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도 넘게 지난 일기를 뭣땜시 쓰는지 모르겠지만 잘 살고 있다는 안부 겸사.....
10월 3일
집에서 멀지 않은 용흥리 운동장에서 생협 조합원 운동회를 한다기에 미란이 운동도 시킬 겸 슬그머니 참석.
마침 날씨가 너무 좋아 기대 이상으로 즐겼다. 뛰니까 또 뛰어지데~?
생협모임답게 싱싱한 재료들을 싸가지고 와 쓱쓱싹싹 비빔밥으로 점심
띠동갑들과 함께......(주책? ㅋㅋ)
가을걷이
물것이 창궐하는 7, 8월에 완전히 손을 놓고 있었더니 텃밭이 그야말로 쑥대밭이 됐다.
여름상추와 치커리를 잠깐 심긴 했지만 겨울상추 같지 않게 웃자라버려 봄에 따먹는 채소 같은 감흥은 별로 없었다.
김장꺼리 때는 지났고(혼자 먹자고 김장하기도 웃기고) 시금치라도 심어볼까 하다가 그것도 심드렁.....그래도 우쨌든 밭은 정리해둬야겠길래
애저녁에 수확을 끝내버린 토마토와 고추, 가지 지지대나 뽑고 깨나 좀 털어보자고 텃밭에 발을 들였는데, 아니 이런 이변이!
밭주인도 모르게 어디선가 날아와 자리를 잡은 녀석들이 뜻밖의 결실로 나를 놀래킨다.
일단 바깥 담벼락 아래 동네 할머니가 심어놓은 콩줄기들이 마구 담을 넘어 꽃밭 한귀퉁이에 자리잡는 걸 보고만 있었는데
막상 깍지를 까보니 오호, 제법인걸.
한 바가지 뜸뿍 거두고 밥에도 한 주먹 뒀더니 맛난 울타리콩밥이 됐다.
방풍나물도 새로 나고 쑥도 새로 나고...... 꽃이 피길래 바싹 잘라뒀던 부추도, 근대도 푸릇푸릇.....다시 농사 시작하라고 야단들이다.
가장 놀라운 건, 심지도 않은 쪽에 방울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었다는 사실.
심지도 않았으니 있는 줄도 몰랐고 당연히 지지대도 세우지 않았지.
헌데 녀석들이 잡초인 척 뒤엉켜 땅 위로 기어다니면서 줄기마다 루비처럼 붉은 열매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게다가 내가 심은 모종과 같은 품종도 아닌데 대체 어디서 온 녀석들일까. 신기방기!!
그리고 두둥~!!
씨를 뿌려놓고도 까맣게 잊었던 자리, 잡초 뒤에 숨어서 비료도 없이 혼자 힘으로 살을 찌운 호박 한 덩이.
놀라고 기뻐하며 거두긴 했으나 저 큰 놈을 어찌 잡나. 누가 있어야 마주 잡고 슬근슬근 톱질이라도 해보지.
10월 16일
아들넘이 일한다고 추석에도 올라가보지 않았기에 생일이라도 챙겨줄 겸 오랜 벗의 혼사에도 가볼겸 잠깐 상경.
아들과 간만에 마음 편한 데이트. 영화('인턴', 점잖게 늙어가는 로버트 드니로를 만나 즐거웠다) 보고
용산역에 새로 입점한 CJ에서 운영하는 만 사천 원짜리 한식부페(여기도 괜찮았음) 먹고.
연례행사로 참가하는 우정바자회에 들러 티셔츠와 샌들 하나 집어들고 30년지기 후배 아들 장가드는 구경 하러 가평으로 출동.
재혼을 한 후배는 전남편 사이의 자녀 둘과 현재 남편의 자녀 둘, 그리고 새로 낳은 자녀까지 다섯 아이를 화목하게 키워내면서
남편의 사업에도 크게 이바지한 철의 여인이다. 하지만 너무 애를 썼던 건지 위암을 얻어서 수술까지 하게 됐는데
요양하러 간 와중에 대궐 같은 집까지 지어내고 집이 완공되자 바로 그 집에서 開婚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오천평 호수 한가운데 조성한 작은 섬에 예식장이 차려지고, 막내가 사회를 보고 둘째와 셋째가 축가를 부르고......
이건 완전 인간극장깜 아닌가. 그저 감탄을 넘어... 감동이었다.
창 밖에 국화 심고, 국화 밑에 술 빚어
술 익자 국화 피자 벗님 오자, 달이 돋네
아이야 거문고 청 쳐라, 밤새도록 놀리라. / 권주가가 저절로 흘러나오는구나~
순수 한옥 공법으로 지어진 이 별장 중 두 채는 펜션으로 사용한다고 했다.
호수 한 가운데 있는 섬도 콘서트 장소로 대여해주면 딱이겠는데...... 우리 아들도 장가든다면 여길 빌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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