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유럽

영국 3 - 에딘버러

張萬玉 2009. 3. 3. 11:48

에딘버러에 가기로 한 건 너무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안 그래도 너무 짧게 잡은 영국 일정인데 그걸 쪼갤 생각을 하다니.

하지만 그렇게 가보고 싶던 아일랜드를 포기한 터인데 스코틀랜드라도 가봐야지 않겠냐는 미련에 시달리다가 

비행기로 후딱 날아가 하룻밤 자보기라도 하자고 마음먹기에 이른 것이다. 

 

빅토리아 코치에서 내셔널 익스프레스 버스를 타고 게트윅 공항에 갔는데 교통체증이 장난이 아니다. 

비행기 놓치는 줄 알았다. (좁은 동네길을 이리저리 뚫고 가는 2층버스, 참으로 대단하다.)

간신히 시내를 벗어나니 쌀쌀맞은 런던과는 사뭇 다른 영국 교외의 풍경이 그제서야 펼쳐진다.

끝없이 널따란 잔디밭에서 공 차는 아이들. 줄맞춰 가지런히 늘어선 멋진 단독주택들. 

자전거 타고 장 보러 가는 주부들, 체스판 둘러싸고 서서 떠드는 동네아저씨들....

언제 다시한번 제대로 영국을 탐험하고 싶다는 마음이 마구마구......

 

 

국내선인데도 보안체크가 꽤 심하다. 

늘 부치는 짐에 넣던 샴푸를 하룻밤 짐이라고 방심하고 가볍게 싼 배낭에 넣고 탔다 뺏겨버렸다.

 

안 그래도 늦은 시간 도착인데 1시간 가까이 연착까지 해서 에딘버러에 내린 시각은 밤 10시 반,

좌석 중간에 테이블까지 갖춘 럭셔리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에 도착하니 이미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못잡아 10분 정도 헤매다가 랜드마크가 되는 백화점을 물어서 겨우 숙소 부근으로 여겨지는 지점까지 왔으나 

정작 숙소인 15호를 찾을 수가 없다. 같은 골목에서 수도 없이 뱅뱅돌이를 하는 나를 본 14호 사는 아저씨가 데려다주어 겨우 숙소 도착.

(자기는 모르겠다고 자는 아내까지 깨워서 확인하고는 데려다주셨다. 이렇게 황공할 데가......) 

너무 깊은 밤이라 스탭은 문만 열어주고 사라져버린다.

어둠과 정적에 휩싸인 복도를 까치발로 걸어서 간신히 이만 닦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아무도 일어나지 않은 새벽에 도둑고양이처럼 빠져나가야 했던 에딘버러의 그 숙소.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칼 힐튼 언덕. 강렬한 첫인상으로 단번에 나를 에딘버러에 빠지게 만들어버린 곳.

푸르른 언덕 아래로 드넓게 펼쳐진 고성들과 바다, 그리고 그 너머 섬들의 파노라마는 스코틀랜드에 대해 지녀왔던 나의 상상과 딱 맞아떨어졌다.

간밤에 비라도 왔는지 숲은 축축하고 대기는 생명의 기운을 흠뻑 뿜어낸다. 

하늘은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만 그래서 더 스코틀랜드에 왔다는 기분을 돋구어주는 듯.   

 

 

 

 

 

 

 

 

 

저 바다 건너 용의 전설이 살아 숨쉬는 섬 투어......는 관두고라도, 하루짜리 하이랜드 투어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조차도 허락지 않는 야속한 비행기 탑승시간, 딱 두 시간이 모자란다. ㅜ.ㅜ

 

스코틀랜드 왕가의 거처였던 에딘버러 성. 

전망은 좋았지만 성 안에 큰 볼거리는 없었다. 백파이프, 퀼트로 만들어진 각종 군복, 장총들만 실컷 봤다. 

 

 

 

에딘버러 성에서 Holyrood Palace까지 쫘악 깔려 있는 돌길은 1년에 한 번 여왕이 마차를 타고 행차하시는 길, 로열 마일이다.

로열마일은 1마일, 약 1.6킬로 정도의 짧은 길이지만 이 길을 따라가며 앞뒷골목을 들락날락하다 보니 하루해가 훌쩍 가버렸다. 

 

 

화재로 소실되어 복구와 증축을 거쳤지만 어쨌든 800여년 전부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세인트 자일스 대성당.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칼뱅파의 존 녹스가 활동했던 교회라고 한다.  

