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로 가는 길(~2014)/재미·취미(펌 글)

이원수 동화에 담긴 사랑

張萬玉 2005. 6. 20. 18:21

이원수 동화에 담긴 사랑

이 기 영

 

 

1.

이원수가 동화를 써서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부터다. 해방 전에는 주로 동시를 발표했다. 해방 후는 정치가 혼란하고, 국토는 둘로 나뉘고, 사상이 극과 극으로 대립하는 무질서한 사회였다. 그런 속에서도 권세와 재물을 쌓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백성들은 이리 밀리고 저리 밀리고 하여 해방의 기쁨보다 더욱 고통스런 생활을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세상에서 이원수가 자라는 아이들을 보고 울분과 탄식으로 ‘탄식조의 동시’를 쓴 것이 ‘너를 부른다(1946)’였다. 그러나 이원수는 동시로써 그 울분과 탄식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그가 추구하는 ‘사랑과 자유의 나라’를 그린 동화 《숲 속 나라, 1949》를 쓴다.
 
나뭇잎이 손짓하며/너를 부른다./운동장 느티나무/가지마다 푸른 잎새,/바람에 한들한들/너를 부른다.
꽃이파리 꽃잎마다/너를 부른다./울타리엔 찔레꽃/향기마저 피우며/바람에 하늘하늘/너를 부른다.
순희야,/순희야,
양담배 양사탕/상자에 담아 들고
학교엔 안 나오고/행길로만 도느냐./우리도 목메이며/너를 부른다.

이런 동시로써 내 가슴이 후련해질 까닭이 없었다.
동화를 쓰자. 소설을 쓰자. 그런 것으로 내 심중의 생각을 토로해 보자는 속셈이었다.
                                                       (《이원수아동문학전집 30권》, 156∼7쪽)

아동문학 작가 이원수에게 해방은 ‘산문을 쓰기 시작한 전기’를 마련해 준 셈이다.
이렇게 쓰기 시작한 이원수 동화는 역사·사회의 현장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고스란히 작품으로 되살려낸다. 작품마다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그는 자신의 일상에서 비롯되는 이야기들로부터, 시대의 한순간까지 그대로 지나치지 않는다. 6·25의 처참한 전쟁 때문에 일어나는 불행을 다룬 작품들을 썼고, 민주와 자유와 정의를 이루고자 한 4·19 정신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1960년이 지나면서 이원수는 ‘6·25나 시대정신’보다 ‘사랑(부모애, 형제애, 우정, 자기희생 따위)’을 주제로 한 동화를 많이 쓰기 시작한다.

그러나 나는 1960년이 지나서부터 내 시의 세계나 동화에 많은 변화가 온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사회에 대한 관심에서 좀 자리를 멀리하고 사적인 애정 세계에 가까이하게 된 것이다.(위의 책, 258쪽)

그렇다고 해서 그의 치열한 작가의식, 현실 삶을 바탕으로 하는 현실관이 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불의에 대한 분노는 숨길 수 없으나 작품에 드러내어(위의 책, 258쪽)’ 다루지 않을 뿐이다. 이제 그의 투철한 작가 의식은 ‘세상 사람들의 삶’을 이야기한다. 때로는 날카롭게 또 때로는 아름답게. 이원수 동화에서 세상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주인공은 힘없는 동물이기도 하고, 힘센 동물이기도 하고, 나무가 되기도 하고, 새가 되기도 하고, 아주 어린 아이, 조금 큰 아이, 또 때로는 어른일 때도 있다. 그들이 가난하게 사는 이야기, 부자가 된 이야기, 억눌려 사는 이야기, 권세를 누리는 이야기, 우정을 담은 이야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들을 들려준다.
그 이야기 바탕에 이원수의 투철한 현실의식이 있다. 문학이 추구하는 인간 삶에 대한 보편적 사랑이 있다. 그 보편성 속에 이원수 특유의 통찰과 감성이 있다. 이원수 동화가 ‘문학’의 자리에서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아 있는 생명력이 여기에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사회에 대한 사랑, 민족에 대한 사랑…… 결국 이 ‘사랑’이야 말로 이원수 동화의 출발이요, 중심이 아닐까.

