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중남미

Chile - San Pedro de Atacama

張萬玉 2008. 7. 28. 20:05

새벽에 게이저 구경을 마치고 온천을 향해 달려가던 짚차 안에서 요리사 아줌마가 기함을 한다. 보온병을 숙소에 두고 왔다는 것이다. 어제 저녁 식사를 할 때 식탁이 복잡해서 누군가 보온병을 테이블 아래로 내려놓았고 그래서 미처 못 챙겼다는 얘긴데, 문제는 이미 두 시간 가량을 달려왔으며 투어 계획에 따르면 오는 길과 가는 길이 다르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도 숙소에 들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잔뜩 성이 나서 기사 아저씨에게 푸념을 해대는 아줌마.... 스페인어를 잘하는 지나샤와 파비오가 들어보니 우리가 보온병을 '감춘' 탓이라며 무슨 일이 있어도 가는 길에 숙소에 들러야 한다고 못을 박더란다.

지나샤가 흥분해서 '우리가 왜 보온병을 감추겠느냐, 그거 챙기는 건 당신 일인데 우리가 왜 피해를 봐야 하느냐, 당신 잘못 때문에 루트를 바꾸면 투어 전액 환불을 요구하겠다'고 나섰다. 아줌마도 만만치 않다.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지나샤의 말 한 마디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꼬박꼬박 대꾸를 한다. 그러다보니 일이 점점 커져 완전히 감정싸움이 되어버렸다. F字를 서너개씩 날리며 욕을 해대는 지나샤, 고함에 삿대질까지 등장시키는 아줌마...       

옆 사람들이 말려서 일단 조용해지기는 했지만 돌아가는 길이 어땠는지... 지금까지 궁금하다.

 

한 달에 20일 가까이 투어를 따라다니는 아줌마의 월급은 80볼(라파스에서 우유니까지 오는 버스비)인데 보온병 가격은 200볼.... 그러니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아줌마가 펄펄 뛸 만한 이유는 있다.

그래도 일생에 한 번 별러 이 멀고 먼 사막까지 찾아온 고객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으니 이 대목이 자본주의적 계약관계에 익숙한 우리를 기막히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두 달치도 넘는 월급을 고스란히 날려야 하는 건 아줌마 사정이고 아줌마의 실수로 내가 손해볼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는 지나샤 역시 나를 기막히게 한다. 미국인의 빈틈없는 오만함이랄까... 유쾌한 길동무라고 느꼈던 지나샤에게 만정이 다 떨어졌다. 

마이동풍에는 약도 없다. '끝장토론'에서 끝장 내는 거 한 번도 못봤거든.    

      

 

 

칠레 국경을 넘어 1시간도 채 못 달려 도착한 곳은 산 뻬드로 데 아따까마. 일년 내내 비가 한 번도 오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한 가운데 있는 작은 마을이다. 걸어서 마을 한 바퀴를 도는 데  20분이면 충분한.... 오로지 우유니를 거쳐온 사람들이 칠레나 아르헨티나로 이동하기 위해 머무는 마을.

그래서 특별히 정보도 기대도 없이 들어온 마을이지만 아침 햇살에 빛나는 작은 마을의 불타는 황톳빛이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화폐 단위가 갑자기 뛰어 정신을 못차리겠다. 원래 5000칠레페소(10달러) 정도의 숙소에 묵을 계획이었는데 보통은 8000칠레페소, 목표가격을 찾으려니 발품을 좀 팔아야겠다. 그러나 내 숙소에 짐을 내려놓고 같이 점심을 먹기로 한 파비오를 달고 다니려니 좀 부담스러워 우선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puritama'(맨 윗 사진)에 짐을 풀었다. 두번째 사진의 문 열린 방이 내 방이다.

 

숙소에 들어서자 맨 먼저 나를 반겨준 프랑스 아기 앙투완.

 

샤워도 제대로 못하고 다니던 우유니 여정의 끝이라 짐을 다 풀어놓고 푹 쉴 수 있는 싱글룸이 절실했다. 공동욕실이지만 볼리비아와는 비교도 안 되는 A급 샤워시설, 나무그늘 시원한 넓은 마당도 매력적이었고...

 

길모퉁이 까페에서 파비오와 석별의 오찬.

 

파비오는 내가 자기보다 어린 줄 알았단다. 혼자 다니길래 결혼한 사람이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남편 얘기를 해서 실망이 컸다나. 기타 연주를 할 때마다 내가 좋아 죽는 걸 보고 아마 오해를 한 모양이다. ^^

파비오, 나 너 좋아한 거 맞는데... 사려깊고 로맨틱하고 코드도 잘 맞고... 네가 날 젊게 봐주니 내가 기혼자만 아니었어도... (ㅋㅋ 농담!)

 

처음 만난 가.벼.운. 칠레 음식. 솜씨도 최고 가격도 최고... (한국 돈 만 원 정도) 

 

 

익숙했던 사람을 보내고 난 뒤의 허전한 마음은 다른 사람들을 더욱 낯설게 만들기만 한다. 숙소에서 만난 친절한 프랑스 요리사 커플은 한국에서 온 나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지만 도무지 알아듣기 힘든 그들의 영어는 가능한 대면시간을 짧게 할 구실을 찾게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살타로 넘어가는 버스는 내가 산 뻬드로에 도착하던 시간에 떠나버렸고 다음 버스는 이틀 뒤에나 있다고 하는데 '돌아다닌다'고 할 건덕지도 없는 손바닥 만한 동네에서 이틀을 어찌 보내야 할지.....    

 

오지마을 아이들이지만 입성도 때깔도 태도도... 볼리비아 아이들과 확연히 차이가 난다. 물가도 장난이 아닌 나라인데 저 장난감들 좀 봐라. 

