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근처 한담공원길 산책길.
사실 노마드의 예술혼은 이때 눈치챘어야 했다. 해질녘 바다 풍경 속으로 과감하게 몸을 날리는 그녀.
바닷가에서 요가를 하자고?
이효리와 맨도롱또똣 때문에 갑자기 유명세를 타면서 통행인구가 많아진 그 길가에서 요가를?
썩 내키지 않았지만 도착하던 날부터 졸라대기에 엉거주춤 따라나섰다. 게다가 길을 나서는 그녀의 요가복장도 마음에 걸렸다.
핫팬티에 탱크탑....평소 운동복장이라니 본인이야 자연스럽겠지만 이 시골아낙의 눈엔 낯설기만......
난 여기 사는 사람이라고... 동네 할망, 할아방들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싫다고!
내 성화에 결국 내 치마 하나 얻어걸치고 출바알~
오, 저 몸매를 누가 60바라보는 여자의 것이라고 하겠나.
일주일에 적어도 세 번, 두세 시간씩 헬스에 투자한 몸매다. 집에서도 틈만 나면 요가동작......
애써서 만든 몸이니 탱크탑에 핫 팬츠, 카메라 샤워 얼마든지 즐겨도 된다.
하지만 나더러 그러자고 하지는 말자고. 한국에서 자란 여자 치고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있는 여자는 그리 많지 않다고......ㅠ.ㅠ
두꺼운 허릿살, 늘어진 팔뚝이 부각된 사진 지운다고 뭐라고 하지 말라고.
괜찮지 않은 것을 괜찮다고 하지 말라고. 자기 몸이 나같은 덩어리라도 정말 괜찮겠어?
외국에서 덩어리 같은 아줌마들도 자신감있게 다닌다는 말은 하지 말라고. 그건 당신 같은 사람이 할 얘기가 아니야.
아흐, 쿨하지 못해서 미안해....^^
운동하라고, 운동하라고.....그녀는 쉴새없이 싸인을 보내지만, 나는 말 안 듣는 아이처럼 오히려 평소에 하던 스트레칭마저 뚝 잘라먹고.......
그녀가 떠나고 난 뒤에서야 그녀가 가르쳐주려고 했던 동작들을 해보며 이상하게 삐딱했던 내 마음을 되짚어본다.
뭐였지, 질투였나? 내 몸 내가 알아서 한다는 반항이었나? ㅋㅋㅋ
쇠소깍에서 호황을 누리고 있는 투명카약이 한담해변에도 상륙했다.
같이 타자고 조르는데 혼자 태웠다. 하롱베이 등 몇 군데 여행지에서 타봤지만 배 타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
혼자 산책을 나갔던 어느날인가, 흥분된 목소리로 빨리 나오라고 전화를 해대더니 저리도 멋진 사진 한 장을 찍어왔다.
밀물 썰물이 있지만 저렇게 뚜렷하게 생기는 모래톱은 그리 흔한 게 아닌데, 게다가 누군가 말을 타고 거니시는군... 운이 좋았네.
거부할 수 없는 또다른 그녀의 매력은 몸매만큼이나 강력한 요리실력이다.
약선을 공부하고 있느니만큼 내가 무심히 사용하던 식재료들에 대해 넘치는 정보를 준다.(아우, 귀찮아~~ㅋㅋ)
이 친구 덕분에 뒷뜰에서 잡초 취급을 받던 차조기 잎이 샐러드에 대량 투하되었다. 감도 껍질째 먹었다. ㅋㅋ
평소에 내가 만들어먹던 올리브유 + 식초 + 마늘 소스도 올리브유 가공과정의 문제점 때문에 들기름 + 레몬 소스로 대치되었다.
(이 간단하고도 풍미가 뛰어난 소스는 앞으로 내 아침식탁의 일등공신이 될 것이다.)
저녁에 고등어를 구워주겠다니까 마늘과 레몬즙이 듬뿍 들어간 시칠리아식 고등어구이를 뚝딱 해냈다.
우리집에 묵고 있는 가이드 친구도 엄지손가락이 모자란다면서 감탄에 감탄.....
떠나기 전날, 시장에서 떠온 광어의 부산물로 끓인 매운탕은 또 어떻고...
콩나물이나 쑥갓 등 기타 야채도 없이 딱 파, 마늘, 고추장, 고춧가루, 국간장만 가지고 무슨 마술을 부린 건지,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매운탕 중 최고였다.
스타일이 너무 다른 우리 둘, 어울리나요? ㅋㅋㅋ
(유리컵에 꽂힌 꽃은 노마드가 길에서 꺾어온 돼지감자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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