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국내

인제에서 삼척까지

張萬玉 2008. 8. 6. 12:50

남편의 7박8일 출장사실을 통보를 받고 나서부터 이 황금연휴(!)를 어떻게 보낼까 궁리가 많았다.

해안선을 따라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아볼까...(기간이 너무 짧아 패스..) 

배낭 지고 고속버스 시간표 들고 해외 배낭여행 버전으로 경남 쪽을 한 바퀴 돌아볼까.(날이 뜨거워 패스...) 

십 년 전처럼 지리산 종주를 해볼까..(관절이 미덥지 않아 패스...)

그러면서도 아무 준비 없이 지내다 소소한 사정에 묶여 이틀 까먹고

그러다 동무가 생기는 바람에 이런저런 컨셉 챙길 틈도 없이 마티즈에 몸을 실어버렸다.  

 

제1일 : 백담사 / 고성읍

  

 

44번 국도가 데려다준 곳은 인제 백담사 계곡.

어떤 버전으로 가든지 하루에 최소 10킬로 이상 걷는다는 원칙을 세웠기에 주차장부터 백담사 매표소에 이르는 계곡길 14킬로(편도 7킬로미터)를 걸었다. 숲그늘 시원하고 벽계수 흘러넘치고... 셔틀버스만 오갈 뿐 인적 없는 길을 새소리 물소리 벌레소리와 벗하니 三伏더위가 三福더위로 변했다.

 

   

 

 

 

 

 

나오는 길에 용대 자연휴양림에 잠깐 들렀다가 진부령 넘어 고성읍으로 들어가 

군인아저씨들의 외출 외박을 진심으로 환영하는 고성읍의 여관에서 일박.

외국에서도 30불이면 이 정도의 수수한 더블룸이니 특별히 숙박비가 비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리나라에도 10불짜리 도미토리 같은 게 있으면 좋겠다. 그런 영업을 하기에는 나라가 너무 작은가?

 

제2일 : 화진포 / 소금강 / 무릉계곡 / 오산 해수욕장

 

새벽에 일어나 46번 국도를 달렸다.

대한민국 최북단 통일전망대까지 갔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민통선이 닫혔네.

발길을 돌려 인근의 화진포와 김일성, 이기붕 별장 한번 기웃거려주고...

 

  

 

 

 

 

 

 

 

 

'오늘의 10킬로미터'를 완수하기 위해 양양의 소금강으로... 

노인도 오를 만하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여졌다는 노인봉에 오르는 것으로 오늘의 걷기목표를 채울 심산이었는데 냅다 폭우가 쏟아진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어느 마을인가에 들러 시골밥상 한상 해치우며 기다렸지만 이젠 번개까지 치네그려.

할 수 없이 다음날 일정인 삼척 무릉계곡에서 '오늘의 10킬로미터'를 실현해볼까 하고 그쪽으로 방향을 돌렸는데.... 네비게이션이란 놈이 없는 지름길을 찾아준다고 어성전 탁장사마을이란 데서 우릴 뱅뱅 돌린다.

덕분에 들어보지도 못했던 법수치 계곡까지 들어갔다. (2시간 가까이 헤맸어도 즐겁기만 했다. 내 취미는 헤매면서 길찾기. ^^)

 

 

 

 

 

 

 

두타산과 청옥산으로 이어지는 이곳에도 '오늘의 10킬로미터'를 충족시킬 코스가 있긴 했지만

서울서 내려오기로 한 친구를 맞으러 갈 시간이 가까워 용추계곡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세계 어디 내놔도 손색없는 명승지 소금강과 무릉계곡.... 단풍 들 때 다시 걸음해야지.

이날부터 숙소는 교장 선생님을 형부로 둔 친구 덕에 바닷가 인근 초등학교의 교장 선생님 사택이 됐다. 

 

제3일 : 오산해수욕장 / 동해사 / 기사문항 / 휴휴암

 

 

 

부엌 창문을 열면 바로 오토캠핑장이다. 내게도 저렇게 바리바리 싸가지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는데...

 

 

원하든 말든 이런 숙소가 더 익숙한 세월이 되어버렸다. ㅜ.ㅜ

 

민박도 이제 더이상 자기네가 쓰던 방, 쓰던 이불을 내어주지 않는다. 

주인집 부엌 한귀퉁이 빌리고 된장 한 숟가락 얻어서 찌개 끓이던 시절이 그립다.   

 

나도 할머니 따라 아침산책.

여행지에서 내가 가장 반짝이는 시간은 바로 이 시간이다. 

 

 

 

 

 

 

 

 

어느 해변에는 600만이 모였다지만 여기는 아직도 피서객들이 대우받는 아담한 해수욕장.  

