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上海通信(舊)

소박한 호강

張萬玉 2004. 5. 10. 15:04

이 글 보면 다들 웃으시겠죠?

저 어제 호강 했슴다. 호강이라니.... 궁금하시져?
남편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한국식품 전문매장에 가서 장을 봐왔답니다.

남편이 일요일이라고 집에 있어도 늘 피곤하거나 바쁜 상태고 게다가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게 쇼핑이라니, 차량 덕 볼 생각 애저녁에 접고 일주일에 한번 봐오는 무거운 장꺼리를 그저 혼자 이고지고 다니는 신세거든요. 젊은 내외가 함께 장을 보는 (그것도 물건을 살 때 내외간에 의논해가며 물건을 고르는) 것을 보면 나하고는 거리가 먼 부러운 그림으로 간주했었죠.

하하... 근데 오늘은 웬 바람이 불었는지, "장 볼 거 있어?" 하고 묻네요.. 아이고 황송해라!!

 

그뿐  아닙니다.

거기서 혼자 장보러온 내 친구를 보더니 짐 무겁다고 선뜻 집까지 모셔다 준다잖습니까.

친구들과 만나 놀다가 헤어질 때 되면 남편 불러내 모셔가라 하고 친구들까지 집에 모셔다주는 친구들 덕은 여러 번 봤지만... 과부처럼 살던 내게도 이런 날이 올 줄이야...

친구 앞에서는 당연한 듯이 굴었지만 월매나 어깨가 으쓱하던지... 뽀뽀 백 번 해주고 싶을 정도였답니다.  

 

뭘 그 정도 가지고 그러느냐구요?
울 남편을 아신다면 아마 제 심정 이해하시고도 남을 겁니다.
일단 가정에 내어줄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구요.
그것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건... 일에 미쳐있는 사람이거든요.
성취에 살고 의무에 죽는... 짬이 나도 잡다한 일에 정신을 내어주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집안의 소사는 자기와 상관없다고 여기고 살아온 우리나라 전형적인 50대 남자....

 

내게는 즐거움이 되는 일들이 이이에게 번거로운 일이 되어버린다면... 어찌 그로써 괴로움을 끼치겠습니까. 소소하게는 아니지만 크게 보면 저도 양처에 속하는 사람이거든요. 헤헤...

 

자랑할 일 하나 더 있네요.
친구 보내주고 돌아오는 길에 며칠 전 열쇠를 받은 아파트에까지 납시었답니다.

회사일 외로 번거로운 일 벌리는 거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 아파트 사면 어떻겠냐 물어볼 때도 "몰라, 알아서 해"
나 혼자 가서 구매하고 등기하고
입주할 때가 되어 우리가 살까 팔까 물어볼 때도 "몰라, 알아서 해"
인테리어 어떻게 할까 물어볼 때도 "몰라, 알아서 해" 하던 양반이
오늘은 왠일로 구석구석 꼼꼼히 둘러보고 인테리어 할 때 주의할 점 일러주고

괜히 쓸데없는 데 돈 쓰지 말고 소박하게 하라고 잔소리도 한 마디 하고...
 
호강이 별겁니까.
짝퉁이지만 골프채도 사주고 골프칠 때 웬만하면 마누라 챙겨 델꼬가는 남편이지만 그거야 자기 좋아하는 일에 끌어들인 것이니 부부간에 당연한 것이고, 흠흠~
오히려 그런 것보다는 자기 시간을 내가 필요로 하는 일에 내어 주었다는 일이 제게는 진짜 호강으로 느껴지는 것이죠.

혼자 놀고 혼자 일 처리하는데 도가 튼 나도
가끔은 내가 과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싶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