가끔 강의를 할 때 이원수 단편동화 <용이의 크리스마스, 1959>를 복사해 함께 읽고 토론을 먼저 한 다음, 이 동화가 이원수 작품이었노라 말하면 “역시!”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지만, 뜻밖이라는 이도 생각보다 많다. 정말 이원수 동화냐며 왠지 이원수는 이런 동화 안 쓸 것 같다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원수 ‘동화’ 감상보다 ‘이원수’가 아동문학에서 이룩한 성과와 명성, 또는 이원수의 치열한 현실 의식에 대한 평가가 빗어낸 편견과 선입견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제 이러한 편견을 버리고 이원수의 치열한 작가의식이 만들어낸 ‘동화’ 몇 편을 가슴으로 감상해 보자. 그리고 그 동화 속에 담긴 이원수의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한다.


2.

예의 <용이의 크리스마스>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소재로 용이가 처한 어려운 현실을 그리고 있는데, 결말에 이르러 용이의 반전이 통쾌한 작품이다. 용이는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받는다는 사실도 몰랐고, 따라서 이제껏 한번도 선물을 받아본 적이 없다. ‘이 세상 아이들을 사랑하시는’(《도깨비와 권총왕/웅진닷컴》, 127쪽)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착한 애들에게 골고루’(위의 책, 128쪽) 다 주시는 선물이라는데, 용이는 받아본 적이 없다. 산타 할아버지는 정말 용이를 사랑하지 않았을까? 용이는 착한 애가 아니었던가? 어느새 용이의 ‘가난’은 용이가 산타 할아버지 사랑을 못받는 것은 물론, 착하지도 않은 아이로 만들어 버린다. 이것이 용이가 처한, 용이가 살고 있는 현실이다. 용이는 억울하다. 억울한 마음에 산타 할아버지를 ‘망할 영감쟁이’라고 욕도해 보고, 아버지의 고장난 시계를 가지고 나가 동무들에게 자랑을 할까도 생각해 보지만 그만둔다.
그러나 한 차례 가슴앓이 끝에 일어서는 용이의 반전! 이제 용이는 산타 할아버지 선물 따위에 애태우지 않는다.

‘일없다! 산타클로스 선물 같은 건 안 받아도 좋다.……’
‘영식이가 또 묻기만 해 봐라. 그까짓 산타 할아버지, 우리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방문을 꼭꼭 잠가 두었다고 해 줄 걸!’(위의 책, 134쪽)

‘선물을 받고 싶다’는 수동의 자세에서 ‘우리 집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방문을 꼭꼭 잠가두는’ 능동의 용이가 된다. 용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것이다. 산타 할아버지가 ‘안’ 온 것이 아니라 ‘못’ 들어오게 문을 걸어 잠금으로써 용이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결정짓는 ‘사랑받는 착한 애’라는 현실의 굴레를 스스로 벗어난다. 이제 용이는 선물을 받았느냐, 못 받았느냐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그러나 이 자유는 용이가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에서 벗어났을 뿐이지, 용이에게 잠재해 있는 선물을 받고 싶은 마음까지 어쩌지는 못할 게다. 이원수는 그 마음을 이렇게 헤아려 준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용이네 방문을 흔들어 보았을까요?
은가루 같은 눈이 선물을 뿌려 주듯 용이의 잠든 창밖에 내리기 시작했습니다.(위의 책, 134쪽)

이원수의 치열한 현실 의식과 진정한 어린이 사랑이 돋보이는 결말이다. 이원수는 가난한 아이들이 소외될 수 밖에 없는 ‘크리스마스 선물’의 현실 가치를 비판하면서, 빈부를 가릴 것 없이 이 땅의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사랑으로 ‘은가루 같은 눈’을 ‘선물을 뿌려 주듯’ 내려 준다. 가난한 아이들의 현실을 외면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진정한 사랑의 선물로써 희망을 주는 것이다.


