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는 못 돌아도 중화사부터 감통사까지는 갈 수 있지 않겠냐고 중화사를 지키는 아저씨에게 물으니 고개를 가로 흔든다. 감통사까지 못 가 해가 저물 거라나. 걸어서 하산하는 길은 감통사와 중화사쪽 말고는 없으니 중화사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 오늘이 섣달그믐이라 리프트도 세 시 전에 끝나니 중화봉 좌우에 있는 관음봉과 용천봉까지만 돌고 오라는 거다.
아니, 뻔히 발아래 동네를 굽어보며 가는 길인데 왜 하산길이 없겠어, 좀 험하다는 얘기겠지만 등산으로 잔뼈가 굵은 한국사람들이 그걸 두려워하랴. 욕심에 홀리지 말고 시간조절만 잘 하면 되겠지...
그래서 우리는 먼저 중화봉 오른쪽에 있는 관음봉 계곡의 타오시(桃溪)에 들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롱옌똥(龍眼洞), 펑옌똥(鳳眼洞), 헤이룽탄(黑龍潭), 치롱뉘츠(七龍女池)를 섭렵하며 네 시간 가량 걸었다. 혹시 길을 못 찾게 되면 정말 중화쓰까지 돌아가는 사태가 발생할까봐 펑옌똥을 지나서부터는 위따이루에서 이탈해 하산한 듯한 발자국이 보이는 곳마다 비닐봉지 등을 묶어 표시해놓았다.
위따이루는 대리국 시절 라싸로 순례를 떠나던 라마승들의 무수한 발자국이 닦아놓은 소로에 불과했으나 1980년 초에 중국정부가 일일이 돌(대리석!)을 깔아 오늘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 다(과연 위대한 중화인민공화국이로고).
왼쪽... 산비탈을 끼고 도는 저 길에서 한발만 이탈해도 황천길이다.
오른쪽.... 왼쪽 사진을 멀리서 찍어봤다. 벽에 붙은 네 사람... 보이시나요?
관광객들은 모두 얼하이호로 몰렸는지(원래 중국사람들은 등산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깊은 산중에는 우리뿐이다. 이 좋은 자연을 독차지하게 된 행운이 황송할 뿐.
봉우리의 앞면을 돌 때는 어제 얼하이 호수에 하얗게 부서지던 그 햇볕세례를 받고 골짜기로 들어갈 때는 숲의 향기가 그윽한 그늘로 들어가니 아들녀석 말이 냉온사우나보다 더 좋은 냉온삼림욕이라나. 가랑비처럼 날리는 송진의 세례를 받아 마치 에나멜 칠을 한 것처럼 반들거리는 진초록색 나뭇잎과 고산지대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 하늘을 찌르는 기암괴석과 발아래 아찔하게 펼쳐져 있는 깊은 계곡의 절경에 취해 12킬로 길을 정신없이 걷다 보니 해가 떨어져도 모를 지경.
맑은 계곡물이 원도 없이 흘러내리는 치롱뉘츠에서 다리를 쉬며 도시락을 까먹은 우리는 (참, 밥 먹을 데는 곳곳에 있으니 도시락 준비는 안 해도 된다) 마당바위에 길게 누워 햇살의 축복을 만끽하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고 아쉬움을 접은 채 하산길로 들어섰다. 하산길은 경사가 급하고 잡풀이 시야를 가로막아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사람들 말처럼 몹시 위험하지도 않았다.
헤이룽탄 가는 길에 만나 동행이 된 일본 청년은 원래 왕복 리프트표를 샀다는데 우리 일행의 즐거운 분위기에 홀렸는지 제 갈길로 안 가고 계속 따라온다. 북경 마쓰시다 계열회사에서 일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데 한마디로 예쁘장한 존 레논이다. 갈대가 얼굴을 할퀴고 흙길이 만드는 먼지를 뒤집어쓰면서도 연신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
능력 있는 등반대장(남편)이 앞장서서 길을 찾으니 1시간여 만에 거친 숲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아래로는 대리석을 파내느라고 황폐해진 평원인데 여기를 빠져 나오는 데도 족히 30분 이상 소비했다. (이 길이 옥대의 유일한 티랄까)
샤관 얼하이 호수변의
백족마을... 멀리 보이는 것이 창산 자락이다.
샤관으로 돌아오니 거리는 온통 구정설을 맞아 축제분위기다. 아직 어둡지도 않았는데 곳곳에서 폭죽을 쏘고 야단났다. 갑자기 내일 아침 리장 가는 버스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 호텔 프런트에 물어보니 아니나 다를까 리장 가는 버스는 모레나 있을 거라고 한다.
이걸 어쩌나 허둥지둥 버스터미널로 뛰는데 한 상점 칠판에 내일 아침 출발하는 중빠 시간이 적혀 있다(일종의 자가용 영업). 얼씨구나 쫓아가 1인당 10원씩 더 주겠다고 하니 내일 아침 8시에 오란다.
안심하고 저녁을 먹으러 나갔는데 이건 또 뭐야, 식당들이 몽땅 문을 닫았다. 호텔 식당조차 주방장이 설 쇠러 집에 갔다고 당직 아가씨들끼리 직접 밥을 해먹고 있다. 너무 배가 고파 뺏어라도 먹고 싶었지만 꾹 참을 수밖에... 시내를 뒤져 간신히 길거리 식당 하나를 찾아 주린 배를 채우고 내일 먹을 봉지빵과 두유를 구해 돌아왔다.
거리는 이미 전쟁상태에 돌입하여 대포에 따발총에 권총에 완전히 공포의 도가니. 어쨌거나 우리는 새벽부터 시작된 강행군에 젖은솜이 된 몸을 침대에 던지고 꿈나라로 직행.
1999.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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