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벽두부터 이런 황당! 8시 10분전에 약속장소로 가니 아저씨가 "아참!" 하는 표정으로 전화통을 찾는다. 버스를 부른다나 어쩐다나.
불길한 예감에 서로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니나다를까. 표가 이미 이틀 전에 다 팔려서 자리가 없단다. 아니 그럼 당신은 확인도 안 해보고 우리랑 약속을 한 건가고 항의해봤지만
그게 무슨 소용인가, 1분이라도 빨리 표 구하러 뛰는 게 낫지.
열 팍팍 받으면서 터미널 쪽으로 뛰는데 따리에 도착하던 새벽에 만났던 여행사 아줌마가 손을 흔든다. 쫓아가 사정얘기를 하니 지금 막 떠나는 버스가 있으니 어디어디로 가라고 일러준다. 하지만 그 버스는 세 자리밖에 없고 어쩌나 난감해 하다가 에라 모르겠다, 여행사 통해 표를 산 사람들만 타는 버스에 여유 자리가 있는 걸 발견하고 무조건 쌍처!(上車) 그러자 사람들이 막 내리라고 야단이다. 기사에게 사정사정하며 개기고 있는데 원래 표를 산 사람 하나가 더 왔다.
이크, 이젠 더 못 버티겠구나 단념하려는 순간 마침 검표 과정에서 표도 없으면서 말도 없었던 사람이 적발되었다. 70은 훨씬 넘었을 이 조그만 백족 할머니는 왕내숭으로 버티던 중이었는데, 기사 왈 저 사람들은 미리 얘기라도 했지만 당신은 신고도 안 했으니 괘씸죄를 적용, 태울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간까지 쫓겨난 이 할머니, 죽으면 죽었지 못 내리겠다는 듯 엔진을 꽉 부여잡고 버틴다. 결국 동정표를 획득한 할머니를 태우고 버스 출발. 할머니 덕에 우리까지 거저먹기로 출발! 와, 한 수 배웠네.
예전엔 따리에서 리장까지 6시간 걸렸지만 이제는 고속도로가 뚫려 3시간이면 간다고 한다.
계단식 논이 끝없이 펼쳐지는 고원지대와 대관령 구비와는 비교도 안 되게 굴곡이 심한 산길을 돌며 차는 해발 3000미터 고지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쿤밍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춘절을 맞아 집에 간다는 내 옆자리의 백족 청년은 자기도 이 고속도로 처음 타본다며 연신 싱글벙글이다.
고향 가는 길은 즐겁다. 쌈짓돈 모아 준비한 선물 바리바리 싣고....
하늘은 점점 시퍼래지고 땅은 소름끼칠 정도로 붉다. 중간 정류장에 잠깐 서 있는데 갑자기 북소리를 앞세우고 용을 떠받든 놀이패 한 떼가 몰려온다. 설날 놀이판이라도 벌어질 모양이다. 백족 의상을 입은 사람들이 이 마을 저 마을에서 경운기 타고 몰려오는 모습도 보인다. 정말 오늘이 설날이구나.
버스가 리장 비행장을 끼고 달리는데 멀리 어마어마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구름인지 햇볕인지에 휩싸여 아래는 잘 보이지 않지만 꼭대기에는 흰 눈을 뒤집어쓴 거대한 바위산인데 정말 히말라야 사진 같은 데서나 나옴직한 신비한 모습이다. 바로 리장의 상징인 위룽쉬에산! 드디어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도시 리장에 도착한 것이다.
리장에 대해서는 사전 정보가 별로 없어 일단 숙소부터 정하고 연구해보자고 택시를 잡았는데 아, 이것도 나의 人福이리라. 설 쇤다고 대중교통이 다 노니 후티야오샤(虎跳峽)와 위룽쉬에산(玉龍雪山) 쪽으로 가려면 어차피 택시를 대절해야 할지도 몰라 기사아줌마에게 이것저것 묻던 중 이 아줌마가 상당히 괜찮은 사람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인연으로 수다쟁이 김여사는 2박 3일간의 상당 시간을 이 아줌마와 수다를 실컷 떨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리장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리장의 진짜 주인 나시족의 터전으로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아줌마가 소개해준 2인실 60원짜리 민박집에 짐을 풀고 앉은뱅이 의자를 놓은 나시족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돌솥에 기름을 두르고 감자와 콩, 그리고 위에 베이컨 같이 얇게 썬 돼지고기를 얹어 지은 이 밥은 나중에 노릇노릇 누룽지도 생기는 것이 꼭 우리나라 영양돌솥밥 같은데 거기에 모양도 맛도 깍두기와 아주 비슷한 걸 얹어먹으니 입맛이 보수적인 나로서는 오랜만에 밥 같은 밥을 먹을 수 있어 정말 행복했다.
우리가 묵었던 나시족 민박집... 옥천공원 정문 옆 골목길에 있다.
199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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