 

 

마을에서 볼 데라고 꼽는다면 마을 한복판에 있는 작은 성당과 광장, 시장, 그리고 저 박물관 정도.

시간이 늦어서 박물관 안에는 못 들어가봤다. 원래 이 박물관에 미이라가 있었는데 이 지역 인디헤나들의 존엄성을 훼손한다고 하여 마을 청년조직이 철수시켜 매장했다고 한다.

민간단체지만 꽤 힘이 있는 조직인 듯 이 마을 운영에 관한 중요한 사항들에 대해 깊이 개입하고 통제한다고 한다. 마을의 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건물을 지으려면 자연적인 황토색 아니면 흰색으로 지어야 하고 차량 역시 이들에게 허가받지 않으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단다. 원주민 (인디헤나) 보호 차원에서 시작된 운동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 지역에 점포를 낸 사람들은 대부분 산티아고나 미국에서 온 사람들이라니 일종의 텃세 아닌지 모르겠다. 청소 등 막일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 절반 이상은 볼리비아에서 돈 벌러 온 사람들이란다.       

 

뒤늦게 장터에 나가봤더니 거의 파장.. 

 

7000칠레페소짜리 저녁식사.

 

이 동네와 수도 산티아고가 칠레에서 가장 물가가 높은 지역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남미인데....' 하던 내 예상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체감물가가 정말 한국 못지 않다. 가격 뿐 아니라 서비스 수준이나 생활수준이 남미의 여타 국가들과는 확연히 다른 것 같다. 싸구려 호텔이지만 이불도 오리털이고 화장실 세면대도 비누나 휴지도 제대로고 샤워커튼에 옷걸이까지 갖췄다. 음식 한 접시도 대강 나오는 게 없이 모양 제대로 내어 서빙되고 주문이나 계산도 컴퓨터로 한다. 보통 후진국의 경우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비싼 식당들은 고급으로 한다고 애를 써도 여기저기 구멍이 보이기 마련인데 칠레의 경우는 그네들의 사는 수준이 반영됐나보다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양질의 서비스가 자연스럽다. 종업원들도 예의바르지만 적당히 도도하기도 하다.

여긴 관광객이 드나드는 도시니 특별할지 모르지. 나중에라도 다른 도시에서 보통 사람들의 생활을 볼 기회가 있으려나?  

 

'죽음의 계곡'으로 들어가기 전에 올라가본 전망대.

 

이튿날 '죽음의 계곡'과 '달의 계곡'을 돌아보는 다섯 시간짜리 투어를 신청했다. 5000칠레페소.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들이라면 '죽음의 계곡' 정도는 자전거로 다녀올 만하다. 이 일대에서 놀거리는 바이크 투어가 주종이다. 패러글라이딩, 온천, 말타기 등도 있다. 이들 레포츠가 이루어지는 곳은 대부분 내가 거쳐온 곳과 비슷한 사막지대. 

 

융기한 소금호수에 무자비한 태양이 내리쪼이며 만들어낸 황량하고 메마른 지형.  

 

 

소금을 캐어 나르던 협곡 'Death Valley'(미국 캘리포니아 어딘가에도 이 이름의 계곡이 있지 싶다)

1953년 벨기에의 신부이자 탐험가인 구스타프 신부(박물관 앞 동상으로 재현된 인물)에 의해 발견된 이 계곡이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게 된 데는 세 가지 설명이 있는데

첫째, 소금 짐을 너무 많이 싣고 가던 당나귀가 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갑자기 급비탈을 만나 몸을 가누지 못하고 마침 서쪽에서 동쪽으로 불어오는 바람에 잘려 모조리 계곡 아래로 굴러떨어진 대서 유래된 이름이다.

둘째, 너무 메말라 곤충도 선인장도.... 어떤 생명체도 살지 못하는 계곡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셋째, 도저히 지구상의 풍경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풍경을 보고 구스타프 신부가 사람들에게 Marte(화성) 같다고 했는데 사람들이 그 발음을 Muerte(죽음)로 오인하여 그대로 계곡의 이름이 되었다.  

어쨌거나 발 아래를 보면 오금이 저절로 저려오니 '죽음의 계곡'이라는 이름이 절대 과분치 않다.  

 

'달의 계곡'은 국립공원이다. 여기는 계곡 입구.

 

1820년대에 이 일대는 대규모 소금광산이었다고 한다. 곳곳에 소금 결정체가 수정처럼 빛난다.

 

목말라 포효하는 공룡 -- 바람의 여신 作

 

1982년부터 소금채취가 금지되어 이곳에서 일하던 소금광산 노동자들은 이제 구리광산으로 옮겨갔고

그들이 머물렀던 흔적만이 남아 적막한 달의 계곡을 지키고 있다.    

 

'달의 계곡' 여정의 마지막.... 모래언덕 꼭대기에서 일몰을 보는 시간이다.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데도 걸어올라가기가 만만찮다.

 

또 중국 돈황의 명사산과 비교하게 된다..^^ 

 

 

 

 

 

 

서태지 8집 뮤직비디오에도 죽음의 계곡과 달의 계곡이 나온다던데... 

 

해 지는 것뿐 아니라 달이 지고 별이 지는 것까지 지켜보고 싶은 마음들..

 

 

어쩌다 이런 몽환적인 칼라가 나왔는지.... 

 

하필 떠나는 날 아침, 장터에 서커스가 들어왔다. 

 

소박하고 아름다운 산 뻬드로 마을이여, 잘 있거라. 심심해서 나는 간다... ^^

아르헨티나 살타까지는 10시간 걸린단다. 27000칠레페소(54불)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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