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야간산행, 그대와 함께라면

張萬玉 2007. 6. 25. 07:46

요즘은 아침부터 쨍쨍이다 보니 어영부영하다 새벽 좋은 시간 놓치고, 해 기울면 가야지 하다가 어느새 날이 저물어 저녁시간 놓치고... 이러면서 산에 가는 걸음이 좀 뜸했는데, 엊저녁엔 웬일로 남편이 밝을 때 퇴근하길래 더 저물기 전에 산에 다녀오자고 서둘러 나섰다. 저녁 여섯 시 반.

쨍쨍하던 햇살이 가시고 나니 기온도 쾌적하고, 전날 흠뻑 내린 비 때문에 온산에 흙내와 풀내가 진동한다.

곧 날이 저물 듯하니 오늘은 가비얍게 산책코스.

 

산책코스라 함은 내가 평소에 혼자 다니는 왕복 한 시간 반의 보덕사 코스,

등산코스는 가족이 함께 가는 이벤트성 코스로, 삼성산 전망대에서 시흥계곡으로 빠지는 코스 (가끔은 나를 따돌리고 삼막사로 가버리기도 함), 

절충코스는 남편과 함께 가는 일요일의 평소코스로, 보덕사까지 함께 갔다가 나는 산책코스로 돌아오고 남편은 능선으로 올라가 용천암--제2야영장을 돌아내려와서.... 소나무숲에서 도킹하는 코스다.  

 

해는 기울었지만 그래도 여열이 남아 후텁지근할 줄 알았는데 배드민턴장 옆 살짝 오르막을 지나 수풀길로 들어서니 제법 선선하다. 굴곡도 별로 없고 시야를 가릴 정도로 수풀이 무성하여 한여름에도 한점의 햇빛도 허용치 않는 이 길은 내 산책코스 가운데 best 3 구간에 꼽힌다. 생각에 잠겨 걷기에도, 둘이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기에도 좋을 만큼 그윽하다.  

 

오솔길이 끝나는 약수터 삼거리에서 삼성산 천주교 유적지 쪽으로 방향을 틀어 산 아래 방향으로 약간 내려가 가끔 할머니들이 모여 찬송가를 소리높여 부르는 평상을 지나면 다시 서늘한 숲길.... 징검다리나 통나무가 놓인 얕은 실개천을 중간중간 건너주고, 내려갔다 올라가야 하는 제법 깊은 계곡을 지나면 또다시 평탄한 오솔길.... 이 오솔길들이야말로 나를 다시 산으로 불러내준 착한 넘들이다. 관절 약한 마누라가 산과의 인연을 포기할까봐 걱정되었던 최열정씨는 온산을 누벼 이 오솔길들을 찾아내고 한줄로 꿰어 한 시간 반짜리 산책코스를 개발해주었다. 고마운 줄 알면 꾀 부리지 말고 열심히 다닐 것.   

 

어느새 헬기장이다. 늘 땀에 젖은 동네청년들에 둘러싸여 있던 농구골대는 저물녁이라 홀로 서 있고 바로 이웃한 산우헬스도 한산하다. 늘 동네 아저씨들로 북적대어 철봉 한 자리 얻기도 어려운 곳인데 오늘은 눈치 안 보고 훌라후프니 윗몸일으키기 맘대로 해도 되겠다. 

나는 여기서 발길을 멈추기로 하고 남편은 땀좀 더 내고 오겠다고 능선을 향해 뛰어올라간다.

나도 윗몸일으키기로 땀좀 더 내고 이웃한 보덕사로 건너가 약수 한모금 마시고 나니.... 다 좋은데 모기란 놈이 땀냄새를 맡고 몰려드네 그려.

 

어느새 하늘이 컴컴해졌다. 돌아가려면 다시 50분 길인데 서둘러야겠네.

아무리 동네 산이라 길 잃을 염려는 없다지만 해가 완전히 져버리면 산속은 한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에 묻혀버리니 발길을 조심해야 한다. 희미하게나마 빛이 남아 있어 약수터 삼거리까지는 뛰다시피 돌파, 완전히 어둠에 갖혀버린 마지막 숲길에서는 한발 한발 조심 조심....

문득 10여년 전 지리산 종주할 때 해가 진 백무동 계곡을 기다시피 내려오던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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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 여름휴가 때였나보다. 차로 노고단까지 올라가 산장에서 저녁을 해먹고 잠시 눈을 붙인 뒤 새벽 세 시쯤 산행을 시작했다. 사방은 캄캄했지만 밤하늘엔 별빛이 찬란했고 사람들도 많았고 길도 좋아서 별로 위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도 뱀사골 근처에서 아침인가 점심인가를 먹었고... 

두어 시간 걷다가 큰 비를 만났다. 길도 미끄럽고 빗줄기가 거셀 때 바위 아래 숨고...

