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Argentina3 - Buenos Aires

張萬玉 2008. 8. 20. 18:53

이과수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오는 길은 듣던 대로 심심하다. 점점이 소들이 풀을 뜯고 치즈와 소시지를 파는 농가들이 어쩌다 눈에 띄는 초원의 연속.

정오가 다 되어서야 유럽풍 맨션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 진짜 잘 사나봐....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동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개발된 업타운이란다.)   

 

 El Retiro 버스 터미널. 개찰구가 70개도 훨씬 넘는 어마어마한 규모다. 거대한 땅덩이를 커버하기 위해 장거리 버스가 발달된 나라의 면모를 단번에 느낄 수 있다. 

 

버스에서 내리자 삐끼가 따라붙는데 가장 맘에 드는 녀석에게 잡혀주었다. 호스텔까지 택시로 모실테니 맘에 안 들면 그냥 가란다. 아침 포함 20페소이고 지하철 E선의 Entro de Rio역에서 1분도 안 걸리는 거리라고 해서 따라가보니 콜로니얼 건물에 있는 전형적인 백패커 호스텔이다. 

 

 

론리 플래닛이 아르헨티나의 호스텔들을 가리켜 grunge하다더니 (다른 호스텔들은 안 가봐 모르지만) 과연 그랬다. 더할 나위없이 friendly한 분위기지만 관리가 엉망이겠다는 예감이 호스텔로 들어서는 순간 팍 온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사나흘 정도만 머무를 예정이라 웬만하면 주저앉으려고... 침대시트가 깨끗한가, 더운물 나오나.. 딱 두 가지만 확인하고 쉽사리 배낭을 내려놓았는데.... 에구구, 침대 선정부터 삑사리가 났다.

 

빈 침대가 딱 두 개 남았는데 출입이 편한 1층침대는 시끌벅적한 라운지 바로 옆방이라 좀 불편하더라도 차라리 한갓진 2층의 2층침대를 달라고 했다. 헌데... 높기는 다른 호스텔 침대보다 훨씬 높은 그곳에 도대체 어떻게 올라가라는 건지 사다리가 없다! 건너편 2층 침대에 있는 아가씨에게 어떻게 올라갔느냐고 물어보니 리셉션에 가서 의자 하나 달라고 하란다. 아, 여기는 필요하면 자기가 챙겨야 하는 시스템이구나..

리셉션에서 내준다는 게 bar에서 사용하는 스툴.. 나같은 장롱다리는 올라서는 것조차도 기술이 필요한 퍽 불안정한 디딤대..... 게다가 내 아랫침대를 쓰고 있다는 40대 영국남자가 어찌나 바닥에 물건을 늘어놓았는지 침대에서 내려올 때도 스툴에 발을 디딘 다음 바닥으로 내려서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겠다. 오늘 저녁엔 절대로 물 많이 마시지 말아야지.

밤에 좀 춥겠다 싶어 둘러보니 남들은 다 담요 한 장씩 갖고 있는데 내 침대엔 얇은 시트 한 장밖에 없다. 담요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니 '달라면' 준단다. 달래야 준다고? 무슨 이렇게 쉬운 서비스업이 다 있나그래... 그럼 몰라서 안 달라면 안 주나?

에휴, 어찌됐든 방금 체크인 했으니 일단 하룻밤 지내고 봅세.

 

가방을 내려놓고 나니 어느 새 두 시가 넘었는데 버스에서 부실한 빵조가리 하나 먹고 여적 점심 전이라 허리가 꼬부라져 죽을 지경이다. 일단 시내 나가서 약간 거하게 점심부터 먹어야지. 그리고 빨리 콜롬비아행 항공권부터 끊어야 한다. 시간과 비용의 제약을 받고 있는 여행자라면 대부분 출발날짜부터 정하고 놀기 시작하는 법... 전에 인터넷 뒤져보니 티켓값이 장난 아니던데 하루라도 서둘러야 선택의 여지가 조금이라도 넓어지지.  

