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살이/애월리 四季

가을 문턱 / 성 이시돌 센터

張萬玉 2015. 9. 11. 09:07

네 그루 무화과는 따도 따도 익는다.

한바탕씩 따서 동네방네 돌리기를 몇 차례, 그래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열매가 지천이다.

택배라도 보내면 싶지만, 쉽게 무르고 하루살이가 잔치를 하니 엄두를 못 내고...... 이제 나오는 대로 말려서 월동준비나 해야겠다.

 

무화과나무 아래로 있는 줄도 몰랐던 목백일홍(배롱나무)이 제철을 맞았다.

이사 갈 때 무화과 한 가지 꺾어가면서 저 녀석도 데려가고 싶다.

 

돌담 밖 동네길에 옆집 할머니가 심어놓으신 콩줄기가 담을 넘다가 그것도 모자라 마당 한귀퉁이를 점령했다.

여름내 깔따구 무서워 돌보지 않았던 밭이 외인부대에 의해 정글이 되었다.

이제 서늘한 바람이 불어 밭을 뒤집을 때도 되었건만, 잡초와 쇠비름을 뚫고 (꽃밭을 벗어나) 점점이 보석처럼 박혀 있는 채송화가 귀여워 바라보기만 한다.

 

봄뿐 아니라 가을에도.....  갑자기 무성해져서 날 놀래켜주는, 내가 심지도 않은 식물들. 수국, 토란대, 불두화, 유도화, 백서향......

전에 사시던 할머니,  참 대단하시다.  

 

좌) 여름 내 모히또 재료를 제공해주던 애플민트. 너무 무성해져서 대거 축출을 했는데 굴하지 않고 살아남아 이제 꽃까지 보여준다. 

우) 잘 쓸 줄도 모르면서 겉멋으로 심었던 허브들이 늙어간다. 로즈마리, 라벤다보다 잘 자라줬던 파인애플세이지가 꽃을 피웠다.

 

 

부추에 꽃이 피었길래 몇 줄기 잘라 도라지꽃을 곁들였더니 귀여운 꽃병이 되었다. 

 

<귀덕1리, 산책길>

 

 

 

 

 

착한 가격 정성 듬뿍, 돈가스집, 오크라.

큰길에서 한참 벗어난 시골마을 구석인데도 어떻게 알고들 오는지, 주말에는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다.

 

 

<일몰 한 시간 전, 성 이시돌센터 십자가의 길>

 

 

 

 

 

 

성 이시돌 목장은 손님들을 모실 때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도 마음이 시끄러울 때 즐겨 찾는 곳이다.

농부들의 성인인 이시도르1의 이름을 딴 이 목장을 개척하신 분은 아일랜드 신부님이시다.

 

성 이시돌센터에는 척박한 이 땅에 초창기 개척자들이 흘린 땀의 역사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시돌 목장 개척 초기에 목부들의 숙소로 쓰였던 테쉬폰

 

 

테쉬폰의 뚫린 창으로 내다본 이시돌 목장 푸경이 딱 서양화 액자 같다.

 

 

미로정원으로 꾸며진 '새미은총의 동산'의 구비길을 지키는 조각상들. 예수의 일생을 형상화했다.

'새미은총의 동산' 길에서 '십자가의 길'로 빠지는 길목 오른쪽의 넓은 광장이 알고 보면 삼위일체성당 지붕이다.

'십자가의 길'이 성 이시돌목장 코스의 백미인데, 예전에 찍어놓은 사진들은 다 날아가고, 위에 올린 햇살받은 길 사진 밖에 없다. ㅠ.ㅠ

 

역시 이시돌센터는 저물녘에 방문하는 게 좋겠다. 산록에서 굽어보는 일몰도 바닷가 일몰 못지 않게 감동적이다.

 

비 온 다음날이면 바닷가까지 나갈 것도 없다. 집 뒷마당 하늘에서도 대단한 일몰이 진행중.

  1. 스페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릴 때 지주의 일꾼으로 자란 그는 아들을 잃은 뒤 금욕의 삶을 살았다. 그의 깊은 신앙심은 천사들을 움직여 그가 쟁기로 밭을 갈 때 한 번의 쟁기질이면 밭이 세 배로 갈아졌고, 이러한 기적을 목격한 사람들의 큰 존경을 받았다. 성 이시도르는 가난한 사람들과 동물들을 사랑하여 굶주린 새 떼를 먹이거나 거지들에게 그의 음식을 나눌 때에도 음식이 몇 배로 늘어나는 기적이 나타났다고 한다.1130년에 별세한 그는 아후 스페인을 대표하는 네 명의 성인들과 함께 성인 반열에 올랐고, 특히 농부, 소작인, 일용직 노동자, 농촌공동체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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