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를 모시는 자손의 명절이라도 참여할 사람이 적으면 여느날 마음먹고 차린 밥상이나 다를 바 없다.
나물 세 가지, 전 세 가지, 과일 세 가지, 한과 세 가지, 산적, 조기, 토란탕, 송편....
많이 준비했다가는 처치도 고민이라 딱 한 접시꺼리씩만 벌여놓았다가 치우고 나니
우리집 명절놀이 끝.
오후엔 친정 모임이다.
부모님은 안 계시지만 미국으로 이민간 큰오빠네 빼고 오남매 가족들이 둘째오빠 집에 모였다.
모이기만 하면 이 방 저 방 몰려다니며 재깔대던 어린애들은 어른이 되었고 어른들은 늙어가니
분위기가 예전 같진 않지만 그래도 형제간 만남의 맛은 함께 나이들어갈수록 더 깊어지는 것 같다.
작년에 환갑을 지난 둘째오빠는 어찌된 건지 볼 때마다 자꾸 젊어진다.
이젠 나이에 걸맞겠다고 열심히 하던 염색도 중지하여 머리도 내놓고 반백인데..... 분위기는 오히려 더 쌩쌩하다. 하루도 빠짐없이 두 시간씩 헬쓰를 한다니 참 지독한 양반이다.
내년부터는 일본어 동시통역사 과정을 밟을 예정이란다. 올해 환갑을 맞는 둘째올케도 내년에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하여 나란히 학생부부가 될 모양이다. '수입이 없어서 노후주택담보대출 써야겠다더니 언니 장학금꺼정?' 하니까 '은퇴인생도 엄연히 인생이야. 할 건 해야지' 한다.
인생은 나보다 십 년 선배지만 마음은 나보다 십 년 젊은 것 같다.
뒤늦게 할아버지 댁에서 명절을 쇤 셋째오빠의 생후 4개월짜리 외손주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열렬한 환영 속에 입장했다. 큰오빠네도 일찌감치 외손주들을 보았지만 모두 미국에 살고 있어 우리 형제들에게는 이 녀석이 첫손주나 다름없으니 예비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관심과 사랑이 이넘에게 집중되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
낯선 얼굴들을 대할 때마다 하나하나 뚫어지게 보며 울까 말까를 결정하는 이넘의 비싼 웃음 한번 보려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앞다투어 재롱을 부리는 양이라니... ㅎㅎ
연세(!)가 연세니만큼 오늘의 화제는 주로 건강과 노후생활 얘기.
나더러 가벼워보인다길래 요즘 운동 좀 한다고 은근슬쩍 자랑을 했더니 너도 나도 앞다투어 운동 얘기다.
나처럼 떠벌이지는 않아도 다 나름대로 적당한 운동법을 개발하여 열심히들 하고 있는 모양이다.
말 난 김에 이렇게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호수공원으로 나가 달님도 보고 '오늘의 운동량'도 채우자고 선동했더니 모두들 찬성이다.
호수공원에서는 마침 음악분수쇼가 한창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 차 댈 곳도 없다.
포스팅이 너무 밋밋해서 퍼왔습니다
하늘엔 꽉 찬 보름달이 떠 있고 호수엔 화려한 불빛이 둥둥 떠다닌다. 특히 호수 동쪽 다리를 밝히고 있는 불빛은 호수에 비친 倒影과 맞닿아 마치 SF영화에 나오는 멋진 세트장 같다. 혀를 끌끌 차게 하는 중국의 야경과는 차원이 다르다.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게 얼마나 안타깝던지...)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khcbohome/4537395
춤추는 분수를 위해 크게 틀어놓은 음악에 맞춰 4km에 달하는 호수를 한바퀴 도는데 우리처럼 걷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무슨 걷기대회에 출전한 기분이다. 1미터에 한 명씩 잡으면 만 명은 족히 되겄다. 대한민국에 걷기매니아들 정말 많구나. ㅎㅎㅎ
달 보고 무슨 소원 빌었냐고?
우선 아들넘, 내년에는 본인이 원하는 진로에 확실하게 입문하길 빌었고
두 번째로 남편, 하는 일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어 내년엔 더 신명나게 일할 수 있기를 빌었고
세번째로 나, 내년에 계획하고 있는 여행.... 무사히 그리고 결실있게 마칠 수 있기를 빌었고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좋은 대통령 뽑아서 화합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빌었고....
좋은 마음으로 좋은 소원을 빌면 좋은 결과가 이루어진다는
어린아이의 천진한 마음으로 돌아가봐도 좋을 만한.... 기분좋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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