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에 투어버스가 호텔로 픽업하러 온다기에 다섯시 반에 깨워달라고 리셉션에 얘기해놨는데
오히려 내가 제 시간에 일어나 리셉션을 깨워줬다. ^^
간밤을 밝혔던 등불이 아직 꺼지지 않은 신새벽인데..
숙소 앞에서 음료수 파는 아주머니는 벌써 개시하셨네.
이 동네 사람들은 아침 대신 음료수를 마시나보다.
병에 담긴 것들은 치차 모라다, 레몬, 찻잎 등에 물을 탄 들적지근 미적지근한 음료.
아주머니의 주장에 따르면 건강음료들이란다.
투어버스는 다시 계곡을 타고 위로 위로....
꼴까 캐년은 그랜드 캐년의 두 배 깊이, 우리는 오늘 해발 4800m까지 올라간단다.
꼴까 계곡은 1930년대초 미국지리협회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고 외부세계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이다. 비가 적은 이 마을에서 산자락이 저렇게 푸르른 것은 1990년 세계 각국의 참여로 이루어진 관개작업 덕분이라고 한다.
전 대통령이었던 후지모리 씨가 재임 시절에 사들여 딸에게 넘겨주었다는 고급 리조트.
그가 부정축재 혐의를 받고 일본으로 망명한 뒤에 이 리조트는 치바이시로 환수되어 지금은 수익금이 치바이 마을 주민들을 위해 쓰인다고 한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재임시절 화산폭발로 집을 잃은 주민들에게 지어주었다는 똑같은 집들..
이 마을 사람들은 후지모리 대통령을 엄청 믿고 따랐는데, 부정축재 소식에 충격이 컸단다.
꼴까 계곡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마을에 도착.
이 마을 성당에서 모시고 있는 성상들은 엄숙한 게 아니라 귀엽다.
성당 옆에서는 꼰도르를 팔이나 머리에 올려놓고 사진 찍게 하는 영업이 성업중.
드디어 꼴까 계곡을 굽어보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꼴까'라는 말은 께추아어로 '식량 저장 장소'라는 뜻이다.
15세기부터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던 잉카인들은 계곡 곳곳에 유적들을 남겨놓았다.
계곡 아래로부터 날아오르는 콘도르를 더 잘 보기 위해 사람들은 전망대로 몰린다.
아래쪽 전망대
계곡을 찍어보고 싶어 카메라 잡은 손을 한껏 앞으로 내밀다가 계곡 아래로 떨어뜨리는 상상으로 움찔.
어떻게 해야 아찔함을 제대로 찍을 수 있을까.
여기는 중간 전망대. 여기서 콘도르를 아주 가깝게 봤다.
검은색이 다 큰 놈이고 갈색은 어린 놈인데... 갈색 밖에 못 봤다.
요즘 제대로 큰 검은 녀석 보기는 힘들단다.
1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리마에서 대형트럭을 빌려 타고 왔다. 차에 쓰인 글씨를 보니 관공서 차인 듯.
오토바이를 끌고 험산준령과 싸우며 올라오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좋겠다. 나도 젊었으면 저런 거 해보고 싶은데... 에잉, 자전거부터 배우라공? ㅋ
내려오는 길에 들른 Pre-Inka 유적지.
동굴 안쪽은 무덤이고 중간 쯤에 동굴로 들어가는 구멍이 있었는데 관개공사를 하면서 막혔다고 한다.
잉카인들에게는 죽음의 개념이 없었다. 모든 것은 살아 있고 모든 세계는 연관되어 있고 인간은 죽음을 통해 다른 세계로 간다. 그래서 잉카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내장을 꺼내고 진흙으로 채운 뒤 금과 은으로 장식하고 억새풀로 꽁꽁 싸둔다. 자궁에 웅크리고 있던 태아 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다.
고치에서 나와 나비가 된 그들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이 계곡을 떠돌며 후손들을 지켜보고 있을까? 아니면 그들의 믿음처럼 완전히 다른 차원을 향해 훨훨 날아갔을까?
산은 하늘로 가는 문이고 호수는 지하로 가는 문이다.
잉카인의 후손이 들려주는 잉카 전설.
쿠스코에서 시티투어를 하며 들었던 잉카제국 창건에 얽힌 얘기인데 처음 들을 땐 께추아어로 된 이름들이 너무 어려워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던 것이 두번째 들으니 제법 재미있다. 쿠스코의 가이드는 대강의 줄거리에 요즘 농담을 적당히 섞은 만담이었지만 아레끼빠의 가이드는 농담 대신 열정을 섞어 우리를 감동시켰다.
가이드 이름은 이기에모르 렌든이다. 치바이와 함께 꼴까 계곡을 지키고 있는 양케 마을 출신.
스페인계 아버지와 원주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외모는 라티노에 가깝고 성도 스페인계 성이지만 이름은 께추아어. 잉카문화의 마지막 전승자로서 마을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외할머니가 지어주셨단다.
