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Peru8 - Chivay

張萬玉 2008. 6. 28. 15:11

어젯밤 늦게까지 인기척조차 느낄 수 없더니 오늘 아침 식당에는 일곱 명이나 앉아 있다. 다섯 명 가족 팀, 그리고 커플...... 이 호스텔 고객들은 모두 '조용한 가족'들이었군.

반갑긴 하지만 일행이 있는 팀들이니 눈인사만 하고 혼자 앉아 아침을 먹는다. 

 

아침 메뉴는 어느 호스텔이나 비슷하다. 토스트, 버터, 잼, 커피... 그런데 이 호스텔은 커피를 특이하게 준다. 보통은 커피메이커에 충분히 커피를 걸러놓으니 그냥 따라 마시면 되는데 여기서는 뜨거운 물 한컵과 액상 커피 엑기스를 테이블마다 놓아두었다. 커피 엑기스는 처음 보는 거라 신기했는데, 푸노에 가보니 거기서도 이렇게 주더군. 페루에서는 커피를 이렇게 마시나?

과테말라에서는 흔한 게 커피였는데 다른 중남미 국가에서는 커피보다 주로 콜라들을 마시는 것 같았고... 역시 커피는 산지가 아닌 이상 비싼 기호품에 속하는 모양이다. 

 

TV 아침뉴스에서는 9살 소녀의 납치, 살해사건이 보도되고 있다. 범인은 구속되었는데 사람들이 범인의 집으로 몰려가 손에 돌을 들고 현관을 부수며 분노하고 있다. 범인도 무섭지만 몰려가 문을 부수는 사람들도 무섭다. 리마에서 내가 묵었던 곳과 아주 가까운 곳에서 발생한 사건이라 그렇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곧이어 안정된 직장을 가진 중년 남자의 자살사건이 보도된다. 유서를 남기고 잉카콜라에 독을 타서 마셨단다. 원인을 얘기하는데 암만 봐도 모르겠다. 한 세상 살아내는 게 참 간단치 않구나.

 

8시 50분에 아르마스 광장에서 출발. 서글서글한 가이드... 첫인상이 맘에 든다. 호들갑스러운 제스처 대신 소박한 친절함이 느껴지는 타입. 그러나 은근한 유머감각과 유창한 영어가 보통 수준은 넘는다. 

보는 투어에서 가이드의 비중이 그리 크지는 않지만 가이드를 잘 만나면 의외로 여행의 즐거움이 배가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꼴까캐년 투어는 훌륭한 경치와 함께 훌륭한 가이드 덕분에 잊을 수 없는 여행구간으로 내 기억에 남았다.    

 

시내를 벗어나니 바로 오르막 시작. 해발 2300미터에서 산을 끼고 계속 올라간다. 길 양 옆으로는 선인장과 험상궂은 바윗돌이 뒤덮인 가파른 벼랑.

 

오르막이 대강 끝나는 지점부터는 드넓은 초원사막이 펼쳐진다. 이곳에는 비꾸냐와 알파카의 주식인 '이추'라는 식물이 지천인데 어찌나 뾰족하고 억센지 섣불리 손 대면 심하게 찔린다. 이걸 어떻게 먹지?    

 

 

얘들은 비꾸냐다. 야마꽈에 속하는 짐생들 중 비꾸냐와 구아나코(칠레 쪽에 산다)는 야생이고 알파카와 야마는 사람이 키운다. 비꾸냐는 확실히 알겠는데(덩치가 작고 얼굴이 낙타처럼 생겨 제법 귀엽다), 알파카와 야마는 비슷하게 생겨서 설명을 들을 때는 알 것 같더니만 막상 사진으로 구별하려니 헷갈린다.

야마가 알파카보다 크고 잘 달리기 때문에 식용과 운반수단으로 사용되지만 알파카는 주로 털을 얻기 위해 키운다. 

남미 여행 다녀온 사람 치고 알파카 털로 짠 스웨터나 모자 하나 안 사오는 사람이 없을 만큼 알파카 제품은 인기가 좋다. 가볍고 따뜻한 모직물로도 각광을 받지만 질기고 열 차단 효과가 뛰어나고 비와 눈에도 상하지 않기 때문에 파카, 침낭, 고급 옷의 안감에도 널리 사용된다. 적혈구 밀도가 높아서 산소가 희박한 환경에서도 잘 살지만 분포지역이 페루 중남부와 볼리비아 서부의 고원 습지로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으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는 몸이시다.  

 

 

 몸통이 동그랗고 꼬리를 말아넣은 모습을 보니 이 녀석은 알파카다.

 

얘들아, 누구 기다려?

 

고원의 늪지는 알파카들의 천국

 

  

가이드에게 사진 한장 찍자 했더니 무지 친한 척 해주는 센스.

멀리 보이는 저 산이 무슨 화산이라더라? 왈카왈카? 체체니? 

 

땡겨봤다.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연상시키는 단층 

 

해발 4800m... 내 생애를 통해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다. 이런 날이 다시 올까? 

 

길은 끝없이 이어진다. 내가 밟고 가는 길은 지극히 일부에 불과하지만...

 

이런 지형을 피요르드라고 하던가? 빙하기 쓸고 내려가며 움푹 파놓은 계곡.. 

 

"우와, 깊다~ 우리 한번 굴러볼까?" 

장난기 많은 아일랜드 녀석의 추임새에 괜히 내가 다 어지렵다. 

 

꼴까 캐년 투어의 베이스 캠프가 되는 치바이는 전통을 따라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다.

 

더할 것도 덜할 것도 없이.... 그대로 눈부시다.

