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에(~2011)/陽光燦爛的日子

婦唱夫睡

張萬玉 2007. 11. 26. 17:24

일요일 아침, 남편이 함께 시내 나가잔다. 

공연한 외출 외식 귀찮아 휴일엔 웬만하면 두문불출인 양반이 웬일?

그러면 그렇지.. 용무가 있었다. 이번주에 중국에서 들어올 친구 선물을 사야 한다고 좀 골라 달란다.  

한국 냄새 물씬 풍기는 걸 사야 한다고 해서 인사동으로 데려갔더니, 삼십여 년 넘는 서울살이에도 불구하고 처음 와본다는 남편.... 이런 데가 다 있네? 하며 흥미를 보인다.

 

얼마만에 남편과 함께 걸어보는 서울거리냐. 

'거봐, 나랑 다니니까 이런 데도 오고 그러잖아. 우리 오늘 좀 놀다 들어가자.'

'됐어. 빨리 집에 가야지.'

'아이, 무슨 급한 일 있어? 간만에 나온 김에 저런 데 들어가서 차도 한잔 마시고... 영화라도 보고....'

'아니야, 빨리 가야 어둡기 전에 산에 다녀오지.'

으이그, 어제도 가고 지난주에도 가고 매주 가는 그노무 산에 가야 한단다.

 

가끔 다른 산에도 좀 가보자고 조르면 그저 우리집 뒷산이 최고란다. 이 양반 사전에 '싫증'이란 없다. 

반찬도 김치찌개면 땡이다. 어제 끓이고 엊그제 끓였어도 상관없다. 먹어도 먹어도 안 질린단다.

어디 먹는 것뿐인가? 의식주가 다 그렇다. 내 집, 내 방, 내 물건이 최고란다. 내 기분으로 이리저리 챙기긴 하지만... 이 양반처럼 기호가 단순한 남편의 뒷바라지처럼 쉬운 일이 또 있을라구. 

 

일요일에도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나 여섯 시 반이면 아침식사 끝내고

오전 내내 인터넷 강의 듣거나 밀린 일 하거나 책 읽거나

점심 먹고 한숨 자고 마누라 델꼬 산에 다녀와서 한바탕 씻고

얼큰한 찌개가 있는 저녁식사..

여기에 열린음악회와 KBS 스페셜, 대조영이 가세하면

그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는 완벽한 일요일이란다.

 

온식구가 같이 앉아서 즐겨주면 금상첨화일텐데..... 불행히도 KBS 스페셜만 온식구의 즐겨찾기...

열린음악회나 대조영 할 때는 아들도 나도 지겨움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다.

'아빠, 벌린음악회 해요.'

'여보, 텔레토비 해.'

(장수들은 늘 화면을 향해 한 줄로 늘어서 있다가 한 사람씩 나와서 말하고 들어간다) 

 

아들넘은 아예 제 방으로 들어가버리지만 그래도 나는 남편 곁을 지켜주려고 노력한다.

엊그제는 흑수돌의 죽음 하나 가지고 질질 끄는 한 회분을 견디다 못해 들락날락하다가....

대조영에 나오는 '대사 빈도수 No. 5'를 꼽아봤다.

1. 장군, 큰일났사옵니다!

2. 장군, 저길 보십시오! 

3. 공격하라! 한놈도 살려두지 마라!

4. 간나쉐이!

5. 대~조영, 대조영!

 

연이어 남편의 '대사 빈도수 No. 5도 꼽아봤다.

1. 거시기.....(나만 알아듣는 단어)

2. 상관없어.(선택형 질문에 대해서도 이렇게 대답한다. ㅎㅎ)

3. 됐어.(뭐가?)

4. 안 해.(첫마디만 듣고는 말 끝나기도 전에 나오는 대답)  

5. 뉴스 좀 보자.(자기 손에 리모콘 쥐고도... 아무도 TV 안 보고 있는데... 습관적으로 나오는 말) 

 

나는 '지겨움'이 뭔지 모른다는 남편이 신기한데 남편은 지겨움 때문에 괴롭다는 나를 신기해한다.

'여행 싫어하는 사람도 있어?' 하면 '남들 사는 거 구경 다니는 게 뭐 그리 좋아?' 한다.

같이는 못 놀아줘도 취향은 서로 존중해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베.. ^^

'그 시절에(~2011) > 陽光燦爛的日子' 카테고리의 다른 글

大選의 추억  (0) 2007.12.19
사거리에서  (0) 2007.12.12
D-81 : 목표 달성! 다시 2차 목표를 향해...  (0) 2007.11.21
2007년 첫눈 오던 날  (0) 2007.11.19
수원성 순라  (0) 2007.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