마음이 급해 안에는 못 들어가봤다.

옆 사진의 뾰쭉지붕도 무슨 건물인지 모르겠다. 기억이 하도 오래 돼서......

 

 

이 도시에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특별한 뭔가가 있다.

역사 속으로 들어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는 웅장한 돌집들도 그렇지만, 이 특별함의 핵심에는 등골이 오싹하는 실제의 스토리들이 숨어있는 골목들이 있다.

에딘버러성 앞이 사형장 터였다는 사실로부터 시작해서

페스트가 창궐할 때 환자들을 가두어서 몰살시켰다는 Mary's Close(막다른 골목을 Close라고 하는 듯) 

낮에는 귀족으로, 밤에는 살인마로 변해 그 일대를 공포로 몰아넣었다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실제 모델 디콘 브로디가 살았던 골목 등등......

레파토리가 꽤 많은가보다. 오죽하면 으시시한 사연이 서린 골목들을 돌며 무서운 얘기를 듣는 '공포 투어'가 다 있을까.   

"What Lies Beneath the Royal Mile?"

 

 

  

 

브로디즈 클로즈에 있는 디콘 브로디 술집.

 

무서운 얘기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분위기에 이끌려서 나도 이 골목 저 골목 엄청 쏘다녔다.

싱겁지만 은근히 중독성 있는 영국식 스토리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나올 것 같은......

 

 

 

 

 

 

 

 

200~3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tavern(선술집)과 까페도 나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를 썼다는 까페, 엘리펀트 하우스.

자그마한 가게라, '해리포터가 태어난 곳'이라는 광고문구 아니었으면 모르고 지나칠 뻔 했다.

 

맛난 파이와 커피에 따뜻한 미소까지 듬뿍 얹어주던 파이집 주인 아가씨. 

늘 비가 오고 우중충한 이 도시는 여름에도 쌀쌀하고 겨울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래서 여기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는 데 이골이 났다네.

그래서 이 동네 특산물이라고 꼽는 게 다 방한상품들인가보다. 담요 등 퀼트 제품, 손뜨게 제품. 스카치 위스키, 그리고 따끈한 스프와 스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예의범절을 중시하는 영국사람들과는 달리 솔직하고 소박하고 간편한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다혈질에 강인한 성격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성격적 특징으로 꼽힌다. 돼지도 참 화끈하게 구웠네.. ㅋㅋ

 

 

 

 

왼쪽은 마네킹이고 오른쪽은 사람이다.

 

 

 

 

 

 

이 교회에 꽂혀서 한동안 주저앉아 있었다. 교회 뒷뜰이 꼭 나 어릴 적에 뛰놀던 교회 뒷뜰 같았기 때문이다.

이 동네 애들처럼 잔디밭에 누워있다가 깜빡잠까지 잤다.

 

 

이 교회는 주인이 죽은 뒤 10년 동안 그의 무덤을 지킨 충견 보비의 스토리로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는 곳이다.

보비의 주인은 이 교회에 시무하던 존 그레이 목사였다.

 

보비는 주인의 묘 옆에 묻혔고 그걸로도 모자라 동상으로, 까페로 다시 태어났다.

역시 개의 최대 미덕은 충성이다. 사람에게도 어떤 경우는 그러하다.

 

 

이제 로열마일의 끝, 여왕폐하가 에딘버러에 납시셨을 때 묵으시는 성십자가 궁전이다.

관람이 가능한 곳이지만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문이 닫혔다. 

 

마지막 볼거리, 국회의사당.

지을 때 돈 많이 들였다고 욕을 먹었다지만, 내 눈에는 너무나 탈권위적이고 쿨한 건축물로 느껴졌다.

 

에딘버러 관광의 디저트라고나 할까, 갑자기 시야가 시원해졌다.

 

꼬마야, 잘 있어~~

 

아저씨도 날씬이도 모두 안녕히 계세요. 올 수 있으면 꼭 다시 올께요.

  

돌아가는 비행기조차도 연착이었다.

게트윅 공항으로 돌아왔을 때는 버스 막차가 끊겨 오픈으로 끊은 왕복표가 쓸모없게 됐다.

아랍계 프랑스 아가씨랑 일행이 되어 기차역으로 돌진, 아마도 막차였을 기차를 잡아타고 간신히 시내로 진입, 거기서 다시 택시 쉐어......

우여곡절 끝에 숙소로 돌아온 게 무려 새벽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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