원래 전통문화에 별로 관심도 없었고 군사학교를 다니면서 모터사이클에 미쳤던 보통 젊은이였는데,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자기에게 구술한 잉카 전설을 기록하면서 자기 진로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졌다. 스폐인계 혈통을 따라 살 것인가 인디헤나로서 살아갈 것인가.
페루 사회에서 인디헤나로 살아간다는 것은 돈이나 명예와는 거리가 먼 삶을 택한다는 뜻이지만 내 자손들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선조들의 문화를 전승하는 일을 했으면 한다는 외할머니의 유언이 귓가에 맴돌아 아무리 떨쳐버리려 해도 떨쳐지지가 않았다고 한다. 갈등 속에서 잉카문명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자기도 모르게 깊이 빠져들게 되었고 아레끼빠에서 영어를 배우며 만난 외국인 선생님들을 통해 이 일의 의미를 더 깊이 인식하게 되었다고....
지금은 프리랜서로 관광가이드 일을 하며 책을 쓰고 있는데 이미 한 권을 썼고 (Beyond the Knowledge of Condor) 이 스페인어판 책을 영어판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으며 두 번째 책도 준비중이란다.
그의 말로, 페루의 가이드들은 그저 돈벌이로가 아니라 자기처럼 사명감과 자부심으로 일한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껏 만난 가이드들 중 그처럼 열과 성으로 하는 가이드는 못봤다. 영어도 완전히 전문가 수준이다. 유창성 뿐만 아니라 어휘선택에 있어서도.... 진짜 감동적이다. 머리도 좋아 보이지만 관광객들의 사소한 주문에 대해서도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그러한 열성을 공부에도 퍼부었을 것 같다.
자존심과 열정이 넘치는 아주 특별한 가이드 이기에모르. 그는 화산석으로 지어진 하얀 도시 아레끼빠 만큼이나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개미새끼만 얼씬거리는 양케 마을 중앙광장.
가이드가 사는 동네라 해서 마을구경 좀 시켜줄라나 기대했는데 시간이 촉박해 광장만 둘러봤다.
이스라엘 애들 다음으로 같이 여행하고 싶지 않은 나라 사람들 2위에 랭크되는 아일랜드 아이들.
투어를 함께 했던 이 애들의 경우도 좀 시끄럽긴 했지만 친구들 일곱명이 함께 왔으니 어느 나라 사람들이라도 그 정도 안 떠들겠나. 술은 고래들이었지만 매너는 아주 좋았다. 맥주 인심도 좋았고... ^^
우리 팀 내의 시니어 그룹.... 왼쪽은 캐나다 부부. 가운데는 이스라엘 부부.
두 커플 다 독특했다. 캐나다 부부는 폴란드에서 캐나다로 이민 온 지 5년 됐다는데 캐나다 사람이라기보다는 동유럽쪽 분위기가 더 강했다. 특히 부인이 남들하고 말을 섞지 않는 까칠한 타입이라 좀 불편했는데 지내 보니 진지하고 속정이 있는 사람이더군. 남들 다 밥 먹는데 내외가 밖으로 나와 딴전 피우고 있길래 물어보니 치바이에 ATM이 없어서 페루돈이 한 푼도 없다는 거다. 에고, 말을 하지.. 소심쟁이 같으니...
아레끼빠 가서 갚으라고 꾸어줬더니 어찌나 놀라며 고마워하는지... 그 뒤로는 나랑 친자매처럼 붙어다녔다.
이스라엘 부부는 올해로 결혼 2년차란다. 뒤늦게 만나서 그런지 애정행각에 망설임이 없다. 남편은 영어도 스페인어도 전혀 못해서 아내가 가이드의 말을 일일히 열심히 통역해준다. 뻬냐쇼가 있던 저녁에도 둘이 어디론가 샜다. 그 나이에도 연애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을 수 있다니.....놀라워라, 사랑의 힘이여! ^^
치바이로 돌아와 어제 갔던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자리가 없다.
가이드가 데려간 곳은 내가 묵었던 호스텔 부페... 어느 도시에서 오셨나 수녀님들이 단체로 체크인하고 계신다. 이 산골마을에 꼴까투어 하러 오신 건 아니실 테고.... 뭐하러 오셨을까? 궁금해 죽을 지경..
돌아오는 길 산 정상 휴게실에 있는 화장실 앞.
이 동네에선 화장실 사용에 대비해 늘 1솔짜리를 챙겨가지고 다녀야 한다.
입장료를 내는 국립공원이나 사용료를 내는 터미널에서 화장실 사용료를 또 내려면 화딱지가 나지만
자기집 화장실을 개방하거나 허허벌판에 화장실 지어놓고 이용료 받는 사람에겐 '화장실 인심' 얘기 하면 안 된다. 팔 것이 그것밖에 없는 사람들이니.......
비가 뿌리나 했는데 내리는 순간 바로 눈으로 바뀌어 순식간에 세상이 하얗게 변한다. 고원지대에서는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가기만 해도 금세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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