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취업소동 2

張萬玉 2006. 4. 5. 10:38

조짐이 심상찮다. 익숙한 이 감각....

 

상해한국학교에서 가르치던 1999년 가을이었다.

감기 끝이라 목이 잠기고 아프던 중 갑자기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애를 써서 소리를 내면 마치 동굴 속에서 울려나오는 것 같은 무시무시한 허스키... 옆 사람이나 간신히 들을 정도로...

병원에 가 정밀검사를 했더니 성대에 염증이 생겼고, 그보다 아마도 전에 생긴 것 같은데 결절이 있으니 근본적으로는 수술을 받는 게 좋겠다고 한다. 

 

전에 생긴 결절이라고?

그렇다. 1986년 봄이었지.(7080회고록을 쓰다 보면 그 얘기가 나올 것이다.) 일주일 정도 목소리가 전혀 나오지 않아 고생한 적이 있다. 그땐 병원에 가볼 생각도 못한 채 그냥저냥 회복되었지만 그 이후로 확실히 음색이 변해버렸다. 

 

어쨌든 의사는 이대로 계속 목을 쓰다 잘못되면 염증이 심해져 후두암에 걸릴 수도 있으니 목을 쓰는 일은 삼가는 게 좋겠다고 한다. 할 수 없이 후임 교사를 구하는 동안 작은 칠판을 들고다니면서 수업을 했고 어쩌다 급한 성질에 한 마디 하면 아이들은 재밌다고 흉내를 냈다.

학교를 그만둔 뒤 수술도 고려했지만 성대수술은 잘 해야 본전이라는 말도 있어서 망설이다 또 그냥저냥 회복되고... 그 후로는 목소리 별로 쓸 일이 없으니 목소리 사건은 또 그냥저냥 나의 뇌리에서 사라져갔던 것이다.

학원에 나가기로 하면서 그 문제가 생각나긴 했지만 한 반에 8명 수업이라고 해서 무에 그리 목청을 쓸일 있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나보다. 아니면 내가 첫수업이라 흥분을 했던 걸까?

 

혹시나 하는 걱정에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내고 일어나니... 역시...

목소리가 안 나온다. 

새벽 한 시 다 되어 돌아오는 게 달갑진 않았겠지만 내가 워낙 무료해하니 잘 해보라고 격려해주던 남편도 야단이 났다. 목 괜찮은지 걱정하니까 괜찮다고 큰소리 치더니 거 보라고... 당장 사표 안 내면 자기라도 전화하겠단다. 안 그래도 이 목소리 가지고는 당장 오늘 수업도 못하게 생겼다.

            

휴~ 어떻게 생긴 일자린데...

전문성이 있어도 50 바라보는 여자가 일자리 찾기가 얼마나 어려운데...   

선생님 바뀐지 하루 만에 또 선생님이 바뀌면 어떡해... 아이들이 학부모들이 뭐랄까...

참, 차도 한 대 뺐는데....서너달 월급이면 끝나는 것을 완전히 쌩으로 900만원 깨물어먹네... 

이제 난 뭐하고 살지?

선생을 포함해서, 내가 젤 잘 할 수 있는 게 떠드는 건데... 그걸 포기하면 난 날개부러진 새 꼴.... 이제 직업생활은 포기해야 하나?

(속상함이 오버하니 직업생활이 아니라 아예 사회생활까지 끝장난 것 같은 참담한 기분..ㅜ.ㅜ)

 

어찌됐든 일찍 학원에 가서 사정얘기를 했다. 학원측에서도 내 상태를 보더니 더 잡지 못하고... 원래 오래된 병이었다고 하니 '좀 쉬면서 경과를 보자'는 소리도 못한다.

그렇게 단 하루만의 취업은 '소동'으로 끝났다. 간만에 엔돌핀이 팍팍 도는 격렬한 경험이었으나 그만큼 쓰라림은 더 컸다. 마음 못잡고 비가 오락가락하는 거리를 종일 쏘다녔으니...

 

내 쓰린 마음을 아는동 모르는동.. 오늘 아침에 천진난만한 마티즈가 도착했다.

야, 나 너 탈일 없는데....

그래도 이놈을 벗 삼으면 내 쓰린 마음 좀 달래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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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덧붙이는  '일일영어교사'의 소감 한 마디.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영어공부 절대 하지마라'라는 책 제목이 생각난다.

내가 한결같이 주장하는 바(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근거한 주장이니 틀릴 수도 있다), 영어공부는 기본을 다지는 데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여해야 소용이 있다.(일반적으로 말하자면 중학과정 정도까지) 기본이 없으면 진도 많이 나가고, 높은 교재 사용하고, 어휘 많이 외우도록 push해봐야.... 시간 지나면 말짱 꽝이다. 한 단어를 배워도 여러 문장 속에서 제대로 부릴 수 있게 배워야 하고 한 문장을 배워도 자유자재로 대치연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되어야 그 위에 덧붙여지는 풍부한 표현들을 더 효율적으로 자신있게 장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부모들은 애들 수준은 고려 안 하고 진도 빨리 나가고 수준 높은 교재를 쓰는 학원이나 과외가 잘하고 있는 줄 안다. 학원도 학부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자꾸 수준을 상향조정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이들은 어디에다 써먹을지도 모르는 어휘의 늪 속에서 허우적대면서도 (그렇게 많이 시간을 들여 공부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못한다는 열패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