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국

샹그릴라 답사기 5 - 내 생애 가장 길었던 망캉의 밤

張萬玉 2006. 1. 19. 09:12

장거리버스 터미널이라고 해야 할지 호텔 마당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리는 곳에 내려주고 길촌씨는 떠났다. 듣기로 망캉에서 鹽井 가는 버스편이 드물다던데, 혹시 대중교통편이 여의치 않으면 차량 수배하는 걸 좀 도와달라고 부탁해뒀지만 표파는 곳(이라고 해봐야 수위실 같은 방 하나... 아래 사진에 파란 빵차의 오른쪽)에 아무도 없고 주차장조차 텅 비어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내야 했다. 우리의 희망사항은 아직 정오도 안 되었으니 옌징을 거쳐 밤늦게라도 더친까지 차량편이 있기만 하면 편승해서 가고 (꿈도 야무지지... 나중에 그 길을 가보니 위험천만한 발상이었다) 안되면 옌징에서 묵더라도 더친 쪽으로 한발 더 가까이 가고 싶은 것이었다.

그러나 길이라는 게 어디 사람 마음대로 늘였다 줄였다 할 수 있는 것이냐... 옌징까지는 세 시간이면 충분하지만 더친까지는 다시 험산준령을 헤쳐가는 예닐곱시간 길이다.

 

 

파란 빵차 서 있는 곳이 터미널 입구이자 이 동네 최고급인 캉성빈관 입구. 

오른쪽 옆 건물이 우리가 점심을 먹은 식당이다. 

 

30분 정도 죽치고 기다리니 표 파는 사람(이라는 사람)이 왔는데 터미널 직원이 아니라 모객을 하여 교통편을 알선해주는 사람처럼 보였다. 어쨌든 이 양반 얘기가 표는 살 필요는 없고 내일 아침 8시에 여기로 오면 옌징 가는 버스편을 태워주겠단다. 웬지 미덥지가 않아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더친까지 간다는 트럭 기사가 나타나, 30분 후에 떠날 테니 같이 간다면 두 사람 100원에 데려다주겠다고 한다. 혹해서 그럴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것도 결국 오늘밤 옌징에서 자고 내일 더친에 도착한다는 얘기..... 됐네요, 이왕 내일 저녁에 도착하는 거라면 내일 대중교통 타고가죠 뭐.

원래 망캉에서 더친까지 대중교통편이 하루 한두편씩은 있는데 지금이 겨울이고 연말이라 오가는 사람이 끊겨 이틀 내지 사흘에 한번 뜨는 거란다. 동네가 한가로워 보이긴 하지만... 대단히 유연한 fuzzy 시스템.. ㅎㅎ  

 

 

겉만 번지르르한 캉성빈관

 

에어컨이 나온다고 150원 받는다는 걸 안에 들어가 시설을 보고 부득부득 20% 할인을 받았다.

할인 안 받았으면 정말 억울할 뻔했다. 이 동네는 겨울이면 종종 수도관이 얼어터지기 때문에 아예 상수도를 잠가버려 온수는 고사하고 냉수조차 안 나온다. 욕실에 물 한동이 길어다놓고 화장실 사용하고 나서도 한 바가지 퍼부어야 하고 세수를 하려면 1층까지 내려가 더운물 한 대야 받아다 써야 한다. 그런 정황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몰라도 복무원 아가씨들은 여기가 제일 좋은 호텔이라고 엄청 뻐기면서 목에 힘준다. 프런트 비워놓고 당직실에서 카드 치다가 필요해서 부르면 못마땅한 얼굴로 '왜 또오?' 하는 얼굴로 내다본다.     

 

짐 내려놓고 터미널 옆 茶馬古道 식당에서 국수 한그릇으로 점심을 때운 뒤 슬슬 동네구경...

집 떠난 지 며칠 되어 우리 모습도 솔찬히 꾀죄죄할 텐데 자꾸만 구걸하는 사람들이 따라다녀 좀 짜증이 났다. 주로 승려복장을 한 사람들인데 아무리 봐도 사원 소속 승려 같지도 않은 노숙자 몰골이다. 보아하니 여기는 승려들이 존경을 받는 동네 같아서 함부로 거절하기가 좀 그런데, 거기다 구걸하는 방법도 '짜시더레!' (吉祥如意) 하고 덕담을 던지며 손을 내미는 방식이니.... 

