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씩 와서 회사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및 내부공용시스템을 보수관리해주는 기술자가 있다. 이 친구는 세계적인 컴퓨터회사에 근무하고 있어 보수도 상당한 편인데도 토요일, 혹은
저녁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다.
엊그제 저녁에는 웬 아가씨를 데리고 왔다. 5월에 결혼식을 올릴 사이라고 한다.
원래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시켜야 하는데... 좋은 게 좋은 중국식 정서에 따라 수위실을 무사통과하고 들어온 이 아가씨, 남자친구가
일하는 옆에 찰싹 붙어앉아 함께 화면을 들여다보며 계속 조잘조잘 지껄여댄다. ㅎㅎ
다섯시간도 넘게 기다려준 여자친구와 함께
퇴근하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우리집 청소를 도와주던 파출부 락씨 아주머니 생각이 난다. 내가 어학연수를 할 때였는데 한번은 오전수업 마치고 일찍
돌아와보니 아주머니는 안 보이고 웬 늙수구레한 아저씨가 열심히 걸레질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알고보니 남편 회사가 정전이 되어
쉬는 날 이 아주머니가 남편을 대동하여 출근(!)해가지고 남편에게는 청소를 시키고 자기는 장을 보러 간 것이다. 빨리 일 끝내놓고 둘이 어딜
가기로 했다나... 이 한국 아줌마 조금 놀랬다.
락씨 아줌마는 그 후에도 아들의 여자친구를 데리고 함께 출근하여 예비 고부간에 사이좋게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 시어머니에 그 며느리!! 하하하...
* * * * * * * * * * * * * *
나도 남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우리가 자영업을 하는 줄 안다.
하지만 남편은 엄연히 주재원 신분이고 나는 현지채용 인원이다.
한국사람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그림이다. 심지어 자기 사업이라 해도 절대로 마누라는 안 들인다고 하는 게 우리 정서인데 노골적인 이 정실인사는?? 구설수에 올라야 마땅하다.
하지만 회사 내에서 나의 입지는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다. 남산골 샌님마냥 꼿꼿한 남편이 이렇게 모양새 좋지 않은 인사를 단행할 수 있었던 것은 초창기의 고생을 함께
겪어나온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본사의 중국투자는 공장을 짓는 순서로부터 시작되었기에, 올라운드 플레이를 해야 하는 중소기업의
특성상 초기에는 남편 한 사람이 투입되었다. 그러나 IMF를 겪으며 투자가 계속 지연되자 남편은 자기 책임하에서 일단 낡은 공장을 빌려 바로
생산에 들어가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자존심을 건 승부! 그것을 이루어내기 위해 남편은 밤낮없이
고군분투했다.
매출이 일어나기 전이니 비용도 아껴야
했지만 사람을 쓰는 데도 신중했던 탓에, 남편은 늘 격무에 시달렸고 곁에 원군이라고는 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나도 락씨아줌마의 남편처럼
함께 출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학연수 첫학기를 제대로 마치치 못하고 사무실에 나가 전화받기부터 시작하여 문서수발, 비품관리,
간단한 출납, 손님접대 등등 닥치는 대로 잡무를 도왔다. 보수고 뭐고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오로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
그렇게 고달픈 1년이 지나 회사가 어느 정도 모양새를 갖춰가는 것을 보며 나는 내 갈길을 찾아 나갔다. 이젠 내 일에 대한 평가를
받을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회사조직에서 훈련된 전문실무력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떤 대우를 요구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고 그런 일로
남편에게 부담을 주기 싫었다. 남편 역시 제 머리 못깎는 부담 때문에 굳이 나를 잡아두지 못했다.
그로부터 삼년 후
회사의
정식 요청에 의해 다시 출근을 하게 되었다.
업그레이드 된 것도 많지만 예전에
이곳저곳에 물어가며 서투르게 만들어놓은 서류들이 상당부분 원형을 유지하고 있고, 안 되는 중국어로 면접을 보고 고용했던 직원들도 이제 기간사원이
되어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라오반냥이 나와서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 중국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업무부 진용이 제법 갖추어져 나 아니면 안 되는 일 말고는 내가 간여하지 않아도 된다. 나도 이제는 시켜주는 사람 없어도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한직이라면 한직이고 중직이라면 중직이다.
대우도 적당하다. 과분하게 받으면 일도
과분하게 하고 책임도 과분하게 져야 하니까.... 한국인, 그것도 여성의 신분으로 취직하기가 쉽지 않은 중국에서 이만한 일자리... 만족한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에는 풀지 못한 여한이 있다.
언제나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늘
내 마음에 남아 있는 숙제 하나.
20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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