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레끼빠에서 푸노 가는 버스는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꼴까계곡에서 돌아오자마자 내일 아침 푸노 가는 버스표를 예매해두려고 나서는데, 뭐가 통했는지 리셉션에 있는 아가씨가 날 불러세우면서 여행사 명함을 건네준다. 버스터미널과 같은 가격으로 표를 살 수 있는 여행사이니 굳이 터미널까지 갈 필요가 없단다. 아니, 이 아가씨가 내가 터미널 가는 줄 어떻게 알았지?
아레끼빠 올 때 꾀부리다가 여행사에 두 배 가까운 가격을 치렀던 터라 반신반의하면서 한번 들러봤다. 숙소에서 광장 바라보고 쭉 가다가 광장 끝나면 오른쪽으로 길 건너 조금 더 가면 1층은 옷가게이고 2층으로 가는 계단이 있다. collpa 여행사. 정말 터미널과 똑같은 가격을 받는데(40솔) 대신 크루즈 델 수르(페루에서 제일 좋은 버스) 표만 살 수 있다.
Terrapuerto 버스터미널.
아레끼빠에는 버스 터미널이 두 개가 있지만 바로 옆에 붙어 있기 때문에 터미널을 잘못 찾아갔어도 상관없다. 여기서 푸노 가는 버스는 많다. 크루즈 델 수르 아니라도.
크루즈 델 수르 버스는 별도의 대합실을 이용하는데 무슨 버스터미널 대합실이 공항 대합실 같다.
다른 회사 버스보다 얼마나 더 비싼지는 모르겠지만 겨우 40솔에 이런 VIP 대접을 받다니....
앞쪽 의자에 앉은 녀석이 어찌나 귀여운지 한장 찍으려다 번번이 실패. 눈만 마주치면 쌩 돌아앉아 등만 보여준다. ㅎㅎ 괜찮아, 앵무새도 예쁘고 네 누나도 귀여운걸.
버스는 어제 갔던 길을 되짚어 1시간 정도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왼쪽으로 빠져 철도와 함께 달린다.
즉 아레끼빠에서 푸노 가는 교통편에는 기차도 있다는 얘기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파노라마.
호수 마을로 간다는 징조일까, 아름다운 호수가 곳곳에서 나타났다 사라진다.
푸노 시내 도착. 내 옆 자리에 앉았던 페루 아줌마는 푸노 유명 호텔의 고객관리 매니저라던데... 이렇게 소박한 도시의 유명 호텔이라면 도대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서 일단 명함은 한 장 받아놨다.
애완견이 아니라 애완돈?
마추픽추에서 만났던 일본아이가 소개한 숙소는 망코 카팍(잉카제국을 세운 왕의 이름이다).
리셉션에서 먼저 나를 맞아준 것은 한글 안내문이었다. 안내문에 나와 있는 대로 가격 저렴하고 깨끗하고 뜨거운 물 잘 나오고 겁나 친절하고....
나도 안내문에 따라 맨 윗층 방을 달라고 했는데 마침 층 전체가 텅텅 비어 있어서 그 좋은 휴식공간을 나 혼자 누렸다.(쫌 심심했다.)
옥상으로 올라가면...
푸노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마주 보인다. (산 아래 동네에는 거의 관광객들만 살고 있는 것 같다.)
배낭 내려놓고 마을 시찰에 들어갔다.
내가 묵고 있는 따끄나 거리는 관광객들로 붐비는 리마 거리와는 달리 시장과 학교, 마을회관이 가까워서 그런지 현지인들로 붐빈다. 길에서 만난 어떤 현지인은 따끄나 거리가 위험하다고 하지만 사실 웃기는 얘기다. 마을이 손바닥 만해서 안전하다는 리마 거리에서 두 블럭 지나면 바로 따끄나 거리인걸.
극장 간판
관광객들보다 현지인들에게 더 사랑받는 소깔로 광장. 볼리비아 영사관이 이 근처에 있다.
누구 말마따나 테트리스 게임에서 막 빠져나온 듯한 성당
연두색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이동통신 회사의 판촉사원들.
체크무늬 망또 두른 아주머니에게 휴대폰이 얼마나 잘 터지는지 시연해보이고 있다.
신나는 트럼펫 소리를 따라 가보니 건물 안에서 무슨 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모양인데...
구경 좀 해도 되냐고 하니까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동안 주변을 맴돌며 구워삶아봤지만 실패.
페루에선 Chipa가 짱.... 웬만한 거리엔 다 있다.
건물 1층을 비워 만든 골목이 푸노의 주요 거리들을 縱으로 연결해준다.
관광객들이 많아서 그런가? 마사지나 네일아트 하는 가게가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이 골목도 간선도로를 이어주는 짤막한 세로골목
오늘 장사 좀 어떠우?
주요 도로에 자리잡은 상가들은 제법 윤기가 흐른다.
그냥 나와 앉아 있는 사람들이 어째 그리 많은지...
아레끼빠에서 오는 버스에서 만났던 캐나다 일가족을 다시 만났다.
