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어스름이 들 무렵이면 우리 아파트 담장에 늘 나타나는 盜版(해적판) 장사 아저씨...
퇴근하는 나를 향해 ‘스웨이다오'(실미도)를 외치며 DVD 대여섯장을 손에 들고 흔들어댄다.
한 번도 거기서 DVD를 사본 적이 없는데 남들 살 때 옆에서 얼쩡거리는 걸 보고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걸 안 다음에는 눈에 띌 때마다 열심히 불러댄다.
영화 본 지도 오래 됐다 싶어 못이기는 척 가서 “실미도”, “올드보이”(엄청 빠르네!). “홍반장”, “야생동물보호구역”, “Troy", "Love Actually", 그리고 어렵게 찾아낸 ”洗澡“를 골랐다.
까르프에 한국 드라마가 쫙 깔려 있다. 한 장에 13원(우리 돈으로 1500원 정도).
최지우와 송승헌이 나온 저 영화 원제목이 뭔지는 나도 모른다. 번역하면 '소식'... 뭐 그런 건데...
욕심에 사기는 샀으되 이걸 다 언제 본다냐! 옛날에 사놓은 “올인”과 “반지제왕” 등 시리즈물도 포장도 안 뜯은 채 고이 모셔져 있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다 인터넷에 코가 꿰인 덕분인 듯...
얼마 전 한국 TV에서 연속적으로 중국의 한국영화 해적판 범람현장을 집중고발한 적이 있었다. 조잡한 포장에 더빙에 화질에.... 우리의 “자랑스런” 영화들이 저질품으로 변하여 까르프에 리어카에 진열된 장면을 아마 한국에서 보았다면.... “중국넘들 넘하네!!” 하면서 분개했을까? 그 "중국넘들" 속에 한국인인 내가 끼어 있음에 대해 "한국에 사는 나"는 뭐라고 욕할까.
내 마음을 깻마보라구?
중국에서 베이비 복스 모르면 간첩..^^
하지만 ... 지금 중국에서 어디 정판 사서 보겠더냐.... 내 주변의 애국적인(!) 인사들 중에서도 100원이 넘는 거금을 주고 정판 사서 보는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이런 얘기 하면 너무 치졸한가?).
찔리는 마음을 억누르려고 단호한 동작으로 포장을 뜯고 실미도를 DVD로 쑥 밀어넣는다.
'그 시절에(~2011) > 上海通信(舊)'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은 모기 타령 (0) | 2004.06.22 |
---|---|
노래로 불러보는 해뜰날 (0) | 2004.06.19 |
발마사지가 있는 풍경 (0) | 2004.05.19 |
상해시 짝퉁이 名所 -- 西方明珠 (0) | 2004.05.14 |
소박한 호강 (0) | 2004.05.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