3.

이원수는 동물들을 무척 사랑해서 그의 집에는 고양이와 개가 늘 함께 살았다고 한다. <잠 자는 희수, 1961년>는 이원수가 집에서 키우던 개 이야기다. ‘나’는 쥐약 먹은 쥐를 먹고 죽은 희수를 대문 옆에 있는 라일락나무 밑에 묻어준다. 집 꽃나무 아래 자고 있으면 마음이 덜 섭섭할 것 같아서다. 그리고 날마다 라일락나무 아래를 발로 쿵쿵 밟으며 희수를 만난다. 그리고 15년이 지나서 이원수는 <희수와 라일락, 1976년>을 발표한다. 뜰에 서 있는 라일락나무의 향기 속에, 또 그 아름다운 꽃더미 속에서 다시 희수를 떠올리는 것이다. 희수가 묻힌 나일락나무는 해마다 놀랄 만큼 잘 자란다. 라일락인지 희수인지 모를 만큼 사랑을 받는다.

사랑하는 것은 죽어도 죽지 않는 것 같고, 오래오래 가슴 속에 살아 남는 것인가! (《꼬마옥이/창작과비평사》, 35쪽)

죽은 희수를 잊지 못하여 집 안 나무 아래에다 묻고, 날마다 그 곳을 발로 밟으며 그리워하는 이원수의 사랑은 애틋하기만 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그 나무가 무성히 잘 자라는 것을 보니 희수가 더욱 그립다. 죽은 희수와 잘 자라난 라일락나무, 죽음과 생명. 죽음은 곧, 또다른 생명을 탄생시킨다. 희수가 라일락나무가 되고, 라일락나무가 희수가 되는 것은 굳이 화학반응을 설명하지 않더라도 당연한 자연의 이치다. 그러나 이원수에게 희수가 라일락나무가 되고, 라일락나무가 희수가 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보답(결실)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것은 죽어도 죽지 않고 오래오래 가슴 속에 살아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짧은 동화 두 편에서 우리는 사람과 동물, 사람과 자연에 대한 이원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또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요,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 있는 것이라는 철학을 그의 일상 속에서 읽을 수 있다. <희수와 라일락>이 발표된 1976년은 이원수가 예슨여섯 살이던 해이다. 한 평생을 살면서 ‘오래오래 가슴 속에 살아 남을 사랑’이 어찌 희수뿐이었겠는가!
그의 일상에서 희수의 죽음이 라일락나무로 다시 태어났다면, 청년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은 <불새의 춤, 1970년>으로 우리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다. 부당한 노동착취에 항거해 제 몸을 불사른 전태일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으로 끝날 수 없다. 노동자들의 처절한 삶, 그 부당성, 잘못된 사회, 바로잡아야 하는 현실, 저항, 분신…… 이 현실을, 이 사회를, 노동자들의 삶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들려주어야 하나. 이원수는 청계천 봉제 공장 대신에 ‘두루미 무용원’을 만들어 냈다. 원장이 내세우는 ‘풍류’와 ‘예술’이란 명분 때문에, 두루미는 ‘철망’ 속에서 ‘배고품’을 견뎌야 한다. 고용주와 정치권력이 내세우는 ‘경제개발’ ‘산업역군’이란 그럴 듯한 이름 때문에, 전태일과 어린 노동자들은 ‘철망’같은 ‘다락방 봉제공장’에서 ‘배고품’을 견뎌야 한다.