 

왜 저렇게 파대나 몰러~ 

 

맨손 오징어잡기 체험 행사중  

 

맨발 조개잡이 체험 행사 중.(채집본능 발동... 한 냄비 넘치게 끓여먹었다. ) 

'오늘의 10킬로미터'는 물속에서 실시.. ^^ 

 

동네에 작은 절이 있길래 구경갔는데.... 소개글 읽다가 그만 뒤집어졌다. 

 

 

같은 갤까, 다른 갤까?

 

쌍둥이개~ 딩동댕!

한 녀석은 자유롭게 돌아댕기고 한 녀석은 묶여 있는데

돌아다니는 녀석이 사람처럼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는 게 하도 웃겨 묶여 있는 녀석을 살펴보니

이 녀석도 무릎을 세우고 앉아 있네그려. 게다가 사람처럼 쌍꺼풀 진 눈도 똑같어. 한참 보고 있으니 정말 전생에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더군. 아들넘에 따르면 저 폼이 일명 '난 이 결혼 반대일쎄..' 폼이라나?

 

양양공항 가는 길. 이 마을에서 양양공항이 지척이다. 

 

神氣가 도는 사찰에 온 김에 더 특이한 절을 찾아가본다. 목적지는 7번국도 강릉과 양양 중간쯤 되는 지점의 휴휴암.

 

  

가는 길에 기사문항에 들러 싱싱한 성게와 멍게로 간단히 요기.

난생 처음 먹어보는 성게는 쌉싸름한 미각 뒤에 오는 달큰비릿한 향이 나쁘지 않았지만

반쪽으로 갈라진 뒤에도 꿈틀꿈틀하는 가시들을 보니 살아있는 원숭이 골을 내어 먹는다는 얘기가 생각나 한입 맛본 뒤 더 이상 손이 가지 않더군. 

 

바다를 굽어보는 급경사터에 세워진 휴휴암.

바닷가 절이라 그런지 난간 그림에 특이하게도 海龍이 등장한다.

 

 

거북이 바위의 옆모습은 광대탈 같다. 이 바위로부터 부처님 바위에 이르는 해안은 잔잔하여 헤엄치기에 안성맞춤일 것 같지만 휴휴암과 어촌계에 의해 수영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이 바위가 오늘의 휴휴암이 있게 한 '부처님을 향해 헤엄쳐가는 거북이' 형상의 바위다.

거북이가 바라보고 있는 건너편 언덕에는 누운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있고 그 오른쪽 절벽에는 목탁을 든 채 부처님 바위를 향해 합장하고 있는 스님 모양의 바위가 있다. 

휴휴암은 이 神氣가 넘치는 바위들에 의지하여 근래에 지어진 절이다. 10년 전쯤 강원도 원주민 친구가 이곳에 왔을 때는 신기한 모습의 바위들과 아랫 사진에 나오는 민가밖에 없었다고 한다. 

 

절보다 더 오래된 민가. 

 

그리고 휴휴암보다 더 오래된 까페.

주인도 10년 전에 왔을 때의 그 주인.... 그 사이에 까페 뒤쪽에 모텔도 하나 지었단다.

 

한 폭의 유화 같다... 이건 JM의 작품.

 

플래시를 써서 찍어보니 다른 느낌이... 

 

커피맛도 끝내준다. 콜롬비아에서 마시던 바로 그 맛이다. 재떨이를 청하니 큰 조개껍데기를 준다.. ^^ 

 

 

 

돌아오는 길에 우리 숙소 부근 최고의 Luxuary Zone에 잠깐 들러봤다.

 

제4일 : 선교장 / 오죽헌 / 허난설헌 생가

 

마지막 날 아침, 교장 선생님이 손수 돌보시는 석류나무에게도 인사하고...(이하 대부분 사진은 JM의 작품) 

 

보랏빛 들꽃에게도 인사하고...

 

우리는 귀로에 오른다. 그렇다고 바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설 것이냐.  

그럴 리 없지. 오늘 하루 해는 아직도 길다. ㅋㅋ 

 

여기는 효령대군의 자손들이 살았다는 선교장이다.

 

 

 

오죽 숲에서.

땀범벅이 됐지만...만 50세 고개를 넘는 순간의 모습을 기억해두고 싶었다.

앞으로 사진을 더 많이 찍어둬야겠다는 뻔뻔한 생각을 해본다.  

  

 

신사임당의 집에서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는데 허난설헌의 생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느낌이 팍.... 

 

그녀의 천재성도 저 쪽문 하나 넘지 못하고.... ㅜ.ㅜ

 

당시 여인네들의 삶이야말로 엉키고 꼬인 저 박넝쿨 같았겠지. 그걸 깨닫는다면 더 꼬여들었겠지.

 

부러운 청춘들..

 

자, 이젠 집으로 갈 시간... 순대나 먹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