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황산

張萬玉 2014. 4. 28. 11:30

중국 제1의 명산으로 꼽히는 황산에 세 번 올랐다.

첫번째 황산행은 중국으로 이주한 첫해인 1997년 국경절 휴가 기간.

이주하고 처음 맞는 일주일의 장기휴가를 어찌 보낼까 궁리하고 있던 차에 지인의 손에 이끌려 갑자기 45인승 대절버스에 올라타게 되었다.

상하이 교민들의 불교모임이 주최한 여행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래서 황산보다는 불교성지 구화산에 이 여행의 무게가 좀더 실렸던 듯. 

밤 버스로 가서 새벽에 떨어져 황산 찍고(!) 다음날 구화산으로 이동했다가 다시 밤 버스로 돌아오는 조금 고된 일정이었다.

그렇게 고생을 무릅쓰고 갔는데 비구름을 뒤집어쓴 황산은 정말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다.

게다가 휴가를 맞아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황산 전체가 인산인해. 케이블카 대기줄이 거짓말 살짝 보태 산 아래까지 뻗쳐 있었다니까.       

그래서 황산 가는 거점도시로 꼽히는 상하이에 살면서도 10여 년 넘게 황산에 다시 가볼 생각이 없었고 

상하이를 방문한 지인들에게도 "천하제1경은 무슨...... 좀 뻥이야. 강원도만 못해." 이러면서 추천하지 않았다.

 

 

두번째 황산행은 2010년 11월초.

상하이에 놀러온 시누이를 어디로 데려가줄까 궁리하다가 마침 상하이 교민회 까페에서 주관하는 황산행 2박3일 모집광고를 보고 신청했는데

이 두번째 산행으로 황산에 대한 내 평가를 완전히 뒤집을 수 있었다. 고맙게도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한 하늘 덕분이었다.

 

 

 

 

 

 

 

 

 

 

 

 

세 번째 황산행은 시누이와 다녀온 지 보름도 안 된 시점.

대학에서 은퇴하셨지만 여전히 중국 학회와 교류하고 계신 외사촌 오라버니가 소주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신 뒤 우리집을 방문하셨는데

강력하게 황산행을 희망하시는 거다. 아무리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다고 해도, 70대 노부부의 산행길에 어찌 동행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런데 세번째 만난 황산의 얼굴은 또 달랐다. 

밤새 내려앉았던 비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雲海를 제대로 보여주는데, 仙景, 秘景이란 바로 이런 풍경을 두고 하는 말이겠다.

공을 들이고 들여도 쉽게 허락하지 않다가 한순간에 베일을 벗어제끼는 도도한 자태!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사모해마지 않는 황산의 참모습이었던 것이다.  

 

 

아침 아홉 시경 산에 들었을 때는 이렇게 짙은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홀로라도 걸어낼 수야 있겠지만 홀로 가기에는 너무 먼 인생길.

어차피 끝까지 같이 갈 수 없는 게 인간의 운명이지만, 일정 구간이나마 함께 해주는 사람이 있어 먼 길의 고단함을 잊을 수 있을 터.

50여년째 함께하는 행운을 누리고 있는 외사촌 오라버니 내외분 모습이 마치 연리지 소나무 같다. 

 

용의 발톱. ㅋㅋ

어쨌든 땅에 깊이깊이 뿌리를 내려야 살 수 있다. 깊이가 아니라면 넓게라도. ㅎㅎㅎ

 

서서히 해가 들기 시작하고......

 

 

구름이 걷히기 시작하고......

 

높은 봉우리 정상에서 구름 걷히기만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드디어 환호한다. 

 

 

  

  

  

 

 

 

산길에서 만난 80고개 할머니.

어제 삼청산을 등반하고 오늘 황산 등반중이시다. 나도 저 나이에......?

물론 체력과 다릿심도 부러웠지만 여유있고 행복한 저 표정이 어찌나 부럽던지. 

 

산 정상의 숙소에서 묵으면서 황산에 떠오르는 해를 볼 수 있다면 그런 행운이 또 있을까.

 

이 사진은 내가 완주하지 못한 서해대협곡 어딘가에서 나의 절친이 찍어온 사진이다.

황산의 백미로 꼽히는 그 구역은 내 다리론 도무지 엄두가 안 나 일찌감치 접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산과의 인연이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아직 접지 않은 미련이 있기 때문이다. 

겨울날 산 정상 숙소에서 며칠이고 머물며 좋은 일기를 기다렸다가 드디어 황산에 떠오르는 해를 맞는 것, 그리고 놀라운 雪景을 만나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그 어느 쨍한 겨울날을 기다린다. 

70고개를 넘으면서도 여전히 건강한 벗들과 그 감동을 함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