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이 산이 아닌개벼...

張萬玉 2007. 9. 24. 19:40

닷새 간의 추석연휴가 동안 차롓상 차리는 것 외에 별 이벤트 없이 지나가는 게 아쉬워 오늘은 특별한 등산을 하기로 했다. 익숙한 삼성산을 떠나 20여 년 전 늘 오르내리던 북한산에 한번 가보기로 한 것이다.

지하철역까지 생겼다는데 어떻게 변했을지 옛동네도 궁금했지만, 요즘 삼성산 정상으로 해서 시흥계곡으로 내려오는 2시간 반 산행이 여삿일이 되다 보니 내심 자신감이 생겨, 이 정도면 다른 산에 살짝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기 때문에 내가 주동을 한 셈이다. 다른일이 바쁘다며 딴청 피우던 아들넘도 막판에 따라나섰다. 초등학교 시절 3년간 살았던 그동네가 궁금하긴 했던 모양이다.

 

서울이 많이 변하긴 했다지만 그 동네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 다니던 태권도장도 그대로, 약국과 수퍼마켓, 떡집도 그대로, '사우나'로 이름을 바꾸긴 했지만 목욕탕도 그대로, 좁고 복잡한 길도 그대로..... 다만, 마당도 있고 과일나무도 있었던 단독주택들이 이젠 대부분 연립주택으로 재건축되어 여유있던 동네 분위기가 적잖이 팍팍해보이는 게 좀 섭섭했다. 한 푼이라도 아쉬운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들로서 땅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겠지만.

 

1989년부터 3년간 우리가 살던 집. 동네 쌍동이 형들이 매일 놀러왔다. 

 

광명시에서 불광동까지 왕복 네 시간을 출퇴근하려니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 뒷바라지가 마음에 걸려

살던 집을 세놓고 이 집에 세를 얻었다. 건평 50여평에 감나무, 대추나무까지 있던 널찍한 집이었는데 비가 오면 구석구석 비가 샜다. 집주인에게 수리해달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으나 미적거리는 것이 암만해도 아예 헐어내고 새로 지을 생각이었나보다. 

      

이렇게 변해버렸네.... ㅜ.ㅜ

 

우리집뿐 아니라 우리 골목의 마당 넓던 집들이 다 마당 없는 삼층빌딩(!)으로 변해버렸다. 

하긴 바로 앞에 지하철역까지 생겼는데(6호선 독바위역) 이 정도밖에 안 변한 게 신기한 건지도 모르지.

 

이 동네도 창문을 열면 산이 보였다.

 

이 집을 얻을 때 남편과 함께 복덕방에 왔는데 이사는 혼자 하게 됐다. 

전에 살던 집의 두 배도 넘는 휑뎅그레한 집에서 90 넘은 시외할머니와 어린 아들네미를 데리고 살았다.

그래도 같은 직장에 다니는 동료들이 주변에 살았고 친정 부모님이 자주 와주셔서 외로운 줄 모르고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에 북한산에 자주 올랐다.  

2년 만에 남편이 돌아온 뒤에는 온 가족이 더 열심히 북한산에 올랐다. 가볍게 갈 때는 돌다방(널찍한 마당바위에 늘 커피 파는 아주머니가 나와 있어 그렇게 불렀다) 지나 운동기구 있는 곳까지, 조금 더 가려면 운동기구 있는 곳 바로 위... 네 발로 낑낑대며 기어올라가다 보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큰 바위에서 소리 한번 지르고 오른쪽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내 기억으로는 거기 향림담이라고 불리는 沼와 약수터가 있었는데....(오늘 산행에서는 못 보고 지나쳤다).

 

돌다방으로 추정되는 곳.

산도 모양이 바뀌나? 내 기억속의 돌다방이 아니었다.

 

돌다방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금방 시야가 벗어지며 서울 북서쪽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늘은 날씨가 좋아 멀리 일산 아파트 동네까지 보였다.  

 

일요일처럼 여유있는 날에는 향로봉까지 가서 오른쪽 길을 택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는 골짜기를 지나 구기동으로 내려가거나 왼쪽 길을 택해 비봉까지 다녀오곤 했다. 당시 기억으로는 들머리에서 돌다방으로 올라가는 길 외에 그리 힘든 구간은 없었는데....            

 

 

향로봉 오른쪽에 있는 바위. 이름이 뭐였더라?

늘 암벽 타는 이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는데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오늘 우리의 목표는 비봉이었다.

비봉으로 올라가는 길은 향로봉을 넘는 것과 향로봉 8부쯤에서 옆길로 돌아가는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시절엔 향로봉으로 곧잘 넘어다니기도 했지만 지금은 엄두가 안 나 향로봉 옆길로 돌아갔어도.....길이 장난이 아니다. 큰 바위가 앞길을 가로막고 급경사가 곤두박질치게 만든다. 

계속되는 급경사에 무릎을 크게 드는 동작이 끝없이 이어지자 드디어 무릎이 신호를 보내기 시작.

정말 길이 이렇게 험했던가? 이렇게 멀었던가? 혹시 길을 잘못 든 건 아닌가?

산천은 依舊하다던데 내겐 어째 이리도 낯설기만 한지.... 

20여 년 세월이 무섭긴 하구나. 하긴 그때 내 나이 꽃다운(^^) 30대였지.    

   

이 나이에 못갈 데가 어딨었겠나. 세계일주를 떠나려면 이 나이에 떠냐야 했다. ㅡ.ㅡ 

 

녀석아, 젊다고 자랑질이냐?

 

결국 나는 비봉을 포기하고 비봉탐사지원센타 쪽으로 내려가는 이정표 지점에서 주저앉았다.

체력은 아직 더 뽑아낼 수 있지만 무릎이 그만 가자고 한다. 호기를 부리는 것도 좋지만 뒷날을 생각해야지... 비봉까지 올라갔다온 아들과 남편이 찍어온 사진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그래도 동네 뒷산이나마 부지런히 다녔으니 이 정도라도 올 수 있었겠지?

이제 동네에서도 삼막사까지 코스를 늘려봐야겠다. 

기다려라, 북한산아. 내 머지 않아 비봉 뿐만 아니라 대남문 구간까지 밟아주리라!  

 

내려와보니 연화사 쪽이다. 그시절에 구기동으로 내려오면 가끔 들리던 할머니 두부집에서 점심을 먹을 요량이었는데 어느새 아들넘이 '해장국에 목숨걸었습니다'라는 간판이 원래 간판보다 더 큼지막하게 걸린 집으로 들어가버린다. 

나는 생두부를, 두 사람은 시원한 콩국수를 시켜 먹었는데.... 꼭 할머니 두부집 안 가도 되겠더라.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차롓상 장만을 해야 하는데.... 오랫만에 정말 오지게 등산을 해줬더니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도 않을 지경이다. 클났다. 돌아가는 길에 반찬집에 들러 전 부쳐놓은 거 있나 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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