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마을 인근의 한 농장에서 '예술과 농업이 함께 하는' 축제가 열렸다.
'드릇'은 제주말로 밭, 여기에 제주말 팟디(밭)와 발음이 가깝고 뜻도 표현할 수 있는 Party'가 붙어 축제 이름이 되었다.
들에 있는 밭에서 열리는 축제라니, 뿐만 아니라 마을축제 치고는 꽤 수준 높은 아티스트들의 이름이 보이길래 먼 길 마다 않고 달려갔다.
아름다운 악근천을 끼고 있는 한라뜰 농원. 입구부터 행사장까지 1킬로는 족히 걸어들어가야 하는 정말 큰 농원이다.
입구에는 떡과 물, 작은 선물(친환경 비누)가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안쪽에 돼지고기 수육과 김치, 막걸리까지 차려놓은 걸 보니 (무료 공연인데) 후원이 많은 모양이다.
어이, 친구! 오랜만이야!(기타 잡은 이는 타악기주자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박미루씨)
여기저기서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참 흐뭇하다.
무대 리허설이 끝날 때쯤 해가 기울기 시작하고 관객들은 목이 빠져라......
농원 주인은 이날 공연을 위해 모기 파리 특별방제작업을 해두셨다고 한다.
이주 2년차라는 미모의 MC 손미숙씨.
진행솜씨가 거의 방송사급이라 놀랐는데, 알고보니 원래 같은 직업 출신이라고 한다.
그 옆으로 한라뜰 농원 주인님, 총연출 김백기 감독......모두 왕년에 서울에서 이름을 떨치던 분들이다.
올해로 2년차를 맞는 이 문화제에는 대륜동 난타팀, 서귀포팝오케스트라까지 합세하여 명실공히 지역문화축제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특히 난타팀은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의 실력을 갖췄다. 팀. 큰 북 열댓개가 일사불란하게 울리는데 그냥 아우~!
조금은 서툴지만 정답게 다가오는 연주, 진주조개잡이
뇌성마비 1급이라는 장애에도 불구하고 연극,, 퍼포먼스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김성국씨와 김석환 화백의 퍼포먼스.
무대 뒤 화면의 한라산 그림은 현장 퍼포먼스 과정에서 그려진 것이다.
도립오케스트라 단원 문지연씨의 첼로 독주
내가 이곳에 온 가장 큰 이유. 기타리스트 김광석씨의 연주를 보기 위해서였다.
아리랑, 고향의 봄 등 평이한 레파토리를 거의 10여 가지가 넘는 변주로 들려주는데......와, 정말 명성에 값하는 연주였다.
넋을 잃고 있다가 녹화를 놓쳐 아쉽지만... 제주에 사신다니 다시 감상할 기회가 있을 꺼라 믿고......
중간 휴식 시간에 수박도 나누어준다. 정말 시골 인심 최고다.(얘가 볼이 미어터지게 먹고 있는 건 수박 아니고 보리떡..ㅋㅋ)
이 공연의 하이라이트. 플룻, 첼로, 춤, 타악, 기타......모두모두 어우러진 퍼포먼스.
김백기 감독의 솜씨가 빛나는 무대였다.
마침 하늘 높이 떠오른 블루문이 이 입체적인 무대에 신비감을 더해주었다.
합동 퍼포먼스 왼쪽 무대를 장악하고 있는 곱창전골 밴드의 리더 일본인 사토 유키에.
이 축제의 클로징이었던 그의 본 무대는, 몇 분 후 일어났던 사건 때문에 보지 못했다.
마지막에 모두 일어나 파티장이 완전히 뒤집혔다는데... ㅋㅋ
뚜럼 브라더스가 제주어로 노래하는 '해녀삼촌 블루스'
왼쪽이 전에 소개한 바 있는 러피, 오른쪽이 박순동씨.
플룻과 타악기의 합주
참가 연인원이 300명쯤 되지 않았나 싶다. 제1회 http://blog.naver.com/camboss/220057924211 에 이어 큰 호응을 얻은 2회 드릇파티,
더 깊이 지역사회에 뿌리내린 모습으로 계속 발전해나가기를.
이날의 사건사고 1
여기서 40년 만에 대학 꽈동기와 마주쳤다. (난 눈썰미가 왜이리 좋은 거야!!)
염색도 안 한 반백 머리칼에 주름마저 자글자글했지만 땡그란 눈에 어린애같은 웃음.....한눈에 알아봤다.
얘는 한동안 멍~~ ' 얜 왜 이리 덩치가 커졌을까?' 했겠지. ㅋ
이 동네 월평리에 산단다. 아직 서울에 연고를 둔 일이 있어 제주 반 서울 반 왔다간다 한다지만 은퇴한 남편이 이곳에 주로 머무니 이주민 맞다.
제주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지 2년차, 서귀포에 사무실도 있고 귀농귀촌 교육을 받아 동기생들 인맥도 빵빵하고...... 거의 제주사람 다 됐다.
당일에는 연락처만 주고받고 헤어졌는데 다음날 당장 우리집에 놀러왔다. ㅋㅋㅋ
제주에 또 한 군데, 비빌 언덕이 생겼구나야~.
이날의 사건사고 2
공연이 후반부에 들어가는데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휑한 느낌이 올라오며 불안해졌다.
뭘 잃어버리면 이런 느낌이 온다. 대개 분실 직후에.... 참 이상도 하지.
웬지 차 키가 궁금해져서 가방을 마구 뒤져보니 없다. 주머니 속도 뒤집어보고 땅바닥도 들여다보고...... 분명히 가방 속에 넣어놨는데......
무대에선 사토 유키에씨가 김추자 노래를 신나게 불러제끼고 있건만 머리를 땅에 처박고 10분 이상 헤매다가 일어섰다. 이건 작은 일이 아니야!
2킬로 떨어진 곳에 두고온 차까지 걸어가며 휴대폰으로 바닥을 밝혀보지만 헛일.
포기가 빠른 나는 다음 할 일을 찾는다. 동부 프로미카, 도와줘요!
헌데 프로미 서비스가 할 수 있는 일은 열쇠가 있는 곳까지 견인해주는 일이라며 24시간 열쇠 서비스를 해주는 집 번호를 알려준다.
전화 해보니 한림쪽이다. 총알같이 와도 40분 거리. 시간은 밤 10시가 훌쩍 넘었는데...... 출장비도 18만 원이다. 그래도 어쩌겠니.
밤이 늦었다고 내일로 미루면 집에 돌아갈 일도 막막하다. 대중교통도 없고 택시 타면 거의 4만 원 돈.
무조건 빨리 와달라고 부탁해놓고...... 한 시간을 그냥 서서 기다릴 수가 없길래 왔던 2킬로 길을 되짚어간다.
하지만 땀만 뻘뻘 흘렸지 역시 헛탕... 행사가 끝나 나오는 사람들을 거슬러 다시 행사장으로 들어가
혹시나 하며 스탭에게 차 키 땅에 떨어진거? 물어보니....우왕, 습득했단다.
대체 언제 땅에 떨어진 거야? 선물로 받은 비누 넣다가 흘렸나보다.
뛸듯이 기뻐하며 구십도 절을 몇 번씩 하고는 바로 열쇠집에 전화. 이미 출발해서 금악이란다. 그래도 어떡해요, 아저씨 정말 죄송해요!!
블루문 밝은 달빛 아래 40킬로를 달려 집으로 돌아오니 자정이 다 되었다.
기름 떨어진 차를 끌고 영실 1100고지를 허겁지겁 내려오던 그밤처럼,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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