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게 먹는 계절이 돌아왔다.
눈 주변에 검은 털이 듬뿍 나 있어 얼핏 보면 검은 진흙이 두껍게 묻어 있는 것 같고 검은 녹색갑옷을 입은 몸은 굵은 새끼줄에 꽁꽁 묶여 힘이 든지 부글부글 거품을 잔뜩 머금은 채 자기 잡아먹을 사람들을 잔뜩 노려보고 있다. 이것이 시장에 나와 있는 상해명물 大閘蟹의 몰골.
상해 온 첫해에는 이놈을 주로 음식점에서 먹었다(중국 처음 왔다고 주로 대접을 받았으니 그게 얼마나 비싼 줄도 모르고) "상해명물이라더니 정말 맛있더라구요. 오늘도 그거 먹어요"하면서 냠냠 짭짭 맛있게도 먹어댔는데, 한참 지나 한턱 쏠 기회가 있어 그때 계산서를 보니 그날 먹은 큼지막한 놈 한 마리가 80원꼴....
그 다음부터는 (접대 목적 외에는) 당연히 내 손으로 사다가 쪄먹는다. 시장에서 구입하면 80원에 아주 큰 놈 네 마리 정도 살 수 있다. (시장마다 가격이 다르고, 약간 작은 것은 더 싸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생강채를 깔고 깨끗이 씻어 20분 정도 찌면
된다.
중요한 건 좀 찝찝해도 먹기 전까지 새끼줄을 풀면 안 된다는 점이다.
처음에 뭘 모르고 씻으려고 한 녀석의 새끼줄을 풀었다가
온 가족이 동원되어 체포작전을 펼치느라 소동이 나기도 했다. 씻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뚜껑이 무거운 냄비에 넣어 열을 가한 후에도 5분
가까이는 뚜껑을 손으로 누르고 있어야 한다. 정말 무서운 놈이다.
흐르는 물에 씻는 것으로 부족하면 솔 같은 것으로 배쪽을 닦아준다.
배가
둥그런 것은 암컷, 세모형은 수컷이다. (처음에 시장에 사러 갔을 때는 암수컷을 구별할 줄 모르는 데다 雌的, 雄的라는 말도 몰라서 男的 말고
女的 달라고 하여 시장사람들을 웃기기도 했다).
쪄놓으면 게는 먹음직한 빨간 색으로 변한다. 가운데를 쩌억 뽀개면 윤기흐르는 노오란 알이 후짐하게 들어있다. 맛은 계란노른자보다 더 진한 단백질 맛이다.
1년에 한번 마음먹고 쪄주는 이 별미를 남편은 안 먹는다. 노동에 비해 소득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처음 몇 번은 내가 몇점 발라주기도 했지만 이젠 먹든지 말든지 상관 안 하고 아들놈이랑 둘이서 끝까지 쪽쪽 빨아먹는다. 좋은 음식을 먹으려면 그만한 수고는 바쳐야 한다는 중국사람들의 생각에 하모, 하모.... 하면서....
(언젠가 한번 4성급 호텔에서 이놈을 먹었는데 고거 몇 점 먹으라고 갖추어준 도구가 자그마치 일곱 개. 젓가락, 방망이, 받침대, 집게, 살 파먹는 작은 숟가락, 가위, 대나무칼(긁어내라고?). 복무원 아가씨가 가르쳐주는 대로 도구들을 한번 사용해봤지만 역시 성질 급한 한국사람들에게는 잘 맞지 않는 식사풍속인 듯했다).
이렇게 통째로 쪄먹는 것 말고 大閘蟹는 다른 요리에도 쓰이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南翔小龍包(돼지고기와 게살로 만든 완자를 게 삶은 국물과 함께 속에 넣은 작은 만두)와 게 알을 연두부와 함께 요리한 蟹紛豆腐를 들 수 있다. 南翔小龍包 안에 들어가는 완자를 아기주먹 만하게 빚어 따끈한 국물에 청경채와 함께 끓여낸 獅子頭 역시 게살을 이용한 요리.
상하이의 명소 예원 앞 남상만두점에서 게살이 들어간 만두인 南翔小龍包
大閘蟹는 다리쪽에서 쪽 뽑아먹는 흰살조차도 맛있지만 역시 최고로 치는 부분은 알이다. 하지만 이 워낙 재료들이 귀하다 보니 게살 대신 桂魚(쏘가리)로 게살을 대신하고 달걀노른자로 알을 대신한다고도 한다. 음식맛 구별하는 데 귀재인 중국인들도 다른 재료와 어울리면 잘 모른다는 얘기다.
원래 大閘蟹는 소주의 양청후(陽澄湖)와 가흥의 난후(南湖)에서 잡히는 것이 유명하다지만 지금은 유통망이
발달하여 다른 곳에서 잡은 大閘蟹들도 양청후 부근에서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니 이제 상해, 소주 등 게가 많이 잡히는 江南水鄕 뿐만 아니라 중국
전국에서도 이 大閘蟹를 손쉽게 맛볼 수 있게 되었다.
음력 9월은 알밴 大閘蟹 먹는 계절. 오늘 저녁 소흥주 곁들인 大閘蟹로 상해의 가을에 푹 빠져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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