처음엔 1원으로 시작했다가 다음엔 5角, 1角... 그러다가 꾀를 냈다. "어, 당신 아까 내가 줬던 사람이잖아" 하니 순순히 물러나더군... 이후 그 방법 짭짤하게 써먹었다. 구걸하는 사람들도 점잖기에 이 꾀가 통했겠지?    

 

 

이 마을 중심부에 있는 라마사원 웨이셔쓰(글씨는 모른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최소 30명 이상이 늘 절 주위를 돌고 있다. 두 시에 봤던 사람들을 다섯시에도 본다. 경통을 돌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는 방법으로, 도는 방향을 거슬러 돌면 눈총을 받는다.

 

 

보라, 저 뚜렷한 빛과 그림자의 공존을....이것이 이 마을의 가장 선명한 인상이다. 

 

오른쪽에 사람들이 모여 들여다보고 있는 것은 사원 지붕에서 까불다 떨어져 다리를 다친 개...

한 아저씨가 부러진 다리를 수습하고 양지바른 곳에 눕혀주었다. 이곳에선 개, 돼지, 양들이 사람들과 생활공간을 함께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가 특별히 돈독한 것 같다.

 

 

장족 패션의 특징은 외투 오른쪽 팔을 빼어 아래로 늘어뜨리는 것.

왜 그럴까? 경통 돌리기 좋으라고?

 

예전에 주자이꺼우(구채구)와 리지앙에서 보았던 장족(그리고 그들의 패션)과 망캉에서 만난 장족들의 모습은 너무나 다르다. 큰 귀걸이와 큰 목걸이, 색실을 땋아 두른 머리띠는 여전하지만 걸친 옷들은 선명한 인디언 칼라가 아니라 우중충한 고동색 일색... 게다가 자외선에 시달린 피부와 자주 감지 못해 철사처럼 얽힌 머리 모양새까지...  아마 망캉 살던 장족들이 그 복장 그대로 도시에 나오면 '아름다운 소수민족의 문화' 대접은 커녕 거지 취급 받기가 십상일 것이다. 

누구라도 이 동네에서 살다 보면 비슷해지겠지. 영하 10도 아래로 내려가는 날씨에 불끼 없는 집에서 찬물로 빨래하고 세수하기가 어디 쉽겠나? 사실 이 척박한 삶의 조건 속에서 깨끗한 피부와 모발을 간직한다는 것이 무슨 대수겠나.

 

허나 날이 갈수록 사납게 파고들어오는 바깥세상의 문화는 분명히 이들의 자존감을 훼손하고 상대적인 박탈감과 소외감을 심화시킬 터.... 어차피 '그들만의 천국' 문을 열어젖히고 똑같은 중국공민으로 만들었으면 중국공민으로서 받아야 할 대접도 응당 챙겨야 할 텐데...  서부대개발의 길은 아직도 멀고 도도하기만 하다.     

 

 

사원 뒤쪽 야트막한 언덕에 올라앉아 해바라기 중... 사원 뒤 야산 꼭대기 오색깃발 걸린 쪽에 조장터가 있다는데 감히 올라가보지 못했다.

 

 

사원 마당 우물 앞에서 놀던 아이들

 

사진 찍어달라고 조르길래 '인물사진 마음놓고 한장 찍어보겠군...' 싶어 속으론 좋았지만 '찍어봐야 너희에게 줄 방법이 없는데?' 했더니 요 깜찍한 녀석들... 인화하는 곳을 가르쳐주면서 저녁에 다시 만나잔다. 어느 관광객인가로부터 배운 솜씨다.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어떻게 변해갈까. 바깥세상과 차단되어 살아온 부모세대와는 다르게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에서 큰 변화를 겪을 텐데.. 과연 어떻게 자신들의 문화와 종교를 이어갈까...

 

 

시내 중심 번화가. 평일 대낮에 거리에서 해바라기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허나 누가 이들을 게으르다 한심하다 흉볼 수 있을까.