그러다 보니 다음날 새벽 천왕봉에 오르기 위해 장터목까지 가려던 계획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벽소령에서 멈춰 덜덜 떨며 텐트를 치고 버너불에 등산화 말리던 생각이 난다. 

 

이튿날은 날이 좋았다. 드넓은 세석산장에서 마음까지 다 풀어놓고 점심 해먹은 것까지는 좋았는데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올랐을 때는 이미 세 시 가까운 시간...

어제 비를 만나 고생했다고? 천만의 말씀, 우리의 시련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가장 짧은 코스인 백무동으로 내려간다지만 거기도 9Km 정도.... 만만치 않은 바윗길이다.

당시엔 나도 북한산 아래 살면서 불광동에서 비봉까지 자주 오르내리던 몸이라 산이 무섭지 않았고, 당시 중1이던 아들넘이야 한참 날고 기던 때니 등반대장 남편으로서는 하산명령을 내림에 있어 하등 망설일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아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 다음날이 남편의 휴가 마지막 날이니 그날밤엔 어찌됐든 산 아래로 내려가 있어야 했다.

 

꽃구경도 생략하고 부지런히 산을 내려갔지만.... 산을 다 내려가기 전에 날이 완전히 깜깜해져버렸다.

밝은날이면 불과 한 두 시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산속에서 멈출까만은 산속의 어둠은 절대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야영의 흔적이 남아 있는 터를 찾아 텐트를 쳤다.

저녁은 산 아래서 사먹을 요량으로 세석에서 남은 거 몽땅 털어 잡탕찌개를 끓였으니 먹을 것도 이미 바닥이 난 상태. 혹시나 해서 쌀봉지를 탈탈 털어보니 주름에 낀 쌀알이 반움큼.... 배낭 밑바닥에 깔려 살아남은 인스턴트 우거지국에 곡기랍시고 그거라도 보태어 우거지미음을 끓였는데 완전 꿀맛이다. 그렇게 허기를 속이고 곯아떨어졌는데.... 얼마나 잤을까.

 

"물 들어온다, 얼른 짐 싸!"

남편의 호령에 놀라 깨어보니 사방에 물소리가 요란하다. 자는 아들넘 깨워가지고 짐 꾸려 나와보니 그새 폭우가 한바탕 하고 갔는지 텐트 친 곳 옆으로 급한 물길이 모여들고 있다. 잠결에 굵은 빗소리를 듣고 혹시나 싶어 정찰을 나간 남편 아니었으면 일가족이 지리산 계곡에 수몰될 뻔 했다.

다시 쏟아지기 시작하는 빗발과 장막 같은 어둠 속에서 추위와 심란함에 벌벌 떠는 마누라와 아들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던 남편.... 그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으며 안전한 곳으로 텐트 옮겨 치고 젖은 자리 말끔하게 닦아준 뒤에, 이젠 안심해도 되니 더 자라며 자기는 텐트 주변에 도랑 파러 나간다. 

그 일로 남편은 내게 점수 좀 땄다. 그때 내게 안겨준 감동은 지금까지도 유통기한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

 

동 트자마자 상거지꼴을 하고 마을로 내려온 우리는 제일 처음 나타난 민박집 식당에서 뜨끈한 국밥 한그릇씩 먹고 고마운 민박집 아주머니의 호의로 뒷방에 들어가 늘어지게 잤다.

남편이 흔들어 깨우는 바람에 일어나보니 벌써 점심 때가 지났다. 그새 남편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가서 노고단에 주차해둔 차를 가지고 왔다. 딱 30분 눈붙였다나...가장의 책임감이란 게 참 무섭기도 하군.

피서 뒤 귀경길 차량으로 주차장이 된 고속도로에서 가다 서다... 갓길에 세워놓고 눈좀 붙이다.... 이튿날 새벽 네 시에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당시 나는 면허를 갓 따 도움도 못 되고.... 남편만 죽어났지. 

징그럽게 고달팠지만 가족간 팀웍의 소중함을 가슴 깊이 새겨준 값진 산행이었다.  

 

뱀발 하나..

오늘 산에서 내려와 집에 오는 길에 보도블럭을 베고 잠든 아저씨를 봤다.

술이 만땅 취해 있어서 잘못 건드렸다가 무슨 행패나 당하지 않을까 조심스러웠지만 암만해도 도로쪽으로 널브러진 다리가 차에 치이기 십상이라 남편더러 좀 깨워보라고 했다. 암만 흔들어도 인사불성이다. 할 수 없이 양 겨드랑이를 잡고 인도 쪽으로 끌어올렸다.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하고 있는데 그제서야 부시시 일어나는 아저씨.... 무슨일로 이 초저녁에 혼자 저 지경이 되도록 마셨을까.

어둠 속이라 해도 누군가와 동행이라면 헤쳐가기가 좀 나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