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굳바이 단풍 파티

張萬玉 2007. 11. 9. 22:14

유명산에 다녀왔다.

같은반에서 수영하는 사람들 중 언니 언니 하며 강습 후에 집에 바로 못가게 늘어붙는 아짐씨가 있다.

애교 많고 바지런한 이 친구가 안 이쁜 건 아니나 동네에 친구가 생기면 좋은점 못지 않게 성가신 점도 있기 때문에.... 적당히 거리를 두려고 노력했지만 매번 뒤로 뺄 도리가 없다 보니 두 번이나 집으로 끌려가 점심 대접을 받았다. 결국 언니 노릇 한번 해야겠다 싶어 날짜를 잡은 게 오늘이다. 

 

마음 같아선 오늘 오랜만에 블러그질이나 실컷 하고 싶었다. 어젯밤에 본 영화 <라 비 앙 로즈>의 감동을 비롯하여 제목만 달아놓은 글들이 네 개나 쌓여 있다. 허나 약속은 약속이라 살짝 마지못한 마음을 누르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 반나절만 놀고 와야지. 

 

가까운 용문산이나 갈까 했더니 많이 가봤단다. 차는 이미 팔당댐을 건너고 있는데... 어쩌지?

10여년 전에 가봤던 이 산이 떠오르길래 그리로 방향을 잡았다. 산이라면 어디라도 좋다는 씩씩한 동생들...(오늘 나의 컨셉은 가을길 드라이브였는데....)

큰 기대 없이 나서긴 했지만 산 냄새 향긋한 길을 달리다 보니 슬슬 기분이 좋아진다. 안개낀 하늘은 부옇고 단풍은 이미 빛을 잃어가지만 숲을 향해 달리는 길은 언제나처럼 아름답다.

 

휴양림을 지나 정상으로 오르는 등산길은 약 2킬로미터.

등산화도 안 챙겨신고 나왔지만 우리가 누구냐, 관악산 특공대 아니더냐...           

헌데 처음에 쉽게 길을 열어주던 등산로가 차츰 본색을 드러낸다. 한숨에 다 내어줄 것 같던 능선은 꾸준한 급경사를 고수하며 약을 올린다. 결국 얼굴을 땀에 적시고 말았다.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정상에 올라 보니 사방이 억새밭이다. 시원스레 불어오는 바람을 만끽하며 챙겨온 약식과 과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바로 하산길... 왔던 길은 1.7킬로인데 계곡 쪽으로 내려가는 길은 4.7킬로.....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도 재미없지만 스틱도 없는데 올라올 때의 급경사를 되짚어내려가는 것보다는 억새 사이로 조봇이 나 있는 길이 그래도 좀 쉬워 보여 두 배로 먼 계곡길을 택했는데....

 

세상에 공짜란 없다. 들어는 봤나, 朝三暮四라고.... ^^

이 길이 훨 낫네~ 하면서 룰루랄라 20분쯤 내려오다 보니 우악스런 돌길 시작이다.

편한 운동화라고는 해도 릿찌가 붙은 등산화만 하랴. 반질반질 닳은 돌들 위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용을 쓰며 건너가는데 이건 한도끝도 없다. 이젠 삼성산 전망대 오르내리는 게 여삿일 됐다고 까불면서 해발 870여 미터짜리 흙산이 심해봐야 얼마나 심할까 얕잡아봤던 벌을 톡톡이 받고 있다.

죽은 나뭇가지를 지팡이 삼았어도 벌벌 떨리는 다리를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다. 자칫 엎어져서 머리라도 깰까봐 바닥에서 눈을 떼지 못한 상태로.... 낙엽으로 덮인 급경사는 엉덩이에게 맡기고.... 삐쭉삐쭉 삐져나온 날카로운 바위는 양손으로 진정시키며.... 완전 비굴모드로 난국을 헤쳐나가던 중,

 

잠시 눈을 들어 계곡을 보니 오, 이런 절경이!

비록 단풍과 은행과 떡갈나무의 고운빛은 스러져 계곡의 모습은 이미 초겨울로 접어들고 있지만 계곡을 타고 흘러내린 맑은 물들이 만들어낸 沼의 아름다움은 마치 설악산 어느 계곡에 와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팍팍한 '一路前進' 등산로에 대한 아쉬움을 계곡길이 충분히 보상해준 셈이다.  

 

그래도 계곡길의 아름다움을 만끽한 대가는 적지 않았다. 지루한 돌길을 무릎이 못견뎌할 무렵 발목이 두 번이나 휘청! 하더니 지금 본격적으로 쑤시기 시작한다. 물론 무릎도 시큰시큰 장단을 맞춘다.

몸무게 줄이고 다리 튼튼해졌다는 자랑질이 너무 빨랐나보다.(뜨끈한 찜질해주고 며칠 쉬어줄 테니 제발 노여움 풀어다오. ㅠ.ㅠ)       

 

글 몇 개 더 쓰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눈꺼풀이 내려앉아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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