 

 

혹시 한 가족에 한 사람쯤은 스님이 아닐까?

(정말 종교는 삶의 구원이 아니라 아편인지도 모른다)

 

 

레저 센터(休閑中心)라니.... 이 동네에도 발마사지 집이 필요한가?

(주체가 배제된 개방은 오히려 개방의 당사자들을 노예로 전락시킬 뿐...) 

 

 

여기가 여행자들이 주로 모이는 사거리.

민정복리초대소 건너편 길 양쪽으로 피씨방, 제과점, 사진인화점 등이 옹색하게 들어서 있다. 

 

서너시간쯤 동네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자꾸 속이 울렁거린다. 머리도 비잉 돌고.... 캉띵에서 느끼던 증세보다 조금 더 심각한 것 같다. 해가 기울면서 찬바람은 파카 속으로 사정없이 파고들고... 이제 그만 쉬어야겠다 생각하니 저녁 먹을 생각조차 싹 가실 정도로 갑자기 체력이 떨어진다. 서둘러 숙소로 돌아가 더운물 얻어다 얼굴과 발만 간신히 씻고 체력을 보강하기 위해 초저녁부터 겨울 곰 동면 모드. 

 

얼마나 잤을까. 웩웩거리는 소리에 깨어 보니 아들넘은 화장실에서 토하고 있고 내 가슴은 쇳덩

어리가 내리누르는 듯 답답하다. 아, 심각하네....에어컨을 틀어놓으면 산소가 더 부족할 것 같아 추워도 에어컨을 끄려고 몸을 일으켜 리모콘을 찾는데 그 작은 동작 조금 취했다고 숨이 턱턱 막힌다. 클났다!!

초저녁 잠을 잤으니 잠자기는 다 글렀고, 그렇다고 움직이자니 어지럽고 춥고....

아들넘은 체한 것 같다고 눕지도 못하고 앉지도 못하고 괴로워한다. 나도 호흡곤란을 이기기 위해 연신 심호흡을 하면서 어떻게 이 긴 밤을 버텨야 하나 아득할 뿐이다.

 

아, 정말 길고 긴 밤.... 예전에 학원비 저렴한 영어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동짓달 긴긴밤 주차장에서 신문지 깔고 날밤을 새운 적이 있다. 훗날 학교에서 영작문 숙제를 할 때 'The longest night in my life"라는 제목을 달아 수필의 소재로 삼은 적이 있는데 오늘 경험하고 있는 이 밤은 그때보다 훨씬 긴 것 같다. 아니 언제 깨어날지 알 수 없는 악몽 같았다고나 할까.

 

열 두 시에 시계 한번 보고, 두 시에 시계 한번 보고, 네 시에 시계 한번 보고... 그러다 살풋 잠이 들었는지 소스라쳐 깨어 보니 여섯시..... 조금 더 개기다가 출발시간 8시에 맞추기 위하여 일어나 세수고 뭐고 다 생략... 뜨거운 차 한잔으로 정신을 깨운 뒤 배낭을 꾸린다. 한 시라도 빨리 이 무서운 도시를 벗어나겠다는 일념으로....

 

앗, 그런데!!

파카가 없어졌다. 이런 황당!

추운날 밖에다 파카를 벗어놓고 들어오지는 않았을 텐데.... 옷장에 걸어놓은 파카가 없다. 밤새 누가 들어왔었나? 그것도 말이 안 되고.... 호흡곤란을 가누며 배낭 다 털어보고 탁자 밑 침대 밑까지 뒤져봐도 없다. 귀신이 곡할 노릇일쎄.. 어디 잃어버릴 게 없어 단벌외투를 잃어버리다니.. 

허나 내복바람으로라도 떠나야 할 지경이니 일단 스웨터 두 개 껴입고 체크아웃.      

 

벌벌 떨며 터미널 입구로 가니 버스는 커녕 여덟시까지 나오라던 표파는 양반(처럼 보이는 양반)도 안 보인다. 진짜 재밌는 동네군.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꿋꿋하게 차선책을 찾아나서는 장여사... 옌징으로 돌아가는 빵차와 함께 그 동네 가는 일행까지 발견하고 1인당 30원에 흥정하여 망캉을 벗어나는 데 성공한다. 

