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국내

가을과의 이별여행 1 - 백양사 / 내장사

張萬玉 2012. 11. 14. 11:59

내게는 네 명의 시누이들이 있다.

결혼 초부터 지금까지, 하나밖에 없는 올케라고 챙겨주는 정성이 한결같은......

게다가 오빠가 떠나고 난 후에는 더 지극정성이다. 

마침 모두 교사직에서 퇴직 내지 명퇴를 한 뒤 시간이 많다 보니 한 달에 최소한 한 번씩은 자매들이 모여 친목나들이를 하는데 

나에게까지 시월드 멤버십 당연직을 부여해주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함께 뭉쳐 변함없는 우애를 다지고 있다.

단풍이 남도로 내려간 11월 둘째주, 이 멤버들(일명 '자매유람단')로부터 백양사와 내장사 단풍을 보러가자는 연락이 왔다.

때맞춰 나의 오랜 여행짝 M에게서도 콜이 왔다. (그쪽도 몇 차례의 동행을 통해 느슨하게 결성된 멤버, 일명 '짬짬이 유람단이다). 

마침 첫 모임의 1박2일이 끝나는 다음날 강진으로 내려온다니 백양사에서 그쪽으로 내려가면 딱이군. 

평소엔 자매유람단 공식 기사직을 맡고 있지만 이번에는 다른 시누이의 차량에 동승했다가

버스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 강진에서 도킹, 짬짬이 유람단 차량으로 상경하면 되겠다.

그렇게 다녀온 3박4일의 기록. 비바람 치고 기온이 뚝 떨어져 아무리 남도라 해도 단풍을 얼마나 볼 수 있을까 했는데

고맙게도 마지막 고운 빛들은 그 짓꿎은 날씨를 견디며 우리를 기다려주었고

그랬기에 우리는 (그야말로 유행가 가사처럼) 이별여행의 서글픔을 '곱게' 아로새기며 돌아올 수 있었다. ^^

 

첫 목적지는 백양사에서 멀지 않은 남창계곡의 '장성새재'였다.

누군가의 '너무 좋았다'는 말만 듣고 무작정 떠난 길이었는데 일단 코스를 제대로 못 잡았다.

누군가의 '너무 좋았다'를 맛보려고 했으면 순창새재 쪽으로 꺾어 상왕봉을 타고 몽계폭포 쪽으로 내려왔어야 했는데

인터넷의 변변찮은 안내 때문에 입암매표소 쪽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단풍도 제대로 못 보고 험상궂은 돌길 때문에 무릎이 엄청 고생하고

그것도 모자라 차를 세워둔 전남대수련원까지 택시로 돌아가야 했다.

무릎이 좋지 않아 순창새재 갈림길에서 왔던 길로 돌아갔던 일부 멤버들은 가던 길에 갓바위 쪽으로 꺾어봤는데 거기서 불타는 단풍을 실컷 보았다고 한다.  

단풍을 기대하고 오지 않았더라면 장성새재길도 나름 호젓하게 걷기 좋은 길이긴 하다. (그래도 어쨌든 돌길)

그러나 이 길은 건강한 다리로 내장산을 향해 산을 넘어갈 때만이 제몫을 인정받는 길일 듯 하다.

 

 

헤어졌던 멤버들이 다시 모인 건 이미 사방이 캄캄해져버린 저녁 일곱 시.

원래 계획에 따라 백양사 쪽으로 가긴 했지만, 내일 아침에 다시 올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백양사 입구에 있는 민박집에서 숙소를 찾아보니

불 때주겠다는 숙소가 딱 한 집 밖에 없는데 (성수기 경기가 어째......ㅜ.ㅜ) 짐작보다 비싸게 부른다.

차라리 내가 인터넷에서 찾은 집으로 가자 하고는 장성호 쪽으로 달렸다.

장성호 중류, 호수마을이라는 표지석 앞에 있는 수성황토민박.

황토로 벽을 바르고 바닥에선 종이장판 길들인 들기름 냄새가 나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황토방이다.