이원수는 동화의 소재로 누구도 생각조차 못 했던 노동 현실의 문제를 ‘동화’에 담아내어 아동문학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는 온 몸에 불을 붙여 제 목숨을 버려야 할 만큼 절실한 가슴속 이야기를, 두루미를 등장시켜 들려준다. <불새의 춤>은 전태일의 분신이라는 한 사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사람이 살아가는 최소한의 조건 곧, ‘배고픔’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배고픔’은 결국 삶의 문제인 것이다. 배고픔으로 고통받고 학대받는 삶,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삶, 이런 현실을 비판한다. 그 바탕에 이원수의 사랑이 있다.
<불새의 춤>에서 ‘배고픔’은 단순한 배고픔 이상으로, 사회 구조의 모순에서 온다. 두루미가 배고픈 까닭은 올바르지 못한 분배 때문이다. 이원수는 지나치게 춤 연습을 강요 당하는(노동착취) 두루미의 일상적 삶을 통해 ‘배고픔’의 구조적 모순을 밝혀낸다. 구경하는 손님이 많아질수록 원장만 더 많은 돈을 벌고, 그럴수록 두루미를 짓누르는 배고픔과 억압은 더 심해진다. 원장과 두루미 사이에 있는 이 모순, 이 어긋남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서 두루미의 고통에는 관심 없고 구경만 하는 손님들, 두루미는 이 차가운 현실에서 고립된다.
두루미의 분신 곧, 전태일의 분신은 억압받고 소외된 노동자의 인권선언이요, 사회의 각성을 촉구하는 삶의 몸부림인 것이다.

“얼음 같은 심장을 녹이시오.”(위의 책, 51쪽)

<불새의 춤>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따뜻한 세상을 그리는 두루미의 외침으로, 전태일은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들 가슴속에, 천만 노동자의 가슴속에, 이원수의 가슴속에 오래오래 살아 남을 것이다.


4.

6·25 전쟁은 우리 민족 누구에게나 아픔을 준 비극이었다. 이원수도 두 아이를 잃는 큰 아픔과 슬픔을 겪었다. 이원수는 1950년대에는 그 자신이 직접 겪은 전쟁의 고통과 아픔을 주제로 한 동화를 주로 썼고, 6∼70년대에 이르러는 전쟁으로 인한 분단, 실향, 이산가족의 문제를 다루었다.
이원수 동화에서 6·25 전쟁은 ‘반공’보다 ‘우리 민족 전체의 비극’이라는 의식을 바탕으로 한다. 남한(국군)은 ‘정의’고, 북한(인민군)은 ‘악’이라는 적대적인 이분법의 생각을 떠나 한 민족이 겪은 비극이요, 그로 인한 인간성의 파괴, 상실감… 백성들, 더구나 어린 아이들이 겪는 고통 따위를 문학으로 담아낸다. <호수 속의 오두막집, 1969년>은 이데올로기의 대립과 분단 때문에 사랑하는 아들을 만날 수도, 함께 살 수도 없는 숙희 할머니의 긴 기다림을 이야기한다.
숙희 아버지는 6·25 전쟁 무렵 인민군 동무들과 한 달만 교육받고 온다더니 10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못한다. 할머니는 숙희 아버지가 간첩이라면 밤에 남 모르게나 찾아올 것 같았다. ‘간첩이든 무어든 오기만 와 봐라. 붙들고 놓지 않을 게다.’하고(《살꽃 이야기》, 68쪽) 애타게 기다린다. 60년대 서슬 퍼런 칼날 같은 반공의 시대였지만 할머니는 ‘간첩’이 겁날 게 없다. 할머니에게는 단지 사랑하는 아들일 뿐이다. 함께 오순도순 살고 싶은 아들일 뿐인 것이다.
‘한민족’이면서 서로에게 굴레를 씌우는 ‘간첩’은 민족 앞에서, 부모와 자식 앞에서 빛 바랜 허울일 뿐이다. 이원수 의식 바닥에 깔려있는 ‘남북 한민족’은 시대의 논리를 우선한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애절한 기다림과 사랑은 할머니가 죽어 혼이 되어서까지 계속된다. 언젠가 찾아올 아들을 위해서 호수 속에 잠긴 집을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민족의 비극은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념을 넘어 선 질박한 어머니의 자식 사랑도 그러하지만, 어머니를 그리는 사랑 또한 때로는 애절하게 또 때로는 아름답게 마음을 울린다. <여울목, 1979년>에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사랑과 새어머니를 맞는 따뜻한 사랑이 있다.
떨꺽떨꺽 목발소리를 내며 걷는 일웅이는 소아마비다. 3학년까지 어머니가 살아 있을 때는 늘 업고 학교에 다녔다. 여울목은 그 때마다 어머니와 함께 쉬어 가던 곳이다. 병신 자식 아닌 아들을 두고 싶어하는 아버지, 그래서 새어머니를 들이려는 사실을 안 일웅이는 슬픔에 젖어 여울목으로 간다. 여울목은 곧, 어머니 같은 곳이다.

