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남편이 함께 시내 나가잔다.
공연한 외출 외식 귀찮아 휴일엔 웬만하면 두문불출인 양반이 웬일?
그러면 그렇지.. 용무가 있었다. 이번주에 중국에서 들어올 친구 선물을 사야 한다고 좀 골라 달란다.
한국 냄새 물씬 풍기는 걸 사야 한다고 해서 인사동으로 데려갔더니, 삼십여 년 넘는 서울살이에도 불구하고 처음 와본다는 남편.... 이런 데가 다 있네? 하며 흥미를 보인다.
얼마만에 남편과 함께 걸어보는 서울거리냐.
'거봐, 나랑 다니니까 이런 데도 오고 그러잖아. 우리 오늘 좀 놀다 들어가자.'
'됐어. 빨리 집에 가야지.'
'아이, 무슨 급한 일 있어? 간만에 나온 김에 저런 데 들어가서 차도 한잔 마시고... 영화라도 보고....'
'아니야, 빨리 가야 어둡기 전에 산에 다녀오지.'
으이그, 어제도 가고 지난주에도 가고 매주 가는 그노무 산에 가야 한단다.
가끔 다른 산에도 좀 가보자고 조르면 그저 우리집 뒷산이 최고란다. 이 양반 사전에 '싫증'이란 없다.
반찬도 김치찌개면 땡이다. 어제 끓이고 엊그제 끓였어도 상관없다.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린단다.
어디 먹는 것뿐인가? 의식주가 다 그렇다. 내 집, 내 방, 내 물건이 최고란다. 내 기분으로 이리저리 챙기긴 하지만... 이 양반처럼 기호가 단순한 남편의 뒷바라지처럼 쉬운 일이 또 있을라구.
일요일에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여섯 시 반이면 아침식사 끝내고
오전 내내 인터넷 강의 듣거나 밀린 일 하거나 책 읽거나
점심 먹고 한숨 자고 마누라 델꼬 산에 다녀와서 한바탕 씻고
얼큰한 찌개가 있는 저녁식사..
여기에 열린음악회와 KBS 스페셜, 대조영이 가세하면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는 완벽한 일요일이란다.
온식구가 같이 앉아서 즐겨주면 금상첨화일텐데..... 불행히도 KBS 스페셜만 온식구의 즐겨찾기...
열린음악회나 대조영 할 때는 아들도 나도 지겨움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아빠, 벌린음악회 해요.'
'여보, 텔레토비 해.'
(장수들은 늘 화면을 향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가 한 사람씩 나와서 말하고 들어간다)
아들넘은 아예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지만 그래도 나는 남편 곁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엊그제는 흑수돌의 죽음 하나 가지고 질질 끄는 한 회분을 견디다 못해 들락날락하다가....
대조영에 나오는 '대사 빈도수 No. 5'를 꼽아봤다.
1. 장군, 큰일났사옵니다!
2. 장군, 저길 보십시오!
3. 공격하라! 한놈도 살려두지 마라!
4. 간나쉐이!
5. 대~조영, 대조영!
연이어 남편의 '대사 빈도수 No. 5도 꼽아봤다.
1. 거시기.....(나만 알아듣는 단어)
2. 상관없어.(선택형 질문에 대해서도 이렇게 대답한다. ㅎㅎ)
3. 됐어.(뭐가?)
4. 안 해.(첫마디만 듣고는 말 끝나기도 전에 나오는 대답)
5. 뉴스 좀 보자.(자기 손에 리모콘 쥐고도... 아무도 TV 안 보고 있는데...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
나는 '지겨움'이 뭔지 모른다는 남편이 신기한데 남편은 지겨움 때문에 괴롭다는 나를 신기해한다.
'여행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하면 '남들 사는 거 구경 다니는 게 뭐 그리 좋아?' 한다.
같이는 못 놀아줘도 취향은 서로 존중해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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