참나무 장작이 덥혀주는 뜨끈한 구들장을 지고...... 황송하게도 3만원에 다섯 명이 하룻밤 잘 잤다.

소박하나마 싱크대와 욕실이 갖춰져 있고 널직한 뜰에 바베큐 시설도 있고 바로 앞에 장성호가 있는 조용한 숙소. 또 다시 찾고 싶은......

 

 

 

 

아침 일곱 시. 장성호는 아직도 짙은 연무에 몸을 숨기고 있다.

아쉽지만 북적대는 관광객행렬을 피하려면 일찍 짐을 꾸려야 했다.

어둠이 가시고 나니 백양사 들어가는 길의 아름다운 단풍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서 맛난 아침을 먹고(동창식당, 이 집도 추천이다. 엊저녁에 먹고 감동하여 아침에 다시 왔다. ㅎㅎ ) 고운 단풍 즈려밟으며 백양사로 들어간다.

 

 

 

 

 

 

 

 

 

 

 

일찍 서두른 보람이 있어 비교적 조용하고 신선한 시간에 백양사의 가을을 만끽하고

관광차량이 밀려드는 열 시 전에 내장사에 도착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지런히 갈재를 넘었다.

 

하지만 내장사 쪽은 백양사와는 비교할 수 없이, 과연 단풍놀이의 성지답게 소란스럽다.

일단 주차장이 만차이다 보니 음식점 삐끼의 호객을 피할 수 없었고, 기대했던 '단풍터널'에도 사람이 너무 많아 계속 샛길을 찾게 만들었다.

하지만 산의 품은 깊고도 넓다. 입구의 소란을 벗어나니 다시 아름답고 조용한 숲길이 두 팔을 벌려 우리를 맞아주었다. 

  

 

 

  

내장사 일주문 기둥이 울퉁불퉁이라는 걸 예전엔 왜 못 봤을까. 

 

 

 

안개에 가렸던 장성호의 모습을 꼭 보고 떠나겠다고 장성호변을 다시 찾았지만

호수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는 문화예술공원 전망대에 올랐어도 (이번엔 햇살이 너무 강해) 희뿌연 그림자밖에 못 보고 떠난다.

언제 해질녘에 오면 어떨지......

 

백양사 입구에 있는 공용터미널에서 시누이들과 작별하고

한 시간에 한 대꼴로 있는 광주행 버스를 기다렸다가 한 시간 만에 광주에 도착. 다시  후배가 있는 장흥행 버스로 갈아타고 한 시간 반.

오랜만에 하는 버스 여행이 새삼 흥미로웠다.      

 

장흥 사는 후배는 올 봄 거제부터 광양까지 한 바퀴 돌고 귀경하던 길에 들렀던 때보다 훨씬 여유있어 보였다.

워낙 먼 곳이다보니 거쳐가는 경로다 싶으면 절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을 뿐더러, 장흥에서 강진까지는 차로 20분 거리이니

어차피 외지에서 내려온 사람끼리 알고 지내면 좋을 것 같아서 강진 사는 후배 소개도 해줄 겸 차도 얻어탈 겸 들른 건데 안 들렀으면 정말 서운해 할 뻔 했다.

터미널로 마중나온 후배는 내 몰골이 고단해 보였던지 사우나에라도 가서 최단시간에 피로를 푸는 게 좋겠다고 서두른다.

좋은 데로 모신다고 마음먹고 간 게 '워터월드'인지 하는 장흥의 명소(!)였는데(여기는 2007년 봄, 블뤼양과 남도기행 나섰을 때의 첫 숙박지였다)      

바로 동네 사는 사람도 모르는 사이에 문을 닫아버렸네그려.

포기를 모르는 후배, 다시 보성 쪽으로 차를 몰아 '다비치'라는 리조트에 딸린 사우나로 향했지만 에궁, 거긴 저녁 9시면 문을 닫네.

그냥 뜨거운 물 대신 자네의 뜨거운 사랑에 마음의 피로를 푹 담근 걸로...... 

일기예보에선 내일 종일 비바람이 거세게 몰아치겠다고 한다. 과연 이 자들이 거친 비바람을 뚫고 내려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