찰부락 찰부락 여울을 핥는 바닷물 소리가 커져 와서…… 좌르르르 길게 무서운 소리를 낸다. 좌르릉 좌르릉 물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좌르릇 쏴아……(《밤안개/웅진닷컴》, 18∼20쪽)

여울목에 바닷물이 찬다. 이제 혼자 나갈 수도 없다. 무섭다. 일웅이는 죽은 어머니를 부르며 울고 있다. 그 때 물을 헤치고 들어온 사람은 새어머니였다. 서러움, 무서움, 반가움이 교차하는 일웅이는 여울목에서, 죽은 어머니가 아닌 산 어머니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 여울목은 일웅이에게 어머니였다.
죽은 어머니와 일웅이와 새어머니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해 주는 곳, ‘여울목’의 문학적 상징이 뛰어나다. ‘찰부락 찰부락’ ‘좌르르르’ ‘좌르릉 좌르릉’ ‘좌르릇 쏴아’하는 의성어는 바닷물이 차오는 시간의 흐름, 물살의 세기 따위를 생동감 있게 한다. 일웅이에게 밀어닥치는 두려움과 무서움이 더욱 실감난다. 그런 고도의 긴장 속에서 새어머니를 만나는 극적 효과는 더 깊은 사랑과 감동을 준다.
여울목이란 어떤 곳인가. 바닷물이 나가고 들어오고 함으로써 길이 열리고 닫히고 한다. 사람살이인들 뭐가 다르랴.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다시 새어머니가 오고, 나이가 들고 죽고 하는 것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이 그렇고 시간이 그러하듯, 인생 또한 물 흐르듯 흐르는 것이 아니던가. 살면서 어머니의 죽음만큼 더 큰 슬픔이 있으랴. 어린 나이라면 더욱 그러하리라. 일웅이처럼 몸에 장애가 있어 어머니 사랑을 더욱 받은 아이라면 그 빈자리가 얼마나 더 클까. 여울목에 바닷물이 채워지듯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새어머니는 그래서 더욱 고맙다. 새어머니의 외로움을 채워 줄 일웅이도 고맙다. 자연의 순리와 사랑을 일깨워준 여울목은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어머니인 것이다.
이원수는 1979년 12월에 구강암으로 서울대학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았다. 여러 차례 수술 끝에 1981년 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1979년에 발표한 <여울목>은 투병생활을 하기 전의 작품으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나 황혼기에 접어든 작가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어린이 사랑, 어머니 사랑, 그 모든 것을 품어 줄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사랑은 하나였다.


5.