 

 

살얼음이 낀 동네 도랑을 지나더니 다시 빵차는 산으로 산으로...

그런데 이 동네부터는 사뭇 경치가 장엄하다. 홍라산 계곡이라고 했던가?

초입에는 시뻘건 바위산으로 압도하다가 점점 침엽수림으로 바뀌며 마치 우루무치의 천지같은 비경을 연출하더니 마침내 신비스러운 설산 봉우리가... 눈 쌓인 길을 밟으며 조심조심 돌아 내려오니 녹색 강물에 녹색 차밭이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진다.(남들과 함께 타고가는 차라 중간에 못 세워 사진을 거의 건지지 못했다. 궁금하신 분은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시도록.... )

 

 

여기가 옌징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는 곳).

 

그냥 길가 어느 식당 앞인데 더친 가는 버스 갈아타는 곳 다왔다면서 내리란다. 여기서 내렸다가 더친으로 데려다 줄 버스가 오지 않으면 어떡하나 좀 불안했지만 내리라는데 우째...

옌징이라는 마을은 몇달 전 KBS 스페셜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취재했던 곳이다. 운남성에서 티벳으로 가는 길의 첫마을이자 아직도 전통적으로 붉은 암염을 생산하는 곳, 만든 소금을 말에 실어 열흘 산길을 걸어서 팔러 나온다는 읍내가 아마도 이 근처 어디일 것이다. 나의 호기심을 매우 자극하는 동네지만 일행이 있고 일정이 있으니 무턱대고 동네 아래로 내려갈 순 없고...

 

식당 뒤 숲으로 들어가 사납게 짖어대는 흑곰처럼 생긴 티벳 개(이거 다른 지역에는 드문... 무지 비싼 개라던데...)와 마주보며 볼일을 본 뒤 볶음밥 하나 시켜 둘이 나눠먹고 비상으로 가지고 다니던 커피믹스 하나 털어마시고... 그러고 나니 좀 여유가 생긴다. 아마 티벳지역을 벗어나며 사뭇 따뜻해진 햇볕이 웅크린 내 마음을 서서히 열어주었을 것이다.

 

20분 정도 기다려 昌都에서 오는 버스에 올라타니 모든 근심걱정이 일순 사라지며 졸음이 몰려온다. 이제 다섯 시간 후면 더친 도착... 그 이후 여정에 대해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겠지. 인정하기는 싫지만 내가 달려온 지금까지의 길은 더친 이후를 위한 건지도 모른다. 아무렴 어때? 어쨌든 난 오늘 저녁 메리 설산 아래서 잔다!!             

 

 

운남성 구간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 

초록빛 고운 계단식 논밭에 따스한 봄볕이 깃들어 무척이나 행복해 보이는 마을...

 

 

하교 후 집으로 데려다 줄 경운기를 기다리고 있는 나시족 어린이들.

중국사람들을 아이들을 寶貝라고 한다. 비유가 아니라 호칭이다. 가정의 희망, 나라의 희망...

이 아이들은 자라서 염정마을의 희망이 되어줄 것인가? 

 

 

마침내 산구비 아래 움푹 들어간 곳에 오롯이 자리잡은 더친 마을이 보인다.

 

 

더친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눈에 띄는 대로 파카 하나 사입고(100원 ^^ ) 택시 잡아타고 우리가 달려온 길을 되짚어 페이라이쓰(飛來寺)로 간다. 쭝띠엔 쪽에서 온다면 모를까 옌징 방향에서 버스를 타고 왔다면 더친까지 가지 말고 중간에 (관망대?)에서 세워달라고 하면 되는 것을.... 

 

 

인터넷에서 본 대로 梅里雪山山庄에 체크인. 마침 손님이 별로 없어 매리설산의 일출과 일몰을 방 안에서 지켜볼 수 있는 이층 맨 왼쪽방에 들 수 있었다. 120원... 산장 치고는 조금 비싸지만 에어컨, 온수, 전기장판에 깨끗한 이부자리, 게다가 훌륭한 전망까지....대만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