츨근하자마자 함께 살고 있는 조카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교 가려고
나오는데 현관 앞 자전거가 하나도 안 보인단다. 우리 자전거를 포함해서 일곱대의 자전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춘절에 고향 갈 차비라도
마련하려는 좀도둑의 소행으로밖에 안 보이는데... 간도 크다. 정문에 수위가 둘 씩이나 있는데 한두대도 아니고...
원래 자전거는
자전거 주차장에 주차하게 되어 있지만 월 몇십원의 주차비도 내야 하고 주차장도 단지 내 외진곳에 있다 보니, 같은 통로를 사용하는 집 자전거의
절반 정도가 2층올라가는 계단 아래쪽을 주차장으로 이용한다. 인심 사나운 1층집을 만나면 슬그머니 그 옆 통로 1층으로 이사를 가기도 하기
때문에 맹물 같은 우리집의 경우 가끔 현관문을 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주인에게 별로 사랑받지도
못하고 녹슬어가던 나의 세번째 鳳凰자전거여... 마지막 대면도 제대로 못하였구나... 오호, 애재라..
처음 상해에 와서 산 자전거는 타고 내리는 동작을 겁낼 정도로 서투른 나를 위해 구매했기 때문에 안장이 낮고 바퀴도
작은 것이었다.
이왕 자전거왕국에 온 이상 나도 남들처럼 씩씩하게 자전거로 장도 보고 하이킹도 하리라... 야무진 꿈을 품었다. 하지만 "자전거 못 타는 사람도 있어?" 하듯 신기하게 쳐다보는 이웃들 앞에서 몇번 엎어지고 자존심 팍 구긴 뒤 단지 안에서는 연습을 포기하고... 한적한 길까지 20여분을 끌고나가 발발 떨며 연습하다가 어쩌다 차가 오면 급브레이크 잡고 엎어지기를 며칠..... 그러다 끝내 포기.
그후 앉은뱅이 같은 그 자전거는 18단 기어에 바퀴가 큰 것을 갖고 싶었던 아들네미의
홀대를 받다 어느날 사라져버렸다(그 실종도 홀대의 결과인 듯). 그래도 IMF를 맞아 차량구입을 차일피일 미루던 시기에 아쉬운 대로 자가용 노릇
하며 1년 정도 우리 곁에 머물렀던 정든 놈이었는데..
두번째 자전거는 일하는 아주머니의 요청에 의해 구입한 중고. 3층집이 구입한 지 두
달만에 넘겨준 것인데 어엿이 등록번호판까지 있고 바퀴도 큰 上品이어서 아주머니가 안 탈 때는 아들네미가 자주 끌고 돌아다녔다. 이 자전거는
아주머니가 우리집 일을 그만둘 때(그때는 내가 한국에 있었다) 함께 사라졌다.
그리고 세번째 자전거...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게 된 아들네미가 방학 때 집에 돌아와, "그래도 중국인데 자전거 한대는 상비로 갖고 있어야죠" 하길래 얼떨결에 구입한 中品. 아들네미
돌아간 뒤 누가 타는 사람이 없다보니 제일 구석에 쳐박혀 한번 꺼내려면 예닐곱 대를 빼내줘야 간신히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는
신세였지...
영화 첨밀밀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홍콩에 처음 와서 기쁨과 고생을 함께 하던 자전거는 주인공이 돈을 벌고 나이가 들어가며
잊혀진다. 하지만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첫사랑과 그 어떤 고생도 두렵지 않았던 젊음이 못내 그리운 날, 주인공은 자전거를 꺼내본다. 자전거는
그의 젊은날이다.... 그후 모든 것을 털어버리고 빈손으로 미국으로 건너간 주인공의 새로운 시작은 휘파람을 날리며 달리는 배달자전거로
표현된다..
저... 이뻐요?
ㅋㅋ
자전거... 자전거를 잘 못타는 나도 자전거가 괜히 좋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에 들어왔다..." 는 문구 때문에 빈폴 광고를 좋아하고,
자전거적인 소박함이 가슴을 찡하게 해주는 영화 "북경자전거"나 "자전거도둑"도 좋아한다. 출근시간에 구비치는 힘찬 자전거 물결을 보면 새로운
기운이 왕창 솟는다.
이제는 탈 사람도 없는데... 그래도 어쩌면 자전거를 다시 하나 살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내 마음에 Queen의 노래가 흘러넘친다. bycicle... bycicle... I love my bycicle, I love my
bike... 그리고 또... Seaside rendezvous.....
2003.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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