이원수는 우리 나라 아동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거장임에 틀림없다. 올바른 아동관과 현실관을 바탕으로 한 그의 작품은 어린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문학적 형상을 이루어 내어 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그는 세상의 모든 일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고 그것들 가슴속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타고난 눈을 가졌다. 그 자신이 겪은 일상의 일부터 가족, 이웃, 사회, 민족에 이르기까지 그를 둘러싼 세상일을 냉철한 현실관으로 풀어낸다. 그리고 그 시작과 끝에 늘 ‘사랑’이 있다.
빈부의 격차 때문에 소외당하는 용이를 통해 이원수의 어린이 사랑을 보여 준 <용이의 크리스마스>, 집에서 키우던 개의 죽음으로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더 큰 사랑을 배우는 <잠 자는 희수> <희수와 라일락>, 전태일의 죽음을 개인의 죽음으로 끝내지 않고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죽어도 죽지 않는 사랑으로 남게 한 <불새의 춤>, 민족분단의 비극 때문에 죽어서까지 구천을 떠돌며 아들을 기다리는 한 맺힌 어머니의 사랑 <호수 속의 오두막집>, 자연의 품 같이 깊은 어머니 사랑을 이룬 곳 <여울목>.
이원수는 이렇듯 낮은 곳에서, 처절하게 버림받고 소외 받는 사람들을 사랑으로 감싸안아 준다. 그들이 사는 현실 삶의 순간 순간을 치열한 작가의식으로 작품에 담아낸다. 그래서 이원수 동화에는 치열함 속에 더욱 아름다운 사랑이 담겨 있다.


6.

이제 ‘이원수 동화 감상’이 아니라 ‘이원수 동화책’ 이야기를 하면서 이 글을 마치려 한다. 이원수 동화·소년소설은 《이원수아동문학전집/웅진》과 낱권으로 나온 책을 구해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전집은 현재 절판되어 책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낱권으로 출판된 책 가운데 <불새의 춤> <갓난 송아지> <불꽃의 깃발> <장난감과 토끼 삼형제> <호수 속의 오두막집> 같은 대표 작품들은 여러 책에 수록되어 그나마 손쉽게 구할 수 있으나, 전체로 볼 때 이원수 동화를 골라 읽을 선택 폭은 좁다.
어린이문학연구 분과에서는 지난 학기부터 이원수 동화·소년소설을 공부하고 있는데, 회원들은 전집을 구하기 위해 헌 책방을 뒤져 어렵게 샀다. 전집 중에 한두 권 빠진 채로 산 회원도 있고, 맞춤법이 바뀌기 전에 출판된 책을 구해 읽는 회원도 있다. 지난 10월 15일 마산창원 동화읽는어른 모임도 ‘이원수 특강’을 준비하면서 이원수 소년소설 《메아리 소년》을 구하기 어려워 제본을 떠서 읽을 거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아동문학 작가 이원수의 작품을 만나기가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다.
출판 관계가 어떤지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원수 동화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그의 대표작은 물론이거니와(특히 소년소설) 전집에 묵여 있는 많은 동화들 가운데 좋은 작품들을 손쉽게 구해 읽을 수 있기 바란다. 이원수 동화라고 해서 다 수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분과는 전집에 실려 있는 이백여 편의 동화·소년소설을 읽고 좋은 작품을 가려내는 일도 계획하고 있다. 아직 공부를 하고 있는 중이라 시간이 더 필요한 일이지만 우리들의 이러한 노력이 많은 독자들에게 좋은 이원수 작품을 쉽게 구해 읽을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일로 이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일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이원수 동화에 담긴 사랑만큼 큰 사랑을 주는 일이 아닐까.
마지막으로, 낱권으로 출판된 이원수 동화·소년소설을 소개한다. 중·단편동화집은 그 안에 실려 있는 동화 한 편 한 편에 대한 비평이 더욱 활발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동화 목록과 발표 연도를 함께 정리하였다.


