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그시절의편지9 - IMF 한파 속에서

張萬玉 2005. 6. 21. 18:55
오랜만에 쓰는 것 같구나. 벌써 12월이다.


상해의 겨울은 정말 쌀쌀맞기 이를 데 없다. 바깥은 과히 춥지 않은데 집 안에는 뼛속까지 스미는 추위가 있다. 습도가 높아서 그렇단다.

 

비오는 날도 햇빛 한점 없는 날도 많은 데다 집 안에는 온기가 없으니 실내에서도 잠바까지 껴입고 있다. 둔하게 옷입는 게 습관이 안 되어 잔뜩 웅크린 채 전기장판 깔린 침대 속으로만 줄달음치는 마음을 억제하느라 피곤한 하루를 지내다 보면 바깥에 나가지 않는 한 겨울임을 잊고 살았던 한국 생각이 간절하다. 보일러 고장나면 난리나 만난 듯 다른 집으로 피난가고 하지 않았니. 늘 보일러가 고장인 상태로 사는 이곳에선 (아줌마들 증언에 따르면) 겨울을 한 번 지내면 1킬로, 3번 지내면 3킬로 찐다는데, 가히 공포의 계절이로다.

 

심란한 날씨 타령 그만 하고 이제 심란한 돈 타령이나 해볼까.
북동풍에 실려 들려오는 한국의 경제소식은 우리에게 가히 공포다. 한국에서 보내주는 돈이 중국에 상륙하면 반으로 줄어드니 돈이 있어도 부쳐줄 수 없는 사정으로 인하여 건축계획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나버리고 결국 오늘 최사장이 임대공장을 계약하러 갔다. 1월부터 생산을 시작한단다.

 

암튼 현재 가지고 있는 돈으로, 생산 납품 후 현금이 나올 때까지, 혹은 원화값이 천원 안팎으로 떨어져 돈 부쳐줄 수 있을 때까지 공장 운영하고 직원들이랑 우리 식구랑 먹고살고, 정환이 학비 대주고 해야 한단다.

 

우습게 보던 인민폐도 금싸라기가 되어 담배도 중국산으로 바꿔라, 택시 절대 못 탄다, 주스 먹지 말고 과일 먹자 등등 바야흐로 검약과 저축이 강제되는 1970년대식으로 살고 있다.
다음학기 학교 등록도 물건너갔고 대신 음력설 이후에는 출근 하라나. 공장이 자립할 때까지 월급도 없다는데 이 말도 안 되는 근로계약에 응해야 해 말아야 해?

 

이러한 사정으로 인하여 오전에는 중국어공부, 오후에는 한편으로는 본사에서 생산하는 백여 가지 제품들을, 한편으로는 '초보자를 위한 회계 경리실무 기초'를 공부하고 있다.

남편은 있지도 않은 공장에서 아직 팔 데도 많지 않은 물건을 만들며 자립하기 위해 밤잠  설치며 고민하는데 마누라라고 놀 궁리만 하면 벌 받을 것 같으니 최대한 협조는 하겠지만.... 1월부터는 한국 기술자 두 명까지 하숙 치게 생겼으니 걱정이다.
하지만 짐싸들고 한국 들어가는 집 생각해서라도 견뎌야지.


한동안 중국 내 귀족으로 살던 대기업 사원 가족들은 지금 울상이다.

본인만 남고 가족들 돌려보내라는 회사, 앞으로 학비 못대준다는 회사(국제학교의 경우 한달에 학생 1인당 우리돈 180만 원 가량), 월세가 두 배 가까이 뛴 셈이니(600만원 이상) 외국인 아파트에서 중국인 아파트로 옮기라는 회사 등등....

 

게다가 달러 아닌 원화로 월급이 지급되는 집은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막막해지니 가라고 안 해도 자발적으로 돌아가게 생겼다. 전엔 중국사람들과 버스도 같이 안 타려 들던 아줌마들도 별 수 없이 아이들을 중국인 학교로 전학시키는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 중.

형 한국 갔다온 뒤 얘길 들어보니 한국사람들은 우리보다 위기에 훨씬 둔감한 것 같아. 우리가 환율과 직접 관련되는 환경에 있기 때문에 과도하게 예민한 건지?

어쨌든간 하루빨리 고국의 경제상황이 좋아지길 빌며 최선을 다할 수밖에.

 

요즘은 단파라디오를 하나 구입하여 아침(KBS에서 보내주는 라디오 한국)과 저녁(워싱톤발) 20분씩 뉴스를 들으며 정보의 목마름을 해결하고 있다. '오늘은 1740원이란다, 내일은 좀 떨어지려나....' 마치 일본 항복소식을 기다리던 1945년 사람들처럼.

 

달러 가뭄 속에서도 성탄과 새해는 찾아오겠지? 고국의 연말연시 풍경이 그립구나.
우리 학교에서도 성탄 전전날에 학예회(?)를 한다. 나도 미국애랑 같이 '징글벨'과 '친구여'를 중국어로 부른다.

이곳에는 당연히 성탄이 없어. 새해에도 겨우 하루 쉬고 1월 28일 전후로 두주 정도 놀지.
음력설에 한국 가긴 다 틀렸다. 한국 안 가면 곤명이나 가볼까 했는데 달러를 아껴야 하니 그것도 꽝이다.

여행이 없는 중국생활은 별 낙이 없어보인다.시내 돌아다니다 허기가 져도 마땅히 끼니 때울 데를 찾지 못해 가게에서 소스라치게 단 팥빵 하나 사서 질겅질겅 씹다보면 갑자기 중국이 질리는 기분이다. 떡볶이에 따끈한 오뎅국물로 간단히 추위를 녹일 수 있던 시절이 얼마나 좋았던지!

오랜만에 보내는 편지에 궁상만 떨었나보다. 새해엔 좋은 소식만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추운 날씨에 건투하고, 선거가 끝나도 사업은 변함없이 번창하길.

 

새해에 다시 덕담 전하마.

 

1997.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