 

완만하고 넓은 골짜기를 일군 부지런한 손길들.  

 

투어버스가 도착한 곳은 치바이 마을 최고의 관광식당 앞.

동네 골목 같지만 이 마을의 간선도로다. 주차 차량만 없으면 관광버스 두 대가 마주 지나갈 수 있다. ^^

 

점심은 20솔짜리 부페로 먹었다. 피할 길 없는 옵션이지만 합격점.

 

돈 들이지 않고도 충분히 아름다운 자연친화적 벽장식 

 

 

페루 전통음식에서 감자가 빠질 수 없다. 감자의 종주국답게 특별한 감자맛.

 

악기 이름은 모른다. 하프 소리를 낸다. 쏟아져들어오는 햇살처럼 사랑스러운 음색...

 

연주가 끝나면 연주자가 직접 CD를 판다.

 

밥 먹고 잠깐 자유시간에 들어가본 식당 옆 초등학교.

 

뙤약볕 아래 돈치기가 한창이다. 가방이나 좀 두고 와서 놀지...

 

우린 학원 안 가요. 밥 먹고 밭에 나가서 아빠 도와드려야 해요.

 

작년에 완공된 마을 체육관이란다. 완공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구비할 게 많아 보인다.  

 

점심먹고 해산. 숙소에 짐 풀어놓고 쉬다가 수영복 챙겨 가지고 2시간 후에 소깔로로 집합하란다.

여기는 배정된 숙소로 들어가는 골목이다. 이 깊은 산골마을에도 피씨방...

 

 

선택한 숙소에 따라 투어비용이 달라진다. 우리 투어 일행은 시니어 두 커플과 리마에서 왔다는 페루 여인, 여섯 명이 함께 온 아일랜드 청년들로 구성되었는데 세 군데 숙소로 찢어졌다. 나와 페루 여인은 이코노미급, 이스라엘 부부팀과 아일랜드 단체팀은 무슨 급이라던가? 아무튼 중간급, 캐나다에서 온 부부팀은 VIP급..... 내가 든 숙소는 이코노미급이라지만 평소 내 수준(10불급)에 비해 월등히 높은 30불급이다. 페루 여인과 방을 같이 쓰나 했더니 독립욕실 더블룸을 혼자 쓰란다.

중간급과 이코노미급은 마을 안에 있는 비슷비슷한 숙소인데 VIP급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강가의 전망 좋은 언덕에 있다. 전망이 좋긴 하지만 도보로 시내 나오기는 너무 외져서 좀 불편하겠더라.  

 

짐 풀어놓고 집합시간까지 여유가 있길래 페루 여인더러 같이 구경 나가자 했더니 자기는 온천도 뻬냐쇼도 필요없고 내일 꼴까캐년만 보면 된다고... 지금부터 늘어지게 자겠단다. 리마에서 간호사 일을 하고 있는 이 여인은 미혼인데 아가씨라고 부르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아 보인다(40대 중반). 휴가를 받아 일 년 만에 부모님이 계시는 아레끼빠에 왔다가 꼴까 투어에 참가하게 됐단다. 그동안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너무 시달렸나 사람들과 얘기하는 것도 귀찮아 한다. 같은 호스텔에 배정되는 걸 보고 페루 친구 하나쯤 생기겠구나 기대했는데....

 

마을의 수호천사 대성당

  

경찰서 앞. 도로 곳곳에 하수도 묻는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 회관 앞. 회관 옆의 아치형 기둥은 예전에 마을 간 경계를 나타내는 표시였다고 한다. 

 

중남미에서는 아무리 깡촌이라 해도 마을 중앙에는 광장이 있고, 손바닥 만한 광장이라 하더라도 그 광장엔 반드시 성당과 분수가 있고....  분수 주변에는 물장난 하는 아이들이 있다. 

 

디게 시원해요. 아줌마도 같이 해요.. 

 

광장 맞은편은 시장이다.

 

 

오늘 일정은 근교의 온천에 다녀와 페루 전통춤을 공연하는 식당에서 저녁식사 하는 것.

  

산천경개 좋은 곳에 위치한 온천. 풀이 다섯 개도 넘는 규모가 큰 온천이다.

샤워시설과 개인락커도 갖추고 있다(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지 마라.. 안 그런 데가 더 많으니까).  

 

물도 깨끗하고 약한 유황냄새까지 난다. 쌀쌀한 산속에 가랑비까지 뿌려 온천욕의 쾌적함이 두 배. 

뜨끈한 온천에 몸을 담그고 맥주까지 한 잔 마셔주니 뼛속까지 녹겠다.

  

시장 골목에 있는 '뻬냐 쇼'라는 극장식 식당(!)에서 꽤 비싼 저녁식사.

저녁 안 먹고 음료만 마셔도 되는 건데 모르고 시켰다.  

연주는 그냥그저냥... 어차피 독자적인 연주라기보다는 전통춤의 반주가 주목적인 듯했다.

오른쪽에 선 꼬마를 보고 이 동네에선 어린애도 연주를 하나보다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냥 폼만 잡고 있는 거였다. 아빠 들러리 서는 데 지쳤는지 무대 아래에서는 심술이 잔뜩 나 있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니 먹고 있던 뭔가를 집어던지더군.  

 

 

움직이는 사람 찍기... 뭔가 노하우가 있을 것 같다. 예닐곱 장 찍었는데 쓸만한 게 하나도 없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경험이라도 내가 혼자 찾아다녔다면 푹 빠졌을지도 모르는데, 가이드를 따라다니니 별로 신이 안 난다. 확실히 내겐 쓸데없는 고집이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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