낱권으로 출판된 이원수 동화·소년소설

·소년소설
《지혜의 언덕/분도출판사/1979년 초판》
《해와 같이 달과 같이/창작과비평사/1979년 초판, 1990년 개정판》

·장편동화
《숲 속 나라/웅진/1995년 초판》 《잔디숲 속의 이쁜이/웅진/1998년 초판》

·중·단편동화
《꼬마옥이/창작과비평사/1977년 초판, 1990년 개정판》
<나의 그림책, 1976, 현대문학>, <루루의 봄, 1976, 현대문학>, <미동이의 모험, 1975, 샘터>, <희수와 라일락, 1976, 열매>, <겨울·갈가마귀, 1975, 어린이새농민>, <불새의 춤, 1970, 주간기독교>, <은이와 도깨비,연대미상> <희야의 소라고동, 1957, 열매> <어린이날과 아지날, 1976, 어린이새농민> <쑥, 1975, 소년생활> <바둑이의 사랑, 1975, 주부생활> <그림자 같은 사람들, 1975, 어린이자유> <바람과 소년, 1976, 소년동아>, <불꽃의 깃발, 1969, 어깨동무> <화려한 초대, 1961, 자유문학> <귀뚜라미와 코스모스, 1960, 카톨릭소년> <꼬마옥이, 1953∼55, 소년세계, 학원>
《엄마 없는 날/웅진닷컴/1997년 초판》
<도깨비 마을, 1974년 소년> <해바라기, 1952, 모범생> <엄마 없는 날, 1977, 유치원> <갓난 송아지, 1973, 중앙일보> <불꽃의 깃발, 1969, 어깨동무> <은이와 나무, 1968, 조선일보> <엄마의 얘기, 1955, 경향신문> <불새의 춤, 1970, 주간기독교> <장군의 화경, 1973, 샘터> <비옷과 우산, 연대미상>
《밤안개/웅진닷컴/1999년 초판》
<여울목, 1979, 주간새시대> <나홀로와 젊어지는 약, 1974, 현대문학> <엉겅퀴, 1969, 카톨릭소년> <밤안개, 연대미상> <장나감과 토끼 삼형제, 1967, 새벗> <고 부자와 아이들, 1977, 불교신문> <눈보라 꽃보라, 1960, 국민학교학생> <감자밭, 1960, 방학공부>
《도깨비와 권총왕/웅진닷컴/1999년 초판》
<토끼와 경칠이, 1980, 여성동아> <떠나는 송아지, 1971, 신여원> <수탉, 1960, 세계일보> <바둑이의 사랑, 1975, 주부생활> <등나무 그늘, 1959, 새교실> <도깨비와 권총왕, 1979, 어린이새농민> <봄 나들이, 1958, 수도민경> <파란참새, 1968, 대한일보> <어린이날 선물, 연대미상> <용이의 크리스마스, 1959, 민주신보>


이원수 동화가 실린 동화 모음집

《꼬마 독재자/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오늘》 <명월산 너구리, 1969, 현대문학, 어린이 자유> <벚꽃과 돌멩이, 1961, 카톨릭소년>
《원숭이 꽃신/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오늘》 <장난감과 토끼 삼 형제, 1967, 새벗>
《살꽃 이야기/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오늘》 <호수 속의 오두막집, 1969, 농협신문>
《목마 할아버지/ 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오늘》 <불꽃의 깃발, 1969, 어깨동무>
《할머니의 노래/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오늘》 <빵장수, 1957, 평화신문> <여울목, 1979, 주간새시대>
《전자오락/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오늘》 <큰 세상과 작은 세상, 1964, 학원>
《바람 도깨비/어린이도서연구회 엮음/우리교육》 <갓난 송아지, 1973, 중앙일보>
《벌렁코 할아버지/어린이교육연구회 엮음/현암사》 <장난감과 토끼 삼 형제, 1967, 새벗>
《벙어리 동찬이/어린이교육연구회 엮음/현암사》 <달나라 급행, 1959, 새벗>
《정말 바보일까요?/이오덕 엮음/사계절》 <호수 속의 오두막집, 1969, 농협신문>
《눈 뜨는 시절/겨레아동문학회 엮음/보리》 <눈 뜨는 시절, 1948, 소학생> <바닷가의 소년들, 1949, 어린이나라>

▣(이기영 회원은 어린이문학연구 분과와 편집국에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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