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작년 10월말... 순창군 장수복지과로부터 안내문이 날아왔다.
순창군 하고도 깊은 산골에 토지소유자가 최**씨(남편의 할아버지)로 되어 있는 임야 8430제곱미터(약 이천 평?)가 있는데 이 임야를 순창군에서 노인복지시설 부지로 매각하고자 한다. 그런데 최**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으니 최**씨 생전에 유일하게 생존해 있던 아들(시아버님)로부터 호주상속을 한 손자(남편)가 얼른 이 땅에 대한 소유권 이전등기를 한 다음에 순창군에 팔아달라... 이런 내용이었다.
아니, 일제 때 빚보증 선 게 잘못되어 순창군에서 군산으로 야반도주했다던 할아버지에게 산골 짜투리땅이나마 선산이 있었다니... http://blog.daum.net/corrymagic/1228323
정상적으로 진행하자면 이 껀은 소유자가 사망했기 때문에 법적 지분에 따라 상속 범위에 해당되는 사람들이 나누어 상속을 받아야 한다. 할아버지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과 셋째아들은 할아버지 생전에 사망을 했고 둘째아들(우리 시아버님)은 할아버지 사후 5년 뒤에 사망했다. 그 아랫대로 내려가보면 큰아들에게는 세 딸이 있고(그 중 하나는 사망했다) 셋째아들에게는 아들하나 딸 하나가, 둘째아들에게는 아들(남편)과 네 딸들이 있다. 일단 숫자만 세면 모두 아홉명이다.
이들을 모두 모아 상속절차를 진행하려면 번거롭고 시간도 많이 걸리니, 정부가 효율적인 사업의 진행을 위해 만든 '특조'와 '공고'(상속인들의 협의하에 대표로 한 사람이 소유권 이전신청을 하고 이 사실을 '공고'하여 일정기간 이의신청이 들어오지 않는다면 그대로 진행하는 방식)에 따라 소유권이전 과정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는 것이 군청 측의 요청. 남편은 자기 항렬에 생존해 있는 사촌을 포함한 형제자매들에게 모두 연락하여 고향에 선산을 공동으로 갖고 있으면 더 좋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 군청에서 요청하는 대로 진행한 뒤 똑같이 나누자고 했다.
남편이야 회사에 매인 몸이니 자유로운 이 몸이 파견되었다.
이왕 물좋고 산좋은 순창땅 행차니 놀기 좋아하는 만옥이는 출장을 빙자하여 하루쯤 묵으며 놀다올 요량으로 심심한 친구 하나 옆에 싣고 이게 웬 떡이냐 룰루랄라 길을 떠났겄다.
헌데 소유권 등기이전의 첫단계에서부터 돌부리에 걸렸다.
워낙 오랫동안 잊혀졌던 땅이라 이 토지가 최**씨 땅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동네사람들의 '보증서'가 필요한데, 1960년대초에 칠순노인으로 돌아가신 분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그래서 군에서는 그 동네에 거주하는 노인들 중 몇 명을 보증인으로 지정해놓고 그들 중 세 사람의 확인도장을 받아오란다.
뜻밖에 재밌겠네 하면서 주스 몇 병을 사들고 그 마을로 찾아간 만옥이... 보기좋게 헛물켜고 말았다.
처음 찾아간 집에서는 칠순노인이 완전히 딴소리를 하시길래 사정을 모르시는 줄 알고 30분도 넘게 정성껏 설명을 했는데(결국 '나는 못알아듣겠으니 읍내의 고某씨를 찾아가란 얘기였다) 두번째, 세번째 집을 방문한 뒤에 감을 잡았다.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껀은 읍내 사는 고某씨를 찾아가야만 해결될 문제라는 것을.... 문제의 고某씨와 통화를 하니 옛 땅들의 소유권 이전등기에 관해서는 자기가 다 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고 내일 아침에 만나잔다.
군청은 보증인 확인 절차가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걸 알고나 있는 것일까? 어차피 '보증인'이라고 지정된 인물들도 사실은 그 땅이 김씨 땅인지 최씨 땅인지 '보증'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인 건 그렇다 쳐도, 도장 하나 눌러주면 되는 일을 제3의 인물에게 위임하여 (그들 사이에 어떤 협의가 오고갔는지는 모르겠지만) 구전을 내게 하고.... 더군다나 이런 식의 '확인작업'이 한두껀도 아닐 텐데 동네 노인들의 이러한 '비협조' 상황을 군청이 모를까? 아예 처음부터 고某씨를 만나라고 힌트를 줄 일이지 오후 내내 이 동네 저 동네로 발품을 팔게 하느냐 말이지.
은근히 부아가 났지만 세상물정 어두운 촌로들에게 예로부터 '대서소'라는 게 있었다... 생각하며 넘어가기로 했다. 중요한 건 내일 고씨의 도움을 받아 오전중에 도장들을 다 받고 오후에 소유권 이전신청을 하여 내일중에 순조롭게 끝내는 일이지. 허나 어제 정황으로 보아 과연 내맘대로 진행이 될까 걱정이었다.
이튿날 이른 시각에 만난 고씨는 '꾼'이 아닐까 의심했던 예상과는 달리 어제 만났던 할아버지들이나 비슷해 보여 일단 마음이 놓였다. 헌데 이 할아버지 말쌈이, 자기가 도장 받는 것뿐 아니라 나머지 서류 챙겨서 소유권 신청 해주고 소유권 이전이 되면 등기까지 내줄테니 목도장 하나 파주고 가란다. 에궁, 만난 지 10분도 안 된 할아버지 어딜 믿고 등기까지?
'이왕 여기까지 내려왔으니 도장 받는 것만 도와주시면 제가 직접 하겠다'고 했더니 이 할아버지 왕삐지신다. 도장 받는 수고를 해주시니 구전은 따로 드리겠다고 해도 등기까지 맡기지 않을 꺼면 알아서 도장까지 받으라고 쌩 가버리실 태세다. 한참 실랑이를 하며 생각해보니 갖춰놓은 서류야 관청에서 누구나 다 뗄 수 있는 것이고 소유권 이전과 등기관련 절차를 짚어봐도 크게 잘못될 일도 없겠다 싶다. 남편에게 물어보려니 줄곧 통화중이네.
그냥 내 판단을 믿기로 하고 고씨 할아버지에게 서류를 넘겼다. 그러고도 못미더워 군청에 가서 고某씨의 존재를 알고 있는지 확인해봤더니 젊었을 적 면사무소에서 일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마을의 온갖 잡일을 다 해결해주는 읍내의 마당발이란다.
'에이, 무슨 문제 있겠나. 이제 등기 나오기 기다려 군청에 매각하면.... 와, 꽁돈 생기겠네!'
그리고는 룰루랄라 한나절을 인근 강천산에서 단풍놀이...
해가 바뀌고 세 달쯤 지나니 남편 명의로 등기가 완료된 등기부등본과 함께 순창군과의 매매계약을 대행해줄 테니 필요한 서류를 보내라는 고씨 할아버지의 우편물이 도착했고 순창군으로부터는 빨리 매매절차를 밟아달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이제야 뭐 고씨 할아버지 눈치볼 일 없겠고... 순창군청이 보내준 서류에 인감 날인을 함으로써 매매계약을 마쳤다. 곧 통장에 입금된 보상금 3372만원은 아홉형제의 통장에 각각 350만원씩 입금되었고 220만원은 그간의 수속비와 훗날 납부할 세금분으로 남겨졌다.
(계속됩니다. 내가 너무 자세히 쓰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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