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말라티아에서도 천사들이 맞아주네.
참 희한하다. 혹시 내가 전생에 터키 사람이어서 형제자매들이 알아봐주는 것일까? ㅋㅋㅋ
새벽 6시에 말라티야 오토갈에 내린 나는 막판에 든 풋잠 때문에 제정신이 아니었다. 일단 터미널 밖으로 나와 벤치에 걸터앉아서 덜 깬 눈으로 시내 들어가는 돌무쉬가 어디 있나 더듬고 있는데, 같은 버스에 타고 온 것으로 짐작되는 아주머니 한 분이 다가와 웃으며 뭐라뭐라 한다. 어디 가느냐 묻는 것 같아서 '예니 자미!'(예니 모스크...호텔이 많은 시내 한복판)라고 했더니, 마이 와이프, 카....뭐라고 하면서 운전하는 흉내를 낸다. 그러고 쇼를 하고 있는데 마이 와이프가 아닌 마이 허즈번드가 와서 내 가방을 훌쩍 들고 주차장으로 간다. 어머나, 또 천사야?
헌데 종이에 50리라라고 쓰더니 열심히 구글번역기를 돌려, 세 시간 후에 청소가 끝나니 우선 5층에 올라가 아침부터 먹으란다. 엥? 밥은 내일아침부터 먹을 수 있는 거 아냐?
아무래도 묵지 않을 수 없는 숙소 같아서 감사하게 아침을 먹고 내려오니 또 구글번역기를 돌려, 청소중이지만 짐이라도 갖다 넣어놓으라고 열쇠를 내준다. 게다가 방에 가보니 헉! 세 사람이 묵으면서 요가를 해도 될 만한 트리플룸이다. 이 호텔 정말 이상해. 나야 땡큐지만..ㅎㅎ
근데 이걸 어쩌나, 청소 끝날 때까지 잠깐 나가 넴룻투어 예약하고 네브쉐히르 가는 버스표만 사놓자고 시작한 발걸음이 내 맘과 정말 다르게....
또 춤추는 분홍신을 신었다.
비몽사몽중에 넴룻투어를 모집한다는 베쉬코낙라르 안내센터를 찾아간다는 것이 말라티야 관광청으로 가고 말았다. 자기 버스카드를 찍어주면서까지 안내를 아끼지 않았던 아가씨 덕분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기념품가게와 전통가옥 몇 채만 덩그라니...사무실로 보이는 곳에선 꼬마가 컴퓨터게임을 하고 있었다.
한숨 한번 쉬고... 돌아오는 버스에 올라 5리라짜리를 꺼내니 기사님이 손사래를 치며 (카드 없으면) 됐단다. 에공 또 민폐!
원점으로 돌아와 다시 헤매기 시작. 베쉬코낙라르 호텔은 대체 어딨는겨!
결국 포기하고 아무 여행사나 들어가 물어보니 어디서도 넴룻투어는 안 키운다. 게다가 네브쉐히르 (카파도키아가 있는 괴뢰메 마을 인근 장거리버스가 서는 도시) 가는 버스 시간들도 출발시간이 모두 오후라 밤 열 시 다 되어 떨어진다네.
숙소 잡기가 어떨랑가...에라 모르겠다, 넴룻투어는 관두고 네브쉐히르 표는 좀 생각해보고 내일 살까... 하면서 들어간 마지막 집이었는데, 어딘가 전화를 해보더니 좀 기다려보란다. 시원한 물도 주길래 쉬어도 갈 겸 기대없이 앉아 있는데......말라티야 관광업계의 전설 라마잔, 그가 나타났다.
바로 내가 찾던 베쉬코낙라르 여행안내소의 넴룻투어 담당. 말라티야에서 넴룻투어를 찾으면 모두 자기와 연결되게 되어 있단다.
테러 문제로 터키 동부쪽 여행객들의 발길이 끊겨 넴룻투어 한 지가 언젠지 모르고 그래서 여전히 팀 구성은 요원한데, 그래도 꼭 가보고 싶다면 마침 동행이 있으니(털북숭이 청년이 하나 따라왔다) 자기 차로 데려가주고 실비로 가이드를 해주겠단다.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내가 생각했던 투어는 오후에 떠나 일몰을 보고 산 정상에서 1박을 한 뒤 다음날 일출을 보고 돌아오는 일정이었고, 그것도 오늘은 쉬고 내일 오후에 가야만 하는 것이었다. 헌데 오토바이로 여행하고 있다는 이 털북숭이 스위스 청년은 오토바이 수리중인 오늘만 가능하다네.
오늘? 오늘 언제 갈껀데? 그럼 내일 언제 오는데?
그럼 나는 호텔의 오늘 숙박 취소하고 내일 숙박을 예약해야 하는데?(넴룻산에서의 하룻밤을 위해 예약을 징검다리로 해놨던 거다.
