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덥냐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바람이 간간이 불어주어 제주의 여름은 견딜 만한 줄 알았다.
헌데 태풍이 몰고 온 비바람이 잦아든 뒤부터 일기예보는 연일 해해해해해해해해해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폭서가 이어지고 있다. (결국 바람의 섬에서 선풍기를 사고 말았다.ㅋㅋ)
평균기온 38도에 습도 90도를 넘는 상하이에서 단련된 인내심으로 잘 버티고 있기는 한데......텃밭은 그리 안녕치 못하다.
농사꾼이 새벽에 밭을 돌봐야 하거늘, 무더운 밤을 불면으로 지새다가 늦잠이 들면 아침 8시나 되어 밭으로 나가니
이미 지글지글 끓고 있는 태양 아래 한 시간만 있으면 바로 탈진이다. 하지만 인정사정 안 봐주는 잡초들.
매일매일 한 짐씩 뽑아대던 끝에 결국 포기하고 당분간은 아침에 먹을 것 따러 나가면서 스프링클러나 돌리기로 했더니.. 다시 정글로 복귀하는 중이다.
나를 밭일에서 멀어지게 만든 이유가 불타는 태양 말고 또 있다.
텃밭 농사 중 가장 큰 부분인 고추밭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고춧가루 한번 수확해보겠다고 야심차게 50주나 심었기에 고추밭은 나의 자랑이자 가장 큰 애착이었는데
비바람에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면서 싱싱하고 탐스럽게 자라준 녀석들이...... 익기 시작하면서부터 시들시들 말라가는 거다.
여기저기 수소문해보고 인터넷을 두들겨본 결과, 과습으로 인한 마름병이라는 걸 알아냈다.(짐작일 뿐임)
혹시나 싶어 병 든 녀석들을 따내고 좀더 기다려봤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익기 시작하면 예외없이 저 꼴이다.
다 말려서 내버리느니 싱싱할 때 놓치지 말고 따는 게 나을 것 같아 눈물을 머금고 수확에 들어갔다.
절반 정도 따내니 한 다라이도 넘는다. 이왕 따는 것 고춧잎까지 넉넉히 첨부하여 네 집에 나눠주었다.
나머지는 며칠 기다렸다가 장아찌나 담아야지. (누가 그렇게 먹는다고 손 닿는 것마다 장아찌냐.. ㅠ.ㅠ)
심는 건 그냥 시작에 불과했구나. 넘어야 할 산이 한 두 개가 아니었구나.
작물이 병들어가도 대책은커녕 원인도 모르는 채 끝낼 궁리부터 하다니......나 어디 가서 텃밭 한다 소리 하지 말아야겠다. ㅠ.ㅠ
순차적으로 익어가며 일용할 적정량을 내주는 토마토가 그나마 위안이 된다.
덕분에 '밭에서 빨갛게 익은' 토마토를 바로 따서 먹겠다는 로망을 실현하고 있다. ^^
근대, 부추, 깻잎도 나 먹고 이웃 나눠줄 만큼 속도를 맞춰주어 고맙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던 늙은 쌈채들을 뽑아내고 나니 아침 샐러드 거리가 아쉬웠던 차였는데
이웃이 붉은상치와 붉은치커리 모종을 보내주었다. 각 10주씩.
비바람이 한참 치던 중이라 살아낼까 의심하며 일단 심긴 했는데, 절반 정도 살아남았다.
이제 불타는 태양을 어찌 견뎌낼 것인지 관찰하며 아침저녁으로 정성껏 물을 주고 있다.
채소밭이 빈 틈을 타서 채송화와 금잔화 새싹들이 번지고 있다.
멀찍이 떨어진 화단에 씨를 뿌린 건데 어째 그쪽보다 이쪽에서 더 야단들이다.
제맘대로 자라는 돌미나리는 딱 한번 따먹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되었는지 탐스러운 꽃을 피워내고 있다.
금잔화 밭에 파묻힐 지경이 되었길래 옮겨심었던 이름 모를 작은 관목.
이제 보니 백서향 나무였다. 오설록에서 알게 된 향기 짙은 꽃......
새 집에 이거 꼭 심어야겠다. 완소!
이것 역시 있는 줄도 몰랐던 이름 모르는 꽃나무. 희고 작은 꽃들이 공처럼 뭉쳐 핀다.
화단에 씨앗을 뿌려뒀던 수레국화와 공작초가 예쁘게도 피었다.
아직 씨앗이 남아 있으니 내년에도 심어야겠다. 버베나, 채송화, 금잔화와 어울리면 더 예쁘겠지?
친구들이 놀러와 뒤뜰에 자주 드나들어서 그런지 한동안 자취를 감췄던 냥이 가족이 돌아왔다.
그 며칠 새 새끼들도 많이 자라서 이제는 엄마 밥그릇에 같이 머리를 박는다.
사료 봉지를 보면 다 자란 고양이에게 아침저녁으로 100g 정도씩 주라는데 어미고양이 분량을 셋이 나눠먹자니 부족한지
저녁 6시만 되면 또 밥 내놓으라고 합창을 한다.
식구도 아닌 나그네에게 밥을 챙겨주는데 이 또라이 녀석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사료봉투 들고 나가면 하악질이다. 심지어는 앞발로 뺏는 시늉까지......
하지만 녀석들의 식사예절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저절로 나와 괘씸함을 잊게 한다.
밥 때 맞춰 어미 혼자 기다리고 있다가 (하악질 한번 해주시고..) 밥을 부어주면 한걸음 뒤로 물러앉아 조는 흉내. (윗 사진) ㅋㅋㅋ
내가 자리를 비켜주면 그제서야 가르랑가르랑 새끼들을 부르고 기다리던 새끼들이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총알같이 뛰어나온다.
하지만 '괭이 밥 먹듯'이란 말도 있듯이 새끼들은 몇 입 먹고 나면 꼬리를 빳빳이 세우고(기분 좋다는 표시) 겅중겅중 뛰어다니거나 뒹굴면서 장난을 친다.
엄마의 식사는 그제서야 시작되는데, 신기하게도 1/3 정도 남기고서는 다시 가르랑거리며 새끼들을 부른다. 그러면 놀던 녀석들이 와서 시마이.
한번은 고등어를 구워먹고 남은 대가리를 줬더니 냉큼 물고 쑥밭 속으로 사라져버린다.
슬쩍 들여다봤더니 오, 이런... 그 맛있는 것을 새끼들에게 던져주고 자기는 옆에서 입맛만 다시고 있네그려.
언제부터인가 엄마보다 덩치가 크고 꽁무니에 방울 두 개 단 녀석이 가끔 담 넘어 들어온다.
새끼들에게 하는 양을 보면 아빠인지도 모르겠다.
어미는 앙칼지게 울어대며 곁을 내주지 않지만 녀석은 뻔뻔하게 어미 곁을 맴돌며 끈질기게 구애행동을 한다.
"야, 새끼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못된 녀석 같으니!!'
녀석에게 슬리퍼를 던져보지만 줄행랑은 그때뿐이다.
아직은 안 그러지만 이제 그녀석까지 밥동냥에 합세하면 이걸 어쩐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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