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범을 미덕으로 아는 한국의 50대 남자와 살다 보니 그리 됐는지....
삶의 디테일까지 챙길 여유 없는 가난 속에서 자라다 보니 그리 됐는지...
내면의 가치를 최고로 여기던 가정교육의 영향이 뿌리깊어서 그런 건지....
일한다고 바쁘게 돌아치며 가사일은 가능한 최소화하려는 오래된 습관이 몸에 배어 그런 건지...
아무튼간 가끔 내자신을 돌아보면 참 멋대가리 없이 산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적어도 물질생활을 누리는 감각을 보면 참 건조하다.
쇼핑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일단 먹는 것 외에는 거의 쇼핑을 안 한다. 양말, 속옷이나 가끔 살까....
10년 낡은 옷이라도 '있다'고 느끼니 예쁜옷 봐도 그저 예쁘구나 할 뿐이고...
물건을 사도 디자인 보다는 기능성을...기능성 보다는 내구성을 ...
그리고 난 후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인가를 따진 다음 지갑을 연다.
그러니 그림이니 꽃이니 향초니 하는 소위 '낭만소비' 같은 것은 나와 별로 인연이 없다.
짠순이라 그렇다기보다는 뭔가를 주렁주렁 거느리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싫어서 그런 것일 게다.
음식을 해도 손맛 좋고 푸짐하면 그만이다 하니 음식에 장식 같은 것을 놓는 일도 없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 요리책이나 인터넷을 뒤지는 경우도 (손님접대 때문이 아니면) 거의 없다.
화장이 잘못됐어도 지우고 다시 하는 일 없고
앞섶에 뭐가 묻은 옷을 모르고 입고 나와도 '아유, 이런....' 하고 금방 잊어먹는다.
이러니 뭐 소위 말하는 '현모양처의 내조' 상황이 얼마나 부실할지.... 눈치빠른 분들은 금방 알아채셨을 것이다. 아이도 그렇게 키웠다. '제가 다 알아서 자라는 거지 뭐....'
검소하고 알뜰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먹고 노는 데는 헤픈 편이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기 싫을' 뿐이다...(우리나라 주부로는 큰 결격사유...ㅠ.ㅠ)
물건 싸게 파는 곳을 찾아다니거나 싸게 사기 위해 깎거나 기다리거나....이런 것도 할줄 모른다.
요즘 한국에는 무슨 할인헤택이나 마일리지, 쿠폰 같은 것도 많이 있던데 아마 나는 그쪽에서 통지해주고 챙겨주지 않으면 이런 거 절반도 못 챙길 것이다.
경제적으로 부담 되면 그냥 안 쓰고 말지... 그런 거 일일이 신경 쓰고 싶지 않다.
(이렇게 무심하고 게으르다니...ㅠ.ㅠ)
요즘 남들 사는 모습을 들여다보면 자취살림을 하듯 살아온 지난날에 대해 솔직이 반성이 많이 된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데도 몰입이 안 되는 이 아줌마...
'성의가 없었던 거야'(손 한번 놀릴 것 세번 놀리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거 모르니?)
'게으른 것이야'(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했어.. ㅋㅋ)
'이기적인 거야'(부지런한 엄마를 둔 아이들과 남편들 호강하는 것좀 봐라)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파는 것이야?'(잘먹고 잘사는 거 제껴둘 만한 무슨 그리 큰 道가 있다고..)
혹시 내 마음 속에 생활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아기자기한 재미를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는 고질적인 병이 있는걸까?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요즘 세태가 싫어 '덜어가는 소박한 삶'을 꿈꾸는 사람들과 공명하며 살아왔던 나지만, 웬일로 번거로운 생활이 귀찮아지는 늘그막에 와서야 '사소한 것에 목숨 거는' 생활을 가끔 동경하게 된다. 이것저것 살 다 빼고 난 앙상한 삶이 좀 허전해서 그런가?
심지도 거두지도 않지만 솔로몬의 영화보다 더 아름다운 향기를 지닌 백합이고 싶었고 내일 일 걱정 없이 자유롭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새이고 싶었지만....
정착민으로 살아가는 세상에서 그것은 어쩌면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핑게'가 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생각이 궁극적인 삶의 알맹이가 빠져 있는 허전함에서 오는 착오일 가능성도 높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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