안 그래도 된단다. 1박2일 투어가 아니고 지금(11시경) 갔다가 한 바퀴 둘러보고 여섯 시경 돌아오는 데이투어란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 게다가 바로 가잔다. 나 안 가면 이 청년도 포기하겠다고.... 어쩔까 말까. 나 지금 고단해서 죽을 지경이란 말여~
하지만 이 기회 아니면 언제 가보랴. 도우베야짓의 아라랏산도 포기했는데 넴룻산까지 포기하면, 나 터키 동부엔 왜 온 거니.
말라티야 넴룻투어 전문가가 당분간은 팀이 없을꺼라는데 안 따라가면 기회는 정말 없을 것 같고...결국 Now or Never!를 외치며 따라일어섰다.
죽거나 까무러치거나 살아돌아오겠지.
넴룻산은 일출투어로 유명하지만 그 일출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기원 전 1세기 이 산중에 비밀에 싸인 콤마네게 왕국을 건설했던 안티오코스 1세의 무덤 유적이다. 영혼의 승천을 위해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자신의 분묘를 지은 그는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시신의 침탈을 막기 위해 자갈들을 피라밋 모양으로 높이 쌓아 자기 무덤을 덮어버렸다. 그러나 세월의 비바람을 맞으며 자갈들은 조금씩 흘러내리고, 무덤을 장식한 조각들의 모가지들은 모두 동강이가...
왕의 욕심도, 먹을 것도 제대로 없었을 이 깊은 산중에서 소금땀 흘리며 자갈산을 쌓다가 죽어갔을 인민들의 희생들도... 참으로 부질없구나.
1881년, 독일이 군사작전에 필요한 수송지도를 만들 때 한 독일인 기사가 그 높은 곳에 솟은 이상한 언덕을 보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길도 없는 이곳까지 천신만고 끝에 올라왔다고 한다. 당시 접근이 어려운 이곳까지 탐사하기를 꺼린 터키 당국자들은 이 보고를 무시하였지만 발견자는 포기하지 않고 독일의 여성 고고학자에게 부탁하여 유적에 남아 있는 문자를 해독해냈고 이 결과를 바탕으로 이스탄불 고고학자가 합류함으로써 발굴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갈까말까 할 때는 가라’는 조언이 딱 맞다. 안 갔으면 정말 후회할 뻔 했다.
나다니엘과 라마잔
내가 훗날 넴룻산을 기억할 때 절대 빠지지 않을 이 두 멋진 사나이들의 라이프스토리는 내 넴룻산 투어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나다니엘, 스위스 제네바 인근 도시 출신. 27세.
오토바이를 타고 스위스에서 출발해 발칸반도와 이란을 거쳐 터키에 왔다. 두 달간 9500킬로를 주행하면서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한 오토바이가 말라티야 들어오면서 결국 퍼져 수리중. 이 여행을 위해 구입한 이 중고 오토바이는 자기보다 한 살이 더 많다고 한다. 수리가 완료되는 내일 스위스로 돌아가는 귀로에 오를 건데 집까지 약 4500킬로 잡고 있다네. (나를 움직인 1번)...
그는 사진을 찍지 않고 그림을 그리고 메모를 하는데, 그림 좀 보겠다고 펼쳐본 노트엔 방문한 나라의 지도, 그 나라에서 사용할 중요한 말들, 그 나라의 기억해둘 만한 사정들, 가끔 적어내려간 시까지 빼곡하다. 두 권째라고 한다. 잘 그리는 솜씨도 아닌데 유치하면서도 신랄한 만화풍의 스케치에는 저절로 미소짓게 만드는 사랑스러움이 있었다.(나를 움직인 2번)
직업을 물었더니 집 주변의 작은 땅을 경작하고 양을 20마리 키우며 일주일에 두 번 소셜워크를 한다고 했다. 정확히는 안 물어봤지만 산간지방 유르크 (몽고식 텐트)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가 하는 일이라고 한다. 스위스에는 대학 안 가고 농사를 짓거나 육체노동 하는 애들이 많아 그런 케이스인 줄 알았는데, 얘기하다 보니 콜롬비아를 여행하면서 약초에 흥미를 느끼게 되어 현지 대학에 입학해 약학공부를 마치기도 했단다. 그의 아버지는 현재 프랑스에서 아프리카 난민을 돕는 일을 하고 그의 누나는 캐나다에서 댄서가 되었다고 한다.(진정한 노마드 가족...ㅎㅎ)
어렸을 때 칠레에서, 소년기에 일본에서 잠깐 살았다니 오늘의 그로 성장하는데 그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강하면서 유연하고 자신감 넘치면서도 겸손한, 한 성숙한 인간으로서 모자람 없는 모습은 이 눈치 저 눈치 보기 바쁜 한국청년들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마지막으로 나를 놀래킨 3번은...고백컨대 그의 눈동자였다. 짙은 턱수염과 선글래스에 가려 거칠게만 보였던 그가 선글래스를 벗는 순간 정말 오랫만에 심쿵! 했다. 덴마크인의 눈동자처럼 갈색 바탕에 보석처럼 박힌 진초록빛 홍채가 오묘하게 빛나고 있었다. 눈주름마저 상냥한 예쁜 눈이었다.
라마찬
그는 일찍이 반신불수가 된 아버지를 대신해 열네 살부터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엄마와 두 동생들을 먹여살린 쿠르드족 청년이다. 그의 첫 직업은 서쪽 해변관광지에서 조잡한 공예품을 파는 것으로 시작되었고 그 인연으로 호객 등 관광업계의 잔일을 두루 거쳤다. 제대로 영어하는 사람이 드문 터키에서 그의 영어는 정말 훌륭하다. 발음도 표현도 어휘도.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다면서 어찌 그리 영어를 잘 하냐 물으니 일하면서 자기 영어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이 바닥에서 살아남는 길은 영어란 것을 깨닫고 조금씩 모아뒀던 돈을 몽땅 털어가지고 이스탄불로 가서 캐나다인에게 6개월간 집중교육을 받았단다. 그를 바탕으로 영어가이드가 되었고 이후 자신의 일 자체가 자기 영어선생님이 되었다고 한다. (나를 움직인 1번)
그는 정말 유능하고도 사려싶은 가이드이다. 일을 하는 데 조리가 있고 도무지 막힘이 없다. 좋은 친구들로부터 협력을 이끌어내는 데도 능해 보인다.
오늘 넴루트 다녀왔으니 예약 안 된 내일 밤 숙박 예약을 해야 하고 모레밤 숙박은 취소해야 한다니까 전화 걸어 해결해주고, 나다니엘이 지금 묵는 숙소에서 빈대에 엄청 물렸다는 얘길 듣더니 같은 가격에 더 좋은 호텔로 옮겨줄 수 있다면서 전화 두어 통으로 해결. 내가 메트로 등 세 개의 메이저 장거리버스들의 네브쉐히르행 버스 시간이 모두 오후 3시 무렵이라고 걱정하자 12시에 네브쉐히르 안 거치고 바로 괴레메로 들어가는 버스표도 알아봐주고...무엇보다도 내가 카파도키아에 예정보다 일찍 가게 되어 예약해둔 숙소에 더 일찍 들어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다고 하자 카파도키아에서 8년째 일하고 있는 오랜 친구라면서 미스 신(한국인)과 연결시켜주었다.
게다가 점심을 먹을 때 밥값을 내줬더니 답례로 말라티야 떠나는 날 자기 차로 오토갈까지 태워주겠단다. (나를 움직인 2번)
그는 독실한 무슬림 신자다. 요즘 젊은이답지 않게 계율을 성실히 지키며 라마단 (금식)의 의미와 즐거움을 설파하여 나다니엘로 하여금 라마단 경험을 약속하게 만들 정도로. 하지만 lS 얘기가 나오자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과연 신의 뜻이겠냐고, 신의 뜻은 평화이기 때문에 어떤 이유에서라도 사람을 죽일 수 없다고 역설한다. 자기도 쿠르드족이지만 터키와 싸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모종의 세력이 터키를 분열키고자 획책하고 있다고 했다. 이 얘기는 내가 여행하면서 터키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와 일치한다. 구체적인 정치 이야기로 들어가면 좀 복잡해지겠지만 어쨌건 균형잡힌 사고를 가지고 세계인의 한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해변에서 수공예품을 팔고 있는 총기있는 소년을 알아보고 그 재주를 아껴 아들로 입양하겠다고 집까지 찾아온 스웨덴 부부도 있었단다. 정말 넓은 세상으로 나가 꿈을 펼치고 싶었지만... 병든 부모와 어린 동생들을 두고 떠날 수없어서 울며 포기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35세 건장한 터키 청년의 모습에 해변에서 구걸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이 보여 마음이 찡했다. 그러나 그는 최소한 말라티야 관광업계에서 외국관광객 전문가로 통할 만큼 성장했다. 부디 터키 정치상황이 안정되어 터키를 찾는 여행객들도 다시 늘어나고 라마잔도 더 발전할 수 있기를...그리고 좋은 짝 만나 행복한 가정도 꾸리기를 빌어주었다.
이튿날 아침 라마잔이 숙소에 찾아와 버스 터미널까지 배웅해주는 것도 모자라 자기 마음이라며 뭘 내어준다.
놀라서 뭐라고 할 새도 없이 버스가 와서 고맙다는 인사도 제대로 못했다.
숙소에 와서 풀어보니 정말 터키스러운 고급 스카프다. 말라티야를 잊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 의도는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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