 

 

이방인들에게 잘 발달된 지하철은 더없이 친근하고 친절한 가이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지하철은 A선부터 E선까지 다섯 개 노선인데 구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곳곳에서 환승할 수 있어 편리하다.        

지하철을 이용할 때 확인해야 할 사항.... 개찰구로 들어갈 때 잘못 들어가면 아예 역 밖으로 나와 지상으로 길을 건너야 하니 자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을 꼭 확인할 것. (어찌된 일인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는 노선과 가는 노선의 역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다. )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옛 영화를 고스란히 느끼게 해주는 구식 지하철. 나무 의자에 나무 문틀에(1호선만 그렇긴 하다)... 문까지 수동으로 열려서 깜짝 놀랐다. 달리는 전철에서 자칫 문이라도 열면 어쩌려고..   

 

1900년대 초에 이미 지하철을 건설할 정도로 부유했던 아르헨티나는 페론 대통령이 집권했던 당시만 해도 농작물 수출로 세계6위의 번영을 구가하던 나라였다. 그러나 1976년 군부 쿠데타로 집권한 비델라 정권의 경제실정과 독재정권의 모든 것을 걸었던 포클랜드 전쟁의 실패는 심각한 재정적자를 불러왔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것이 외채와 통화증발... 결국 초인플레이션의 늪에 빠져버린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사태의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IMF와 미국에 끊임없이 손을 내밀지 않으면 안 되는 나라로 전락해버렸다. 

 

 

'남미의 유럽'이라 불릴 정도로 번화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그러나 으리으리한 건물들에 거침없이 내갈겨진 낙서와 거리 곳곳에 널린 쓰레기들은 경제성장률 -5%, 실업률 20%대, 총인구 3,750만명 중 1,400만 이상의 빈곤층, 총 외채 1,500억불(2002년 통계)이라는 암울한 경제지표들을 실감하게 해준다.

 

볼리바르 광장에서는 농축산물 수출세 인상에 항의하는 농민들의 원정시위가 한창이었다.

 

어느 대통령 시절에 뿌린 스프레이일까?   

 

  

곳곳에 쓰레기더미...쓰레기더미와 친한 아이들....

 

볼리바르 광장 뒷골목에서 점심을 먹고 보고타행 항공권을 구매하려고 피씨방을 찾아갔다.

한글 되는 피씨방이 있다고 해서 이왕이면 정다운 한글메일을 몇 통 써볼 요량으로 가깝지 않은 거리를 마다 않고 걸었건만 되긴 뭐가 돼..... '읽기'만 된다. 인터넷에 정보를 올려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제발 책임질 수 있는 정보만 올려줬으면 더 감사하겠다. ㅜ.ㅜ

저가항공권을 뒤지고 뒤져 560불짜리를 찾아냈는데 에고고, 웬일인지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된다. 왜 그런지 알아내려고 헛심 쓰다가 시간만 허비하고 포기. 어쩔 수 없이 론리에서 싸게 판다고 소개하는 여행사를 두세 군데 돌아봤지만 거기서 거기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662불짜리를 샀다.  

 

 

별로 한 일도 없는데 벌써 날이 어둡고 거리는 퇴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볼만한 거리공연이 널렸다는 플로리다 거리로 접어들었는데도 이상하게 흥이 나질 않는다.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답답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일찌감치 귀가하려는데...

지하철역 이름을 착각, Indipencia에서 내렸다. 지하철역 주변을 몇 바퀴 돌고서야 잘못 내렸다는 걸 알았지만 딱히 길을 찾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지 않길래 대애충 방향만 짐작하며 걷기 시작했는데... 지하철 두 정거장밖에 안 되는 거리를 1시간도 넘게 걸었다. 마음이 심란할 때는 정처없이 걷는 것도 약이 된다. 

 

다리쉼도 할 겸 길모퉁이 허름한 식당에서 저녁식사. 12페소짜리 대형 순살코기 햄버거에 배가 터질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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