 볾만 하지만
낙동강을 살리려고 설치한 보가 오히려 강을 흐르지 못하게 하는 데다 부실공사까지 겹쳐 오히려 수질을 오염시키고 있는 실정이라니 바라보는 맘이 편치만은 않다.
머지 않아 도착한 세 번째 정거장은 왜관철교.
조선의 물산을 침탈해가려고 일제가 구한말에 세운 콘크리트 철교인데
북한군과 유엔군이 이 다리를 사이에 두고 격전을 벌일 때 유엔군이 다리 일부를 폭파하여 남하하는 북한군의 길을 끊었고(난간 없는 부분)
이에 힘입어 낙동강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호국의 다리로 불리게 되었다.
이후 목교로 이어졌다가 (잠시 노후로 인해 통제되었다가) 1993년에 인도교로 다시 개통되었다고 한다.
옆으로 나란히 달리는 고속도로, 그리고 경부선이 다니는 진짜 철교.
왜관철교는 이번 장마로 인해 일부 구간이 유실되어 다시 복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4대강 국토종주 낙동강자전거길'은 쭈욱 이어진다. 그렇게 부산까지?
팔공산이 보이는 휴게소에서 버스는 이제 동쪽으로 방향을 튼다.
바깥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이른 아침부터 쉴 새 없이 달려온 일행들은 모두 지쳐 떨어졌다.
두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강구항.
강구는 내 블벗 둘도사님이 오래 전부터 소개해오신 터라 웬지 친숙하기도 하고 살짝 궁금하기도 한 곳이라
쐬주 한 잔 사주실라우? 할까 말까 전화기만 만지작거리다가 말았다. ㅋ
둘도사님, 요즘 블러그도 잘 안 하시는 것 같던데, 안녕하시지요?
화려한 불빛으로 치장한 항구, 싱싱한 해산물이 넘쳐나는 북적한 시장골목, 푸짐하게 김을 올리며 대게를 쪄내는 식당들도 볼 만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볼거리는 오징어 말리는 풍경이었다.
손질해서 일일이 꿰어 널었던 오징어들을 밤이 되니 다시 일일이 거둬들인다. 아마도 매일매일 그러겠지.
대게는 아직 철이 아니라 국산 홍게는 드물고 거의 만리타향으로 원정 온 러시아 대게들이 판을 치고 있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건 자신 있는지라 동해안까지 왔겠다, 해맞이 놓치지 않으리라고 별렀는데...... 아웅, 흐리다..
하지만 아침 먹으러 나올 무렵에 말짱하게 개었다.
매운탕이 거기서 거기라고?
No! 이 집 매운탕 진짜 맛있다. 간밤에 맥주를 한 잔 해서 그렇게 느꼈나? ㅎ
이제 버스는 오늘의 첫 코스, 영덕 해맞이 공원으로 간다.
가는 길의 해변이 너무나 아름다워(스토리가 느껴지는....) 개인적으로 차를 몰고 갔다면 몇 번씩 차를 세웠을 텐데
시간에 쫓기는 우리 버스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산꼭대기를 향해 부지런히 올라간다. 그곳은 1997년 산불로 소실된 자리에 조성된 풍력단지.
24기의 대형 바람개비들이 친환경 에너지를 열심히 만들어내고 있는 언덕이다.
대형 뿐 아니라 장난감처럼 예쁜 중소형 바람개비들도 열심히 돌고 있다.
단풍을 준비하는 숲 사이로 들꽃들이 앞다투어 청초함을 뽐내는 아름다운 풍경!
어제 쌓였던 피로가 단번에 풀어지는 기분이다. 언제 다시 꼭 와야겠다고 마음먹어 본다.
해맞이 공원 아래쪽에 조성된 해안선 둘레길 블루 로드.
세 개의 코스가 있다는데 갈 길이 바쁜 우리는 A코스 초입만 잠시 맛보고 만다.
이렇게 럭셔리한 오뎅을 보셨는지. 대게가 나는 고장이다 보니......^^
영덕을 떠나 버스는 다시 서쪽으로 달려간다.
이번 정류장은 평민 출신의 의병장으로 잘 알려진 신돌석 장군의 사당이다.
19세에 의병을 일으켜 백두대간 호랑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용맹을 떨쳤던 그는 30세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일본군에 넘어간 부하의 손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제 안동이다. 사실 안동은 이번이 세 번째다.
그래서 그런지 월영교도 헛제삿밥도 별 감흥 없이 넘어갔다.
요 차전놀이 동상은 그 전에 못 본 것 같은데.... 호호, 귀엽다.
임청각은 안동 고택 중 으뜸으로 치는 99칸짜리 양반님 댁인데 일제가 이 집 한가운데로 철도를 내어 반토막을 냈다고 한다.
나무와 돌의 결이 그대로 살아 숨쉬는 느낌이 좋아 어느새 비슷한 사진을 찍고 또 찍고....
아귀가 딱딱 안 맞고 슬쩍 비뚤어진 모양새라 더 마음에 든다. ^^
병산서원도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그러나 병산서원은 언제 와도 몇 번을 와도 좋을 것 같다.
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강력하게 시선을 잡아끄는 누각 만대루.
산을 마주하고 강을 굽어보는 이 누각은 그 입지 만으로도 당시 선비들의 풍류 수준을 짐작하게 한다.
예전에는 저 만대루에 올라가 아름다운 석양을 온몸에 받으며 큰댓자로 누웠댔는데 (이 사진은 첫번째 갔을 때 찍은 사진이다)
마루가 휘는지, 이제는 못 올라가게 한다.
서원 뒤편으로 보이는.... 저 집은 뭐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요한 강가. 돌아와서도 한동안 잊히지 않는......
그리고 저 소나무.
정말 한국의 가을은 축복 받은 계절이다.
아무리 여유가 없어도 어떤 시름이 있더라도, 이 계절에는 꼭 한번 높은 하늘, 풍성한 햇살, 넓은 들판을 깊이 들이마셔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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