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쯤
밭에 물 주러 나갔다가 들어오는데 웬 생물체가 죽는 소리를 지르며 거실에서 뛰쳐나온다.
전부터 우리 담을 타넘고 다니던 얼룩냥이가 잠시 문을 열어놓은 사이에 무단침입을 한 거였다.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니 꽁무니가 빠져라고 도망가는 녀석, 헌데 그 와중에 녀석의 부른 배가 눈에 들어왔다.
내쫓긴 했지만 영 맘이 짠했다. 대체 어디 가서 몸을 풀려나?
오늘 오후에 녀석이 다시 나타났다. 털도 제대로 안 난 젖비린내 나는 삼둥이를 이끌고.
마당 끝 돌무더기 쌓아놓은 곳에서 망을 보고 있다가 내가 아는 척을 하니 잠시 도망치려는 폼을 잡다가 맘을 고쳐먹었는지
꼿꼿이 노려보며 하악질을 해댄다. 여기가 내 집인데 너는 누구냐는 듯...
그새 어디선가 몸을 풀긴 했구나, 기특하기도 하지.
좀 친해져볼까 하고 멸치꽁댕이 몇 개를 들고 나와 불러보지만 요지부동이다. 이거봐, 맛난 거야. 이 고소한 멸치 냄새 안 나?
할 수 없이 현관쪽으로 오는 길목 여기저기 놓아두고 후퇴.
잠시 후 나와보니 현관 가까이까지 와서 멸치꽁댕이를 아작아작 씹고 있다.
내친 김에 인심 썼다. 옛다, 참치캔이다.
참치캔을 들고 나가니 또 줄행랑이다.
흥, 그렇다면 나도 치사빤쓰 얍삽하게 나가봐야지. 현관으로 오는 길에 한 숟가락씩 덜어놓고 현관 안으로 들어와 기다려본다.
그거 준 게 나라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 연신 고양이 소리를 내가면서...ㅋㅋㅋ
한참을 뜸 들인 후 일단 어미가 와서 시식을 하는데, 먹는 와중에도 눈만 마주치면 하악질이다.
고이연 놈 같으니라고...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돌봐주겠다고 추파를 던지고 있는데 유랑하는 길냥이 주제에 감히!!
엄마, 뭐 먹어?
세 녀석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활발한 녀석(완전 깜장은 아니지만 가장 색갈이 짙으니 깜장이라고 부르겠다)이 합류했다.
둘이 정신없이 코 박고 있는 사이에 살그머니 휴대폰을 꺼내들어본다.
문을 열면 도망갈 테니 모기장 건너로 찍을 수밖에.
어느정도 먹고 난 어미가 가르랑거리는 소리를 내니 숨어있던 둘째와 셋째가 나타난다.
(사실인지는 모른다. 그냥 덩치에 따라 내 맘대로...편의상 둘째는 진한 회색이니 재돌이, 셋째는 거의 허연 회색이니 회돌이라 지칭하겠다)
겁쟁이 회돌이는 멀찌감치에서 비실대고 있고 재돌이가 과감하게 나서서 찹찹찹!
잠시 후 돌아와보니 절반 정도 남긴 채로 모두 사라져버렸다. 어딜 갔지?
안방 창쪽을 내다보니 고추밭 고랑에 네 식구가 자리잡고 누워있다. 우리 마당이 마음에 드는겨?
하지만 아직도 나를 보는 눈에 날이 서 있군. 야속한 녀석!
살그머니 모기장을 밀고 휴대폰을 들이대니 그만해도 익숙해졌는지 노려보기만 할뿐 이제 도망가진 않네.
엄마는 눈을 감은 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깜장이 녀석은 그 꼬리를 이리저리 쫓아다니며 장난을 치고
재돌이녀석은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엄마 입가에 남은 참치캔 기름맛을 되새기고 있고
한 입도 못 먹은 회돌이 녀석은 젖이나 더 먹으려는지 엄마 품 속으로 파고든다.
그래도 내가 나가서 다가가면 분명 후다닥 내빼겠지?
눈치를 보며 아주아주 살그머니 남은 참치와 물그릇을 애들 쪽으로 밀어놔주었다. 내일 아침까지 계속 머무를까?
우리 인연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끝까지 책임질 생각은 없으니 가족이라고는 못하겠고,
불우이웃 돕기 차원에서 당분간 먹이랑 물이나 좀 챙겨줄까 한다.
내 성의를 봐서라도 아양이라도 쬐끔 떨어주면 고맙고......
부록 : 숨은그림 찾기~ 숨어있는 회돌이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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