버스에서는 눈도 안 맞춰주던 꼬마녀석이 먼저 나를 불러세우더군. ^^
저녁 먹긴 좀 이르지만 베지테리언 식당(Vida Natural : 자연적인 삶)이 눈에 띄길래 들어가봤다.
족히 40분은 기다렸다. 심심해서 셀카놀이를 하다 보니 '누구세요?' 사진이 나왔다.
야채스프와 샐러드. 샐러드는 셀프, 무한 리필이다.
빈대떡처럼 생긴 게 콩으로 만든 고기란다. 고기맛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나름 맛있다.
디저트로 나온 농축 요거트. 배가 터질 지경이다. 이렇게 먹고 13솔(4.8$) 냈다.
여기는 푸노시의 중심지 아르마스 광장.
쿠스코보다 더 높은 3800 고지이기 때문에 푸노에서도 계속 조심해야 한다. 빨리 걸으면 숨차고 비잉 돈다.
베드로도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다던데... 혹시 베드로의 십자가? (수탉이 있으니....)
전형적인 페루 아기 얼굴이다.
볼리비아 (푸노) 영사관
푸노에서 중요하게 할 일은 두 가지. 티티카카 호수에 다녀오는 것과 볼리비아 비자를 얻는 것.
한국에서 비자를 냈다면 여행중에 달리 신경 쓸 필요도 없겠지만 한국에서 비자를 내려고 알아보니 서류준비도 까다롭고(주민등록 등본까지 스페인어로 번역하고 공증해야 한다) 비용도 많이 들어서 남들처럼 페루에서 하는 게 더 쉬울 것 같았다.
그런데 내가 한국에서 준비해간 서류들 외에 두 가지가 더 필요했다. 볼리비아 내 호텔 예약증명서와 입국허가신청서. 물론 신청서는 영사관에서 받아 직접 작성해도 되지만 혹시라도 잘못 써서 북북 긋는 건 절대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망칠 경우에 대비, 인터넷에서 양식을 내려받아 미리 작성해가는 것이 안전하다. 동네 피씨방에서 크리스티나의 코치를 받아가며 입학시험 치는 것보다 더 신중하게 작성해가지고 드디어 볼리비아 영사관을 찾아갔다.
영사관이 어째 일반 가정집 분위기다. 영사님(?)도 동네 아저씨처럼 털털해 보이고(정식 외교부 직원이 아니라는 說도 있다).... 비자 발급을 두고 설왕설래가 많아 잔뜩 긴장하고 갔는데 의외로 쉽다. 서류를 제출하니 꼼꼼하게 서류를 살피고는 문제 없는 것 같다고 오후 2시에 찾으러 오란다.
오후 2시에 영사관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씩씩하게 "como esta?"(안녕하세요?)를 외쳤다. 돌아오는 대답은 공식에 따라 당연히 "Muy bien."이어야 하는데 어째 "Muy mal."(안녕하지 않아요)이다.
장난으로 그러는 줄 알았는데 뒤이어 하는 말이, "당신에게 비자를 내주어야 하는데 내주지 못하게 돼서 muy mal"이라는 것이다. 엥? 이게 무신 쏘리?
서류에 뭘 잘못 썼나 했더니 그게 아니고.... 내가 제출한 예방접종 서류에 확인도장이 있어야 비자를 내줄 수 있는데 그 도장 찍을 책임이 있는 사람이 오늘 새벽에 맹장염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언제 퇴원할지도 장담할 수 없단다. 말이 되냐고!
사흘 뒤에 볼리비아 가는 버스표를 사놨는데 어떡하냐고 항의해봐도 미안한 웃음만 짓는데 어째볼 도리가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나면 이 손바닥 만한 동네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기약도 없이 기다리든지 볼리비아 포기하고 에콰도르나 칠레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
기가 막혀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고 앉아 있는데 콩알보다 더 큰 우박이 창문을 사납게 두들겨댄다.
우박이 그친 뒤 숙소로 돌아와 크리스티나와 대책회의에 들어갔다.
첫째, 코파 카바나 쪽 국경을 거쳐 라파즈로 들어가기는 글렀으니 칠레와 가까운 따끄나에서 비자를 받아 칠레의 아리까를 거쳐 오루로로 들어간다.... (헌데 따끄나까지 열 세 시간이다. 게다가 푸노에서 하는 양을 보면 따끄나에서 확실히 비자를 받을 수 있다고 누가 보장하나)
둘째, 우유니 사막을 포기하고 칠레의 깔라마에서 아르헨티나 쌀타로 뜨자.(사실 기를 쓰고 볼리비아 비자를 받으려는 이유는 우유니 때문이니까...하지만 그럴 순 없다!)
셋째, 단무지 정신으로 코파 카바나 쪽 국경으로 일단 가서 푸노 영사관의 사정 때문에 그러는 거니 좀 봐달라고 개겨본다. (그래봐야 세 시간 정도의 거리니까 안 되면 돌아오는 거지.)
영사관에서도 며칠 기다려보라고 했으니 일단 내일로 예약해둔 티티카카호수 투어 다녀온 뒤에 결정하기로 한다. 분통 터뜨려 봐야 되는 일도 없고 요행을 기다려봐야 눈만 빠지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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