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이 다가올 때는 그 앞날을 알지 못하지만
시간은 그 인연들로 하여금 내 인생에 크고 작은 흔적들을 남기게 만들고
예기치 못한 때에 홀연히 그것들을 거두어간다.
추억의 영화제목까지 붙여가며 자못 감상적으로 ^^ 시작하는 오늘의 포스팅은 6개월의 짧은 인연......회돌이 얘기다.
6월 중순쯤 어미를 따라 우리 마당을 밟았던 젖먹이 고양이 회돌이.
삼형제 중 가장 몸이 작고 겁이 많고 생김새도 오죽잖았던 녀석이었다.
젖먹이를 이끌고 다니는 수유기의 엄마가 가여워 비바람 피할 박스 하나 내어주고 밥과 물을 챙겨주기 시작할 때만 해도
그저 나는 '선한 이웃'일 뿐, 이 길냥이 패밀리에 대해 책임감 같은 걸 갖게 될 줄은 몰랐다.
밥그릇 앞 새끼들 중 앞의 녀석이 회돌이, 뒤쪽 녀석이 재돌이 왼쪽에서 두번째, 가장 몸집 작은 녀석이 회돌이
헌데 어느날 갑자기 재돌이라 이름붙인 녀석이 박스 안에서 숨을 거두고 나서부터 졸지에 나는 캣맘이 되고 말았다.
이유는 단 하나, 재돌이보다 더 비실비실해 보이는 회돌이마저 내 손으로 거두게 될 것이 두려워......
이후 3개월간이 회돌이이겐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나날이었을 것이다.
젖도 먹고 밥도 (재미삼아) 먹던 시절에 어미는 밥상을 받으면 우선 해찰하는 새끼들부터 찾아다녔다.
젖을 찾아 파고들다 한 대씩 얻어맞는 시절을 거치며 회돌이는 무럭무럭 자랐고
엄마와 겸상을 시도하다 매몰찬 서열교육을 받기에 이르자 http://blog.daum.net/corrymagic/13754993
드디어 녀석은 어미와 형과 대등한 지위로 猫生舞臺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어미가 떠났고, 어미의 빈 자리에 배고픈 동네 고양이들이 꼬이기 시작했다.
밥을 너무 넉넉하게 줬던 탓일까.
온동네에 소문이 다 났는지 아침저녁으로 우리집에 드나드는 길고양이가 점점 늘어나더니 대략 여섯 마리 정도에 이르렀다.
이왕 그렇게 된 거 배고픈 녀석들 다 오너라~ 외치며 3킬로짜리한 푸대 사다놓고 아침저녁으로 저 밥그릇 가득 부어놨는데......
그 무지몽매한 인심이 화근이 될 줄이야. (고양이들이 영역동물이라는 걸 내 왜 몰랐을까.)
덩치가 비슷한 녀석들은 저렇게 꼬놔보다가 슬쩍 자리를 비워주면서 좀 나눠먹기도 하지만 문제는 산더미 만한 巨猫 두 마리.
밤마다 아기 우는 소리가 온 동네를 뒤흔들고 아예 죽는 소리까지 들려오니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어느날 아침에 보니 목덜미에 피칠갑을 하고 있기도 하고 어느날 보니 앞다리를 절고 다니기도 한다.
나쁜 시키들!! 보이는 대로 쫓아버리려고 투척용 落果들을 확보해놓고 기다려봤지만 내가 안 보이는 틈만 노려 번갈아 출동하는 깡패 두 녀석,
도무지 어째볼 도리가 없다.
문제는 밥, 개와는 달리 한번에 먹어치우지 않고 종일 드나들며 먹는 습관 때문에 늘 먹이통을 채워놨던 게 동네 고양이들을 불러들인 화근이었던 것이다.
결국 식겁이라고 별명을 붙여준 헹님조차 어디론가 사라지고 회돌이 녀석조차 숙소를 옮겼지만
나와의 의리를 저버리지 않고(에이, 설마~) 아침마다 나타나 내 곁을 맴도는 회돌이.
혼자 된 것이 안쓰럽지만 오히려 그 쌀쌀맞은 녀석이 내게 은근 의지하는 티를 내기 시작하니 우리의 관계는 더 오붓해진다.
예전에는 내가 문 열고 나가면 일단 구석으로 피하던 놈이 이제는 내가 가는 곳마다 줄레줄레 따라다니고
살그머니 등(머리는 절대 안 됨)을 쓰다듬으면 모르는 척 넘어가주기도 하고...(개냥이가 되어가는 중)
깡패녀석들이 나타나면 야옹야옹 일러바치고 자기는 깔아놓은 방석에 특권층처럼 앉아 내가 녀석들을 쫓는 장면을 느긋하게 구경.
어디서 밤을 보내는 지는 모르지만 아침 여덟 시면 어김없이 출근해 대기하고 있다가 내 그림자가 비치면 득달같이 쫓아와 밥 달라고 울어대는 녀석.
녀석이 오는 시간에 맞추어 사료를 딱 한 주먹만 주니 녀석도 나의 정책변화를 눈치챈 듯 한 두 번 쉬면서 먹이통을 다 비워버리고....
그러다 보니 깡패 녀석들의 발길도 그럭저럭 뜸해지고..... 드디어 회돌이와 나의 밀월시대가 시작되었다.
에라, 녀석을 먹이로 유인하여 우리에 가둬가지고 동물병원 데리고 가서 목욕재계 시켜 내 공간으로 들일까
야생화된 녀석이라 언제 도망갈지 모르지만 그래도 이사 갈 때 데리고 가볼까.... 요런 택도 없는 궁리까지도 해봤는데......
웬일인 거야? 벌써 이 주일째 녀석이 나타나질 않는다.
도무지 사그라들 줄 모르는 비바람 속 어디를 헤매고 다니는 건지. 설마 무슨 변을 당한 건 아닐까.
웬지 모르지만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이 느낌적인 느낌!!
헌데 이상한 건 녀석 뿐 아니라 동네 나가봐도 그 많던 고양이들이 한 마리도 보이질 않는다. 온 고을에 고양이 소탕령이라도 내려졌는지.
내 보호에 길든 녀석이 나 떠나면 어찌 살아갈까 늘 짠했는데......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찬 바람에 실려 홀연히 사라져버린 녀석...ㅠ.ㅠ
하루에도 몇 번씩 뒷뜰을 내다보지만 녀석이 머물던 빈 방석만 바람에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어차피 길게 가지도 못할 인연, 어쩜 잘 된 건지도 모른다고 서운한 마음을 달래보지만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내 마음은 아직도 미련한 미련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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