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연이 뭐 대강 그렇지 않을까... 하면서도 친구 따라 강남가는 맛도 있고, 혹시 중국무대에서는 한국에 와서 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 큰 기대 없이 줄레줄레 따라갔다.
독창과 군무, 현악중주... 메뉴는 크게 세 가지였고 연출은 초등학교 학예회 모양 단조로웠다. 하지만 역시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들고 올 수 없는 작품(사회주의권에는 익숙한 선동적인 작품)과 들고 올 필요가 없는 작품(외국곡)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괜찮았다.
독창은 네 프로였는데 김성일이라는 가수가 부른 박연폭포와 붉은수수밭 삽입곡(무슨 술 무슨 술 하는 노래)은 좋았는데... 나머지는 듣기가 좀 괴로웠다.
TV에서 볼 때도 그렇게 느꼈지만 생음악을 들으니 정말 지겹더라. 우리의 서양식 발성법과는 다른 발성을 하는 것 같았다. 음성이 탁월한 것은 틀림없으나 비음이 많이 섞이고 한껏 가공된 음색이 신경을 긁었다. 어찌 들으면 중국 민가 가수의 ?민족창법?과도 비슷한 느낌.
하지만 박연폭포는 우리네 것과 곡도 가사도 같았고 부르는 느낌도 같은 맛이었다. 서투른 중국발음으로, 마치 오현명씨가 "명태"를 부르듯 익살스럽게 홍까오량 삽입곡을 부를 때는 중국관객들로부터 가장 많은 박수를 받기도 했다.
현악중주...
현악기와 하프, 오보에2개 플롯 2개, 목금, 피아노로 이루어진 작은 악단의 연주가 어쩌면 그리도 힘이 넘치는지... 여성으로만 구성된 현악단 연주가 웬만한 오케스트라에 맞먹는 장중한 느낌이었다.
특히 10대의 바이얼린이 함께(?) 쯔고이네르바이젠을 연주하는데 얼마나 열정적인지 가슴이 쿵쾅거려서 혼났다. 저렇게 잔 기교가 많은 곡을 한 사람의 연주처럼 해내는 것도 감동(?)적이었고..... 사회주의 예술의 맛이란 이런 것일까.
군무... 고전무용과 현대무용.
고전무용은 한국무용과 비교하자면 한국무용이 어깨를 많이 써서 흥을 은근하게 표현하는 데 비해 손가락과 머리쪽을 많이 쓰는 그들의 무용은 직접적이고 선동적인 느낌을 준다.
곡 역시 좋게 말하면 활기에 넘치고 나쁘게 말하자면 조잡한 서양음악이 우리 음계에 섞여든 것 같다. 어찌 보면 중국 소수민족의 무용 같기도 한데(특히 복색을 보면) 중국 소수민족 무용으로 치기에는 훨씬 예술성이 뛰어나다. 어떤 안무를 보면 러시아 춤사위 같기도 하고 어떤 안무를 보면 중국 산시성쪽 춤과도 닮았다. 우리 고전무용과 비교해 본다면? 오히려 더 거리가 있는 것 같다.
현대무용은 한 마디로 80년대 한국사회를 풍미했던 운동권 춤이다. 춤사위나 음악이 놀랄 정도로 닮았다.
춤을 선도하는 여자는 완전히 이애주 교수다. 전체 프로그램의 마지막으로 나왔던 雪花飄飄라는 군무의 음악은 "청산이 소리쳐 부르거든"과 얼마나 비슷하던지....
눈을 실감나게 내려준 미키대극원 무대장치(놀라운 스크린!)에 힘입어 이 공연의 대미를 훌륭하게 장식한 이 춤은 나를 좀 울적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다양한 소재와 표현방법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세상이 있는가 하면 소재에서도 제한을 받고 , 표현양식에서도 제한을 받고 보고듣는 것조차도 깜깜한 세상에 섬처럼 고립되어 만들어내는 저 예술.... 저이들의 예술적 영감은 이미 바닥이 나버린 게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존심 높은 그들의 몸짓은 소위 혁명의 열정으로 인해(?) 처절할 만큼 힘이 들어가 있다. 마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내가 저 사회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삐딱이가 살기에는 모진 세상이었을 것이다.
이날 공연과 함께 기억할 일
또 한 가지는 중국 와서 처음으로 암표를 구해 들어갔다는 사실이다.
매표소 쪽으로 가는데 암표상들이 몰려들어 제일 좋은 자리라고 서로 값을 부르는데 반값도 안 된다. 묵묵이 서서 한참 그들이 경쟁하는 양을 지켜보다가 경매에 응하는 듯 100원!(원래 250원)을 외쳐서 낙찰시켰다.
나중에 두고 보니 비싼 자리를 살 필요도 없는 공연이었다. 자리가 많이 비어 공연 시작하면서 모두 좋은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친구는 공연을 많이 보러다니는 쪽인데 한번도 제값주고 표를 사본 적이 없단다. 한수 위다.
3년 만에 와보는 난징시루 밤거리는 서울의 압구정동 저리가라 하게 화려하다. 상해 밤거리를 쏘다녀본 게 언제였던가... 처음 상해 와서 2~3년간은 단돈 20원으로 시립오케스트라 공연 보는 맛에 주말마다 대세계 옆 음악청을 찾곤 했는데....... 지금 나는 